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nonfiction)은 사실에 근거하여 쓴 작품을 총칭한다. 역사서, 과학서, 자기계발서, 르포, 인터뷰, 수필, 에세이 등을 포함한다. 논픽션을 잘 쓰는 작가들은 수집, 취재의 달인이다. 내 머릿속 상상으로만 쓸 수 있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대표 편집자들에게 ‘논픽션 잘 쓰는 법’에 관해 물었다. 원고를 쓸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공모전에 응모할 때 생각해야 할 것,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할 때 기억해야 할 것, 참고하면 좋을 책 등을 소개한다.
읽어야 할 책, 다 읽으셨나요?
- 김희진 돌고래 출판사 대표
“인문, 사회 분야는 일반 저자가 혼자서 집필을 하기 쉽지 않은 분야다 보니, 투고 원고를 직접 책으로 낸 경우가 드물긴 해요. 하지만 출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 원고들의 경우 자매 출판사로 이관해 출간을 한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도 투고 원고가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인문사회, 교양 분야의 논픽션은 무엇보다 콘텐츠가 가장 중요하다.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있거나 그 분야를 꾸준히 공부하고 활동해온 사람들이 쓰실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김희진 돌고래 대표는 투고 원고를 볼 때 주제나 메시지가 명확한지를 철저하게 본다. 주제와 메시지가 분명하면 그 분야를 어떻게 다루어왔는지 판단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참고문헌’도 자세히 본다. 관련된 주제의 논의 지형을 알고 써야 하기 때문에 필자라면 마땅히 읽어야 할 책들을 다 읽었는지 꼼꼼하게 살핀다.
“글쓰기의 동기도 봅니다. 책이라는 매체가 자신을 오롯이 담지 않고는 완성하기 어려운 매체라, 이 이야기를 꼭 써야 하는 강력한 동기나 욕구가 있는지 봅니다. 문장이 거칠거나 구조가 불균형한 것은 괜찮습니다. 편집자와 상의해서 조정할 수 있거든요. 위의 요소들을 갖추었다면 책으로 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편집자는 어떤 글을 볼 때, 책으로 출간할 가치를 느낄까. 일단 편집자가 관심 있는 주제와 메시지를 다룬 글을 볼 때 책으로 엮을 생각을 한다. “누구나 잘 만들 수 있는 책, 나보다 잘 만들 사람이 있는 책은 아무리 재미있고 흥미로워도 잘 안 건드린다”는 입장이다.
“제가 편집자로서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는 신화, 상징, 이야기, 생태, 기후위기, 동물, 식물, 페미니즘, 젠더, 친밀성, 정체성, 심리학, 뇌과학, 미디어, 리터러시, 돌봄 등입니다. 이런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연구자들과 작가, 번역자,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등과 협업해 탄탄하고 아름다운 책들을 소개하는 일을 소명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와 지혜를 시대에 걸맞은 언어로 다듬어 소개하는 작업이 다양한 분야에서 창조적인 활동을 하시는 분들에게 양분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에요.”
논픽션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점은 무얼까. 김희진 대표가 첫째로 꼽는 것은 “몸과 마음, 지식과 정보가 잘 어우러지는 글을 쓰는 일”이다.
“인문, 사회, 교양 분야의 논픽션은 어쩔 수 없이 객관적인 정보의 양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정보들을 잘 소화해서 소개하면서도 자신의 경험과 생각, 감정을 충분히 담아야 좋은 책이 될 수 있죠. 그래서 몸과 마음이 다 중요합니다. 몸을 돌보지 않고 마음을 돌보지 않고 계속 공부만 하거나 글만 쓴다고 해서 좋은 책을 쓰게 되는 것 같지 않아요. 삶 안에서 그런 주제들을 잘 소화해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믿어요. 돌봄에 대해서 글을 쓰는데 돌봄 때문에 울어본 적도, 고통스러워본 적도, 갈등 상황에 놓여 싸우거나 다툰 적도, 기쁨으로 가득차본 적도 없다면 돌봄에 대한 글을 쓰기가 어려운 것처럼요. 그 감각과 감정과 경험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거기에 공부가 더해진 후에 계속 쓰고 고치고를 반복한다면 날이 차고 달이 차 어느 날 자연스럽게 원고가 나오고 책이 나오는 것 아닐까요?”
김희진 대표는 출판 관련 강의를 할 때 예비 저자들에게 꼭 강조하는 것이 하나 있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된 책들을 충분히 읽은 후 글을 쓰는 일.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만을 담은 논픽션 원고는 출간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대체로 요즘 들어오는 투고 원고들이 적절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개인적인 경험만을 기록한 경우가 많아 아쉽고 안타까워요. 상황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 권의 책을 쓰려면 백 권 정도의 책은 소화가 된 상태여야 할 것 같아요. 위에서는 경험과 감정과 감각을 이야기했지만 그런 측면이 충분히 준비된 이후에는 공부와 책 읽기가 함께 가야 할 것 같아요. 좋은 책들을 많이 찾아 읽고, 내 경험과 생각과 감정을 늘 세밀하게 살피고 기록하시기를 당부하고 싶습니다.”
�김희진 돌고래 출판사 대표
대학에서 영문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하고 2001년 편집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돌베개 출판사를 거쳐 2010년 민음사출판그룹으로 이직, 반비라는 인문교양 브랜드를 론칭해 10년간 운영했다. 2021년 생태전환매거진 <바람과 물>을 창간, 1년 동안 편집장으로 일했고 2022년 돌고래 출판사를 만들었다.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등 서경식 작가의 책 15종에 기획·편집·집필로 참여했고,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주기율표』 ,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걷기의 인문학』 ,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돌봄과 작업』 등을 기획, 편집했다.
인스타그램 돌고래(@dolgorae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