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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분야에는 다 저마다의 레벨이 있다. 모든 것에 순위가 매겨지고 모든 것에 등급이 책정된다. 누군가는 무재능에 쓸모없는 잉여인간이 되고, 누군가는 장인을 넘어서 정점을 바라보는 해당 분야의 신이 된다.
“가네무라. 역시 멍청한 조센징들을 선동하는 데는 자네가 제일이구만. 정말 최고야.”
“감사합니다. 천황폐하 만세!”
할아버지는 민족을 배신하고 누군가를 선동하는 데 있어서 극악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죄책감이라고는 일도 없는 인간. 시대에 따라 기술과 능력이 빛을 보기도, 쓸모없는 기술로 좌천받기도 하지만 할아버지의 파렴치한은 시대를 막론하고 정점에 가까울 정도로 수렴했다.
“믿습니까!”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잘못한 게 아닙니다! 이 세상이 여러분들의 가치를 보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세공되지 않은 원석인 여러분들에게 저희는 더 큰 빛을 비춰줄 것입니다!”
“믿습니다! 빛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시대가 지나 최고의 수준에 다다른 배신과 선동의 재능을 아버지가 물려받으며 이전보다 훨씬 더 날카롭게 사람들의 마음을 후벼 파며 영혼을 갈취해 갔다.
“메시아. 무슨 생각에 그렇게 골똘히 잠기셨습니까?”
“아... 별 일 아니에요. 그냥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평화로워 보여서요.”
“이게 다 메시아 덕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의 노력 때문이지요.”
이런 말투만으로 온몸에 바퀴벌레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고귀하고 청렴결백한 메시아의 목소리와 말투는 내 입으로 뿜어내면서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걸걸하게 욕지거리를 뱉어내는 벨제붑의 말투가 오히려 더 친근하고 날 편하게 만들었다.
“말했잖아. 넌 태생이 더러워서 이런 게 훨씬 더 잘 맞는다고.”
“진짜. 자꾸 긁을래? 내 몸에서 기생하는 주제에 툭하면 뚫린 입에서 거지 같은 소리를 쏜다?”
“뭣 같으면 빨리 자살시도 좀 해줘. 내가 그 몸 가져가게.”
벨제붑은 자신이 이 몸을 가지기 위한 여러 가지 조건을 제시했지만 그중에 항상 자살을 추천했다. 수많은 죄악 중 자살이라는 죄악이 워낙 그 무게가 무겁기도 했지만 사고나 병마에 의한 사망과 자살에 의한 사망은 그 궤가 다르다고 했다.
“제발 빨리 죽어줘. 그래야 내가 네 몸에 들어가니까.”
“그런데 왜 하필 자살이냐?”
“잘 생각해 봐라. 우리가 너희 몸에 들어가면 육체라는 한 집 안에 두 개의 정신이 공존하는 건데 억지로 집에서 너를 빼내려 하면 나가고 싶겠어? 스스로 집을 나와야 빈집에 침입을 하지.”
그들에게 있어 육체는 그저 껍데기에 불과했다. 주인이 없는 버려진 빈집. 그 빈집에 오래도록 거주하고 있는 것이 생이라는 존재였다.
-쾅!-
-끼이이익!-
전쟁과 사고의 연속에서 벨제붑과 비슷한 악귀들은 오히려 누군가의 몸을 빼앗는데 더 힘이 든다고 했다. 생에 대한 의지와 원념이 강한 자들은 어떻게든지 육체라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자살하려는 자들 중 몇몇은 아예 생을 포기했기에 그 집을 강탈하기 쉽다고 했다.
“제발 시도만 해줘. 너 같은 쓰레기들은 훨씬 더 몸을 뺏기가 쉬우니까...”
“미안하지만 그건 좀 어렵겠다.”
“왜? 어차피 세상 다 망하는 거 보고 싶다며? 나 그런 거 진짜 잘한다니까. 그러니까 나한테...”
“알지. 난 분명 네 도움을 받을 거야. 그런데, 내 손으로 이 세상이 끝나는 걸 볼 거라고. 그러니까, 네가 내 몸을 가지는 거 그 다음이야.”
벨제붑이 날 좋아하는 건 꽤나 오랫동안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와 악에 동화된 나의 심성도 그 연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것은 카페인과의 동화였다.
“넌 확실히 내 피를 이어받을 자격이 있어.”
단순히 잠이 깨거나 각성상태가 오는 것이 아니었다. 강렬한 심장박동의 진동이 귓가까지 진동하며 확장된 동공에서는 더 많은 빛이 기어들어왔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에 훨씬 더 집중할 수 있었고, 한층 예민해진 감각은 사람들의 입가와 눈가의 작은 떨림만으로도 그들이 거짓을 말하는지 참을 말하는지 구별할 수 있었다.
“가브리엘.”
“네. 메시아.”
“저기 벽에 기대고 있는 저 놈이랑 머리에 모자 눌러쓴 저 사람은 꼭 처리해야 합니다.”
“혹시...”
“네. 맞아요.”
커피의 영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난 누가 거짓을 고하고 어떤 쥐새끼가 우리의 정원에 쳐들어 왔는지 쉽사리 구별할 수 있었다. 작은 기침소리 하나만으로 내가 세상을 배신하기 전 나를 배신하기 위해 힘을 쓰던 이색의 인간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왜 자꾸 우리를 못 살게 구는 거죠?”
“너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지금 네 목을 노리고 있는 놈들이 한 둘인 줄 알아?”
“그렇게 자신 있으면 미구엘보고 직접 오라고 하세요.”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 자식이 아주 득의양양하는구나. 어차피 네 목숨도 얼마 남지 않았어.”
“뭐... 저도 그렇게 오래 살 생각은 없는데 그래도 당신들을 천국에 계도하고 가야겠네요. 당신 다음에는 미구엘입니다.”
“잠시만... 잠시...”
우리는 빛의 계시를 방해하는 자들에게 큰 형벌을 내렸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밝은 빛으로 어둠을 밝혀줬다.
“제발... 메시아. 미구엘이 날 죽였다는 소식이라도 들으면...”
“당신은 죽는 게 아니라니깐요. 빛의 계시를 받는 거지.”
가브리엘의 수하들이 미구엘의 부하 중 한 명의 목에 얇고 뾰족한 주삿바늘을 꽂아 넣었다. 겁에 질린 표정을 짓던 미구엘의 부하의 얼굴에 이내 환한 웃음이 퍼져 나왔다. 몸이 완전히 이완된 듯 헤실거리면서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미구엘의 부하를 계도의 돋보기 아래로 데려왔다.
“아... 제발... 제발...”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가브리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검은 천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1M가 넘는 거대한 돋보기 렌즈인 프레넬 렌즈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눈부신 태양의 빛을 한 점으로 모은 프레넬 렌즈의 빛이 미구엘 부하의 미간에 적중하자 이내 고기가 타는 냄새와 함께 화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점으로 수렴된 태양의 빛은 이내 첩자의 몸을 꿰뚫었다.
“여러분. 어둠에 절여져 우리를 타락으로 물들이려던 악귀를 또 계도했습니다.”
“믿습니다!”
“그는 더러운 생각에 물들어있던 악귀였습니다. 빛의 구원이 없었다면 오염된 육신이라는 집에 갇혀 어둡고 축축한 삶을 이어갔을 것입니다.”
“믿습니다!”
“빛의 계도만이 그를 어둠에서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빛으로써 한 줌의 재로 돌아간 그의 맑은 영혼을 위해 기도합시다!”
생을 잃고 나서도 여전히 불타고 있는 그의 시신 위로 우리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했다. 빛의 계도를 보며 신자들은 감동에 젖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카페인의 반란 ] -> 웹소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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