57분 22초, 내 몸의 현실 – 하이록스 서울을 향해

by 태빅스

Chapter 9. 이겨내!


몸 상태를 봐가면서 운동했던 날들도 이제는 꽤 오래됐다.
러닝도 슬슬 회복 단계에 들어섰고, 중간중간 병원에 들러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으며
조심스럽게 내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크로스핏 박스에도 복귀했고, 하이록스 WOD도 병행 중이다.
물론 예전에 느꼈던 그 체력은 아니다.
그래도 ‘괜찮아졌겠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근데 그게 정말 괜찮아진 건지, 아니면 그냥 이 조심스러운 시간 동안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해온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한 번쯤은 몸을 제대로 밀어붙여보고 싶었다.


사실, 한 달 전쯤 내가 다니고 있는 크로스핏 박스에서 한 코치님이 다가오는 11월 하이록스 서울 대회에

출전할 사람들만 따로 모아 단체 톡방을 만들고, 매주 하이록스 WOD 숙제를 내주고 있었다.

이 코치님은 단순한 참가자 정도가 아니라, 2024년 11월과 2025년 5월 대회에서 연속으로 포디움을 달성한 강자다.


이번 주의 숙제는 아래와 같았다.


3R

750m Rowing

30 Wall Ball Shot (9kg)

20 Burpee Box Jump Over

15 Dumbbell Snatch

10 Burpee Broad Jump

그리고 바로 이어서,

1,000m Rowing

50m Dumbbell Front Rack Walking Lunge (15kg x2)

100 V-Up


대충 무슨 말이냐 하면,
750미터를 로잉 머신을 타고 나서, 9kg짜리 메디신볼을 던져 벽에 그려진 어떤 곳에 30번 맞춰야 한다.

그 다음은 버피를 하고 24인치 박스를 점프해서 넘어가는 걸 20번.
그리고 바닥에 있는 덤벨을 번갈아서 땅에서 머리 위까지 끌어올리는 걸 15번.
마지막으로는 다시 버피를 하며 앞으로 점프해 나가는 걸 10번.

이걸 총 세 번 반복.

그리고 끝이 아니다.
저 운동을 끝낸 뒤 곧장 1km 로잉을 하고, 양손에 덤벨을 어깨에 걸치고 50m를 전진하고,
다리도 들며 윗몸일으키기(V-Up) 100개.


여태 내준 숙제 중에 가장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오후 반차를 쓰고 집에 일찍 간 날.
집에서 낮잠도 자고, 짐을 챙겨 크로스핏 박스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박스에서, 조용히 숙제를 끝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운동을 빠르게 마치고, 15~20분 정도 쉬었다가 그대로 오후 수업까지 들으면 완벽한 루틴.
쾌적한 상태에서, 힘들면 괴성도 지르고, 적당히 쉬어가며 하자. 오늘은 그렇게 운동할 계획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

박스 문을 열자마자, 이미 세 사람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 중 두 명은 익숙한 얼굴.
같은 하이록스 대비반 톡방에 있는 사람이었고,
그 두 사람들은 박스 내에서도 ‘운동 잘한다’는 소위 말하는 고인물 회원이었다.

이미 2라운드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 순간, ‘오늘 적당히 하다간 비교 대상이 되겠는데?’ 라는 생각이 스치듯 들었다.


Chapter 10. 57분 22초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은 계속해서 완주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나는 워밍업을 마친 뒤, 크로스핏 박스 정중앙에 위치한 운동 시계를 조정한 뒤 로잉을 타기 시작했다.

스트로크마다 표시되는 500m당 페이스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1:45에서 1:48 사이.
흐름은 괜찮았지만, 아직 첫 번째 라운드였기에 자만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500m를 돌파할 즈음, 먼저 와서 운동하던 동생 한 명이 내 옆에 다가와 로잉 화면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

“아, 빠르다. 잘 탄다.”


‘아... 이러면 속도를 늦출 수가 없는데...’


페이스가 약간은 떨어졌지만, 그래도 최대한 1:45~48을 유지하며 750m를 끝냈다.
그리고 바로 메디신볼을 들고 월볼샷을 시작했다.

한 개, 두 개, 세 개, 열다섯 개쯤 하고 나서, 한 번 쉬었다.
생각보다 숨이 좀 찼다.

월볼샷을 마무리한 뒤, 이제 버피 박스점프 오버.

버피를 하고, 박스를 넘고, 다시 버피. 생각보다 숨은 더 찼지만, 아직은 괜찮았다.

손목에 감긴 워치로 심박수를 확인했다.
160.
아직은 괜찮다는 반증이었다.

나머지 남은 운동 2개까지 끝내고 잠깐 숨을 돌릴겸 무릎에 손을 대고 허리를 굽혔다.

시계를 보니 경과시간은 12분이 넘고 있었다.


아직 1라운드였고, 아직 2라운드와 추가 운동이 남았다.
그런데 갑자기 막막해졌다.


2라운드 시작.

로잉은 어찌저찌 750m를 끝냈다.

월볼샷도 어찌저찌 끝냈다.

그리고 이제,버피 박스 점프 오버 20개.

그런데 문제는 진짜 힘든 건 지금부터인데,
이제 운동을 끝낸 사람들이 전부 나를 보고 있다는 거였다.

사실 같이 하이록스를 준비하는 사람이니 그냥 어떻게 하나 구경삼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로서는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박스 사람들은 내가 원래 크로스핏보다는 러닝이랑 마라톤을 주로 한다는 걸 알고 있고,
하이록스에 두 번이나 출전한 적 있다는 것도 다 안다.

그냥 그런 배경들 때문에, 괜히 ‘대충 하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그런 눈으로 보는 건 아닌데, 그게 내 마음속에서 자꾸 떠올랐다.


버피 박스 점프 오버를 시작하니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 중 한 명이

"아 역시 잘한다. 형 역시 하이록스를 오래해서 그런지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네요."


'아 뭔소리야. 힘들어 죽겠는데.'


이 생각을 하며 2라운드가 끝났다.

다시 한 번 손목에 감긴 워치로 심박수를 확인 했다.

174

이제 점점 한계치에 다가가고 있었다.


화이팅!!

먼저 운동을 끝낸 하이록스 대비반 사람들이 내가 하는 운동을 보며 응원을 해주었다.


로잉 끝, 월볼샷 끝

세 번째 버피 박스 점프 오버를 할 차례.

이게 너무 하기 싫었다.

생각해보니 매 라운드마다 이 버피 박스 점프 오버가 문제였다.

이 것만 하고 나면 체력이 거의 바닥이 났다.


숨을 잠깐 돌리기 위해 박스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가야 돼요!” 먼저 운동을 마친 동생이 외쳤다.
순간 힘이 날랑 말랑했지만…너무 힘이 들었다.

진짜 기어가다시피 20개를 끝냈다.
나머지 운동도 악을 쓰며 마무리했다.시간을 보니 43분이 지나 있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운동이 세 개나 더 남았다.

심박수를 확인했다.
180.

로잉을 타기 시작했다.
엉덩이부터 시작해서 온몸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보통은 힘이 남아 있을 때 1,000m 로잉을 4분 안에 마무리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안 되겠다는 걸 몸이 먼저 말하고 있었다.

“4분 30초 안에만 끝내자.” 그게 그 순간 내가 세운 현실적인 목표였다.


다행히 4분 30초 안에 1,000m를 끝냈고 덤벨을 어깨에 얹고 런지를 시작하는 순간

'어? 이거 되게 힘든데?' 생각이 들었다.


마치 지난 5월 하이록스 대회에서 했던 슬레드 풀이 떠오를 정도로 버거웠다.

괴로웠다. 하체운동도 그동안 부상 때문에 많이 못한게 느껴졌다.
진짜, 50m가 5km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다쳤던 다리도 신경 써야 했기에, 최대한 무리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런지를 이어갔다.


마지막 V-UP

100개를 또 언제 채우나... 20개씩 끊어가기로 했다.

"다 왔어요!"

98, 99, 100


"아!!!!!!!! 진짜 너무 힘드네!!!!!!!"


이 말과 함께 나는 바닥에 누웠다.

누워서 숨을 헐떡이며 기록된 시간을 보았다.


0:57:22


진짜 어떻게 내가 풀코스 마라톤과 하이록스를 완주했는지 의심스러운 몸상태와 체력상태였다.

너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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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 다 털리고 난 후에

숨이 어느 정도 돌아온 뒤, 하이록스 대비반 톡방에 숙제 완료를 알리기 위해 카카오톡을 켰다.

메시지가 여러 개 쌓여 있었다.

이미 운동을 먼저 끝낸 친구들이 자신의 기록을 톡방에 올려둔 상태였다.

아까 내 옆에서 응원해주던 그 동생의 기록은 53분.
그걸 보고 솔직히 깜짝 놀랐다.

같은 박스에서 자주 함께 운동하다 보면 서로의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되기 마련인데,
카디오가 강하게 섞인 하이록스 와드에서도 이렇게 해내는 걸 보니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아 더 열심히 해야겠는데?’ 진심이었다.


부상 탓에 예전처럼 꾸준히, 강하게 운동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고 조심스레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언제쯤 다시 예전만큼 운동해도 될까’라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하지만 괜히 이렇게 잘하는 사람을 마주하고 나니 괜히 오기가 생기고, 더 잘해지고 싶어졌다.

다시 쌓아야겠다는 마음.

그 와중에 오늘 WOD를 45분 만에 끝냈다는 하이록스 포디움에 올랐던 코치의 기록도

톡방에 함께 올라와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 기록이 자극이 되기보단, 오히려 먼저와서 운동을 했고, 옆에서 나를 지켜봤던

그 동생의 53분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게, 오늘 57분 22초가 남긴 진짜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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