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마주하게 된 녀석
"넥스트가 없는 상태로 떠나려 합니다. 제 후임을 뽑고, 인수인계 하고 나가려 하는데, 퇴사 날짜는 원하시는 날짜로 말씀 주시면 맞춰보도록 할게요. 또한 제 후임은 외부 채용도 좋지만, 제 팀의 xx를 제 자리로 승진시키는 것이 어떨지 의견 드려요."
쇼피를 떠나겠다는 메일을 보내고,
지사장님과 1:1을 통해 말씀드렸다.
쇼피는,
매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성장 속도를 보여주는 회사였고,
임직원에 대한 복지, 연봉과 연봉인상률 모두 매우 만족스러웠고,
젠틀하고 똑똑하고 합리적이며, 그리고 너무나도 열정적인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나 역시 한국과 일본팀을 모두 리딩하면서, 새로운 물류 서비스를 런칭하고, 서비스를 개선하는데 힘을 쏟고 있었고, 이 안에서 즐거움과 만족을 모두 느끼고 있었다.
(난 지금도 쇼피에 남아있는 동료들에게는, 쇼피에서의 이직이 항상 정답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연봉, 인상율, 워라밸 등의 개인적인 부분과 함께,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인더스트리의 성장하는 회사에 속해 있다는 것은 분명한 강점이라고.)
그런데.
떠나기로 결정했다.
가장 큰 이유는 2가지.
1. 크로스보더 이커머스는 너무나도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분야였지만, 내가 가장 큰 열정을 가진 분야는 아니었다. 특히 쇼피 한국/일본 오피스는 100% 수출을 하는 판매자 마켓으로, 도착지 센터 운영 및 배송, 반품 운영에는 상대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어려웠고, 이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2. 지금까지는 외국계 회사의 한국 지사에서 일했지만, 이제는 본사에서 일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1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외국계 회사의 한국 지사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즐거움과 더불어 한계점은, 내게 본사 경험이 필요하다고 어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가 좋을까?
난 여전히 가능하다면 스타트업 분위기를 원하고 있었고.
물류가 임팩트를 낼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고.
본사에서 근무하고 싶어 했다.
이 3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곳이 있다면 최선이었고,
그게 아니라면 2가지 만이라도 만족하는 곳을 찾고 있었다.
그때였다.
처음으로 쿠팡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쿠팡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필립스를 떠나 다이슨에 합류하기 전, 쿠팡에도 합격한 상태였다.
하루에 4개 인터뷰를 모두 face-to-face로 보고, 최종적으로 오퍼레터까지 받았지만,
오퍼레터가 당시 기준 만족스럽지 않았고,
면접관들이 상당히 지쳐 보였으며,
결정적으로 당시 쿠팡은 적자를 무섭게 쌓아가며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큰 회사였다.
그렇기에 쿠팡이 아닌 다이슨을 선택했고 (다만, 쿠팡의 제안을 바탕으로 다이슨 입사할 때 내 연봉 협상력을 키울 수 있었다.) 이후 쿠팡에 대해서 다시 고민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물류는 여전히 쿠팡의 가장 큰 경쟁력이었고.
쿠팡은 한국이 본사였으며.
내가 관심을 가진 쿠팡 내의 팀과 포지션은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진 그래서 나와 인도인 Director, 이렇게 2명이 업무를 시작할 수 있는 그런 기회였다.
1차 면접이 Zoom으로 진행되었고,
2차 과제 전형을 받은 상태.
과제 제출 마감일이 아직 되기 전, 쿠팡 인사팀에서 연락을 받게 되었다.
"상민님, 해당 포지션이 갑작스럽게 헤드카운트 프리징이 되었어요. 다시 열릴 때까지 기다리셔도 되지만 내부적으로 봤을 때 적절한 포지션이 있는데 이쪽으로는 어떠세요?"
그렇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나는 쿠팡의 신사업이었던 로켓그로스 사업부의 Program Management 기회를 마주하게 된다.
...
"감사해요 상민님! 두 달 정도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네~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인수인계 잘 마무리하도록 할게요!"
쇼피 지사장님과 이야기한 퇴사 일정은 두 달 뒤.
내 후임은, 내가 제안했던 대로 팀원 중 한 명을 승진시키는 것으로 확정.
(이 친구에 대해서는, 반년 전에 이미 파트 리더로 승진시키면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 상태였다.)
두 달간.
내 기존 업무를 줄여가면서 인수인계를 진행하고.
쇼피의 동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쇼피, 그리고 다른 회사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몇몇 회사와 짧은 만남을 통해 서로의 핏을 맞춰보기도 했다.
당시엔 발란을 비롯한 온라인 명품 플랫폼들이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비슷한 스타트업들이 조금씩 생겨나는 중이었다.
이 중 한 곳과 전화 면접을 진행했는데.
"지게차 면허증 있으세요?"
".... 지게차 면허증은 없어요."
내가 아무리 스타트업에 관심이 크다지만 지게차 운전까지는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웠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