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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좋아하십니까?

제게는 인생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by 심색필 SSF

책 보다 만화를 더 오랜 시간 접해 온 1인이라고 자부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느낀 것은 나는 이런 분야에서도 그렇게까지 딥다이브를 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씹덕이시네요.”

“하핫. 네.”


만화를 보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캐릭터와 동화되는 수준으로 만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뭔가 비주류 만화를 보는 애들을 소위 ‘오타쿠’라 부르면서 멸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제 오히려 그 친구들은 ‘씹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한 분야에 굉장히 깊게 몰입을 할 줄 아는 친구들로 불리게 된 것 같다. 뭐... 이것도 그냥 개인적인 내 생각 중 하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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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영화 '머털도사' ]


어렸을 때 처음 본 만화는 명절에 봤던 ‘머털도사’ 시리즈였던 것 같다. 머리가 거의 빠진 머털도사가 자기 머리카락을 날리면서 도술을 부리던 만화였다. 이후에 봤던 만화 중 뇌리에 깊게 남은 만화 중 하나는 검정고무신이라는 추억의 만화였다. 만화가 시작하면서부터 들리는 경쾌한 기타 소리와 함께 귓가에 맴돌던 노랫가사까지. 추억의 만화를 넘어서 아버지의 세대를 그려낸 대표적인 만화가 바로 검정고무신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만찐두빵’이라는 에피소드는 아직도 길이길이 기억에 남는 역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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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검정고무신' ]


만두를 먹으면 찐빵을 두 개 더 주는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지만 만두집 할머니가 죽기 전에 배고픈 학생들을 위해 속아주는 척 만두와 찐빵을 두둑이 주었다는 에피소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할머니의 얼굴이 좀 검은색이었는데 아마 간기능이 저하되신 걸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스카이라이프라는 접시 달린 케이블 TV가 나오고 우리는 일본만화들을 접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충격을 경험하게 되었다. 포켓몬스터와 디지몬이라는 만화는 초등학교 때 나왔는데 고무딱지와 카드로 일주일 용돈을 탕진하게 만들었고, 코난과 소년탐정 김전일이라는 만화는 토요일 밤에 서늘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후에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내 삶을 흔든 ‘원나블’이라는 콘텐츠가 터져 나왔는데 아마 만화를 좀 본 90년대 생은 거의 다 아는 단어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00년대 아래 친구들이 ‘그건 뭐예요?’라는 듯 나를 쳐다보는 그 눈빛에 세대가 이렇게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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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원피스' , '나루토' , '블리치' _ 左부터 ]


“요즘 만화는 옛날의 낭만이 없어. 그래서 잘 안 보게 되더라고.”


누군가는 굉장히 부러워하는 사실이긴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귀멸의 칼날을 보지 않았다. 아직도 연재 중인 원피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이유도 있었고 무언가 넷플릭스를 통해 존재를 먼저 알게 된 애니메이션 만화들에 또 한 번 영혼을 뺏기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그러다, 최근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알고리즘의 물결에 나도 모르게 접하게 된 한 만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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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주술회전' ]


“료이키 텐카이!”


사실, 처음에 그 짤들을 봤을 때 또 하나의 씹덕물이 나왔구나 했는데 1화를 보고 나서 아마 2일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정주행을 했던 것 같다. 심하게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다. 캐릭터도 너무 매력이 있었고 뭔가 작품에 빠져들게 만드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애니메이션으로 인기를 얻은 작품이라고 치부했던 나 자신이 민망해지는 상황이었다.


'고정관념은 사람을 멍청이로 만든다.'


故 정주영 회장님의 말씀이다. 그 옛날에 말씀하신 문장이지만 현재를 살아감에도 저 짧은 한 마디에 깊은 내상을 입은 느낌이었다.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않는 건 내 선택이지만 세상이 날 기다려 줄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확실히 만화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액션감이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다. 아마, 만화를 애니메이션화 하면서 가장 획기적이었던 작품은 진격의 거인이 아닐까 싶다. 만화를 다 보고 나서도 유튜브에 나오는 작품의 해설을 볼 때마다 이 작가는 정말 천재 중에 천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결말을 염두에 둔 복선부터 '거인이 나타났다.'라는 이야기로 시작한 거대한 이야기까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접했겠지만 혹시나 본 적이 없다면 한 번 보는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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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진격의 거인' ]


‘만화가 그래도 만화지. 애들이 보는 거 아닌가?’


아직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기는 하지만 이미 만화는 한 문화의 객체로써 꽤나 많은 성장을 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팬덤이 많은 한 요소로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잊지 못하는 명대사들이 가득한 인생의 스토리가 되었고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하얀 도화지 위에 그려진 인물이 인생의 모토이자 동경하는 캐릭터가 되었다.


“그래도 만화는 좀 유치하지 않아? 어른들이 아직도 만화 보는 거 난 좀 이해가 안 가더라.”


꽤나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사람들을 만나는 한 자리에서 실제로 들었던 이야기다. 본인들이 인정하지 않는 문화는 문화로 인정하지 않는 부류의 그런 사람이었다. 물론, 나도 점점 급변하는 세상에 있어 어린 친구들이 주도하는 유행에 따라가지 못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그때 만났던 그 사람의 언행을 반면교사 삼으려고 노력 중이다. 사실 본인도 그런 말을 했지만 만화 몇 개만 틀어줘도 금방 눈물을 질질 짜고 있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왼팔의 이것이 동료의 증표다.”


원피스라는 만화에서 이 대사를 듣고 해당 에피소드가 끝나갈 때 다 함께 손을 들어 왼팔의 X자를 들어 올릴 때 아마 꽤나 많은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만화책을 읽다 왼손이 저절로 올라갔을 것이다. 학창 시절이었다면 책상 밑에서 만화책을 보다가 선생님에게 무슨 질문이 뭐냐고 한 소리를 듣는 그런 경험을 했겠지. 학교를 다닐 때 200원을 내고 빌려보는 종이 만화책을 정말 많이 봤다. 그러다 어느 날 ‘마음의 소리’라는 골 때리는 웹툰이 있다고 해서 네이버 웹툰으로 시작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웹툰에만 한 달에 거의 10만 원을 지불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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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나 혼자만 레벨업' ]


‘나 혼자만 레벨업 누적 조회수 143억 뷰.’


143억 뷰라. 전 세계 인구가 거의 2번은 본 수준의 조회수였다. 종이 위에 그려지는 펜체의 질감의 만화들이 사라지면서 이전에 느꼈던 감각이 사라진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웹툰이라는 콘텐츠가 중독성이 더 대단한 것 같기는 하다. 정말 수많은 웹툰들을 봤는데 장르도 그렇고 그림체도 그렇고 너무 옵션들이 다양해서 무언가를 하나 추천하기는 좀 애매한 것 같다.


“너 디즈니 플러스는 가입했어?”


웃기게도 디즈니 플러스도 가입하고 넷플도 결제해서 종종 과거의 만화 영화들도 보고 있다. 옛날 디즈니 만화부터 해서 지브리 스튜디오 시리즈까지 어지간한 건 거의 다 본 것 같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책을 이렇게 읽었으면 아마 평론가적 시점까지 도달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만화대신 책을 읽을 거냐고 물어본다면 조금 더 소신 있게 한 마디 할 것 같다.


“매를 한 대 더 맞는 일이 있더라도 그냥 만화를 보겠습니다. 남들이 책으로 세상을 공부할 때 저는 만화책으로 이상을 꿈꾸겠습니다.”

“그래? 그럼 나와. 한 열대만 맞고 시작하자.”


그때의 선생님들은 그런 나에게 사랑의 찜질을 선사하고 하루를 시작하시겠지. 뭐... 그래도 아마, 매를 맞는 그 잠깐의 순간만을 후회하고 다시 즐겁게 만화를 볼 것 같다. 원초적인 대답일지 모르겠으나 만화가 더 재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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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호랑이 형님' ]


근데... 만신 이상규 님... ‘호랑이 형님’은 언제 다시 연재해 주시나요? 기다리다 죽을 것 같습니다. 매주 치성을 올리고 있습니다. 만신이여. 어서 복귀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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