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의 반란

11-2

by 심색필 SSF

“이제는 아무렇지 않나 보네.”

“어... 괜찮아. 마음껏 떠들어. 이제.”

“크크크. 간악한 새끼. 여유가 넘치네.”

“그런데 내가 예전부터 정말 궁금한 게 있었거든.”

“뭔데?”

“네가 나타난 이유가 나의 죄의식, 불안감, 자격지심에서 나온 거랬잖아?”

“그렇지. 그런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게 나니까.”

“그럼 아버지랑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도 너 같은 게 보였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지.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면 죽어보면 되겠네.”

“악마 주제에 일을 너무 열심히 해. 좀 대충대충 해.”

“내가 설렁설렁 일 하는 걸 좀 싫어해서. 그래서 말인데... 궁금하지 않아?”


벨제붑의 날름거리는 혓바닥은 귓속에 들어온 파리보다 훨씬 더 귀를 간지럽게 만들었다.


“너 같은 운명을 가진 자들이 과연 없었을까?”


현생의 편의를 위해 악마와 손을 잡은 자들. 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런 사람이었지만 역사 속에 그런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많았을까 싶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불행을 곱씹으며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단물을 뽑아먹는 인간들. 누군가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했지만 고통 없이 너무나 평안하게 눈을 감은 인간들. 그런 자들이 분명 있을 것 같았다.


“네가 그걸 왜 찾고 싶은지 알아?”

“그런 자들도 벌 받지 않고 여생을 살아갔다는 것을 보며 위안을 삼고 싶은 거겠지.”

“잘 아네. 남얘기 하듯이 하는 게 마음이 들지 않지만 그래도 네 주제는 잘 아는군.”


나라를 팔아먹고 가문을 배신한 역적들. 평생 누군가를 부리며 노력하지 않고 호의호식하던 자들. 그럼에도 그 어떠한 벌도 받지 않고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누리며 그렇게 시대와 역사 속에 잊힌 간악한 자들. 벨제붑이 보여준 쓰레기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록보다 훨씬 더 많았다.


“원래 세상이 불에 탈 때 가장 먼저 없애고 싶은 게 내 흑역사거든. 쓰레기를 제거하는 데는 활활 타는 불보다 좋은 게 없으니까.”

“그럼 너도 불에 타 죽었겠네?”

“여유 좀 생기더니 이제 농담도 할 줄 안다?”


어차피 벨제붑은 나한테 직접적으로 해코지를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쓰레기에서 태어나 다리털을 간지럽히는 파리처럼 신경 쓰이는 짓은 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그는 내게 기생하는 존재였다.


“솔직히 말해봐. 내 앞에 나타난 이유가 진짜 뭔지.”

“말했잖아. 너 같이 속이 더러운 놈들에게서 나오는 그 쩐내를 내가...”

“아니. 솔직해지자고. 혹시 알아? 네가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네가 원하는 거랑 내가 원하는 게 같을 줄?”

“커피에 약 탔니? 왜 정성스럽게 헛소리를 갈겨?”

“너 이 세상에 나오고 싶은 거 아니야?”


내가 당황하면 저런 표정이 나오는구나 싶었다. 벨제붑이 원하는 이 세상에 다시 현현하는 거였다. 원인 모를 사연으로 마음이 더러운 자들의 마음을 갉아먹으며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위태한 정신줄을 연명했지만 그건 놈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든 이 육체를 뺐어 다시 이 세상에 나오고 싶었을 것이다.


“흠... 꽤나 흥미로운 소리를 하네? 너 내가 누군지는 알아?”

“뭐... 정확히는 모르지만 악마겠지? 싸움에 져서 정신 빠진 놈들 눈앞에서나 기웃거릴 수 있는 이빨 빠진 악마새끼.”

“하아... 너 좀 용감하다?”

“내가 원하는 건 나라를 팔아먹고 가족의 등에 칼을 꽂은 그저 그런 쓰레기들이랑 차원이 다른 나쁜 짓이거든.”

“뭐? 세상이 멸망이라도 했으면 좋겠어?”

“어.”


나를 이런 존재로 만든 세상이 싫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만든 그 더러운 돈과 아버지의 그 냄새나는 명성을 통째로 삼켜버렸지만 빛이 나는 금화 뒤에는 항상 원인 모를 악취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이 세상이 완전히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가장 처참하게... 가장 더럽게...”

“참으로 웃긴 자식일세. 그 정도로 가지면 아무리 냄새가 나도 이 세상이 다시 좋아지기 마련인데 말이야.”

“아니 내 생각은 확고해.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아. 특히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거 재밌네. 나랑 비슷한 꿈을 가지고 있군.”


나의 이야기를 들은 벨제붑은 이전보다 훨씬 더 내게 호의적으로 변했다. 아버지의 욕정으로 세상에 나와 형제, 자매들을 빛내기 위한 악의 존재로써 성장했다. 나를 믿어주고 위해주던 클라라를 망가뜨리면서 선조들이 행했던 그 더러운 역사를 다시 내 손에서 반복했다. 깨끗하게 살 수 없는 운명으로 태어난 악인이 쓰레기로 성장할 수 있는 최고의 엘리트코스를 밟은 것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인류를 배신하는 것도 나름 멋지다고 생각했고, 그냥 나 같은 것한테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걸레를 빤다고 수건이 되지 않고, 까마귀를 씻긴다고 해서 백로가 되지 않듯 나는 오히려 내가 걸어갈 길의 최고가 되고 싶었다. 감히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더럽고 쓰레기 같은 운명의 목표를 때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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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인의 반란 ] -> 웹소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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