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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성질 같아서는...

걱정마세요. 짖는 개는 어차피 못 물어요.

by 심색필 SSF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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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스토브리그' ]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나온 수많은 명대사들 중 꽤나 사람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준 대사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러고 싶지 않지만 기분이 태도가 되는 순간은 꽤나 많은 것 같다. 특히나,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일수록 더 기분이 태도가 되는 부분을 조심하지 않는 듯 한 느낌이다. 찐친이라는 이유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연인이라는 이유로 상대방의 기분보다 자기중심적인 시선으로 상대를 대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말 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바닥에 흘린 물을 닦을 수 없듯 터져나온 말을 다시 담아낼 수 없다. 욱해서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나면 괜시리 미안한 마음에 과거의 나를 탓할 때가 있다. 나이가 먹을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했지만 사실 지갑을 열 정도의 수준이 되면 똑같이 입을 열어도 사람들이 체감하는 향기가 다른 것 같다.


“와~ 진짜 하는 말 하나하나가 다 주옥 같으세요.”

“와... 진짜 하는 말 하나하나가 어떻게 다 X같냐?”


돈이 사람을 증명하는 모든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능력이 그 사람의 인간성을 대표해주는 모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험상 대부분 돈이 좀 있는 친구들. 그리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대게 사람들이 좋았다. 쪼들리지 않기에 급하지 않았고, 풍족했기에 고통과 상처를 받아들이는 느낌이 달라보였다.


“누가 주식 사라고 등 떠밀었냐? 주식은 전쟁이야. 미사일 오고가는 전쟁터에 딱총 하나 들고 뛰어들겠다는데... 누가 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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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작전' ]


영화 작전의 대사 중 하나이다. 아마, 우리가 이렇게 발을 동동거리고 살면서 스트레스에 취약해진 이유는 우리가 대사에서 나오는 딱총을 든 보병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 일이 아니면 안되니까. 지금까지 이룬 것들을 쉽게 포기할 수 없으니까. 아무리 힘들고 짜증나도 난 이 상황을 이겨내야만 하니까. 사실, 지금 쓴 이 3문장은 현재의 내가 감당하고 있는 상황들이다. 그래서 지금 내 상황은 어떻냐고?


“넌 언제쯤 상황이 괜찮아지냐?”“이제 좀 성공할 때도 되지 않았냐?”

“하... 이새끼 조금 잘 나갈 때 술 더 얻어먹었어야 했는데.”


친구들과 술 한잔 할때마다 나는 앓는 소리를 했고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면서 힘내라는 말만 반복했다. 마치,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달그락 하고 위로가 나오듯 말이다. 물론, 그 위로에 반이상은 조롱섞인 장난이었다. 나는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지만 이런 반복적인 한풀이도 친구들에게 못할 짓이라는 걸 알았다. 유쾌한 사람 주위에는 유쾌한 사람만 남고, 불쾌한 사람 주위에는 불쾌한 사람만 남으니 그 누가 힘들다느 소리만 떠벌리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겠는가? 어떻게 보면 사는 게 다 그런건데 당장의 고통을 씻어낼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거 같기는 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나의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기 위한 무언가가.


한때는 맛있는 걸 먹는 것이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이었다. 다음날을 생각하지 않고 10시, 11시 신경쓰지 않고 그냥 느낌이 오는대로 배달을 시켜서 음식을 입에 집어넣었다. 물론, 술도 함께. 그러나, 확실히 이 방법은 나를 좀 먹는 느낌이 있었다. 지갑도 금방 헐렁해졌고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쉽게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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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 조선일보에 실린 아로나민 광고 ]


“체력은 국력이다.”


1970년대 국민체육진흥운동과 함께 널리 퍼져나갔던 이 문구. 어느정도 사실인 게 아니라 확실히 요즘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말인 것 같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힘이 있어야 하는데 사회에서 정의하고 요구하는 정말 필수적인 조건 중 하나가 체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러면 답은 운동이지.’


우리집에서는 다른 건 몰라도 운동은 꾸준히 하고 열심히 하자는 그런 모토가 있다. 힘든 때일수록 운동을 하고 몸에 투자를 해야 나중에 뒷심을 발휘해 또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아버지의 기본적인 철학이었다.


“힘이 들고 스트레스 받을 때는 절대 술을 먹지 말아라. 실언할 수 있고, 실수 할 수 있다. 스트레스 받을 때는 땀을 한 번 빼는 게 오히려 좋다.”


짜증이 나고 삶이 힘들 때 마시는 술은 나를 더 아프게 만든다. 괜한 용기를 불어넣어줘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게 만들고 굳이 표내지 않아도 되는 기분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스파링 한 번 하실까요?”

“네.”


이후로는 정말 격하게 땀을 흘리는 운동을 많이 한 것 같다. 격투기 종목 운동을 꽤 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가장 나를 겸손하게 만들어주는 운동인 것 같고 성취감을 크게 고취시켜주는 운동인 것 같기도 하다. 땀을 흘릴 때 나오는 그 개운함과 더불어 상대방과 직접 맞대서 운동을 하는 것이다 보니 내가 얼만큼 성장했는지 상대는 얼마나 강한지를 가장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었다. 그럼에도 삶이 바쁘고 힘들면 운동을 하지 못하는 때가 종종 생기고는 한다. 긴박한 프로젝트가 생겼을 때도 그렇고, 감당하기 버거운 일들을 떠맡게 되었을 때 시간에 쫓겨 나에 대한 투자를 할 수 없는 시간이 올 때가 있다. 그럼 다시 극한의 스트레스가 온다.


‘하아... 내가 살라고 일을 하는 건지... 일을 하려고 내가 사는건지...’


참담한 기분으로 책상앞에 앉아 멍하니 모니터를 보다 전원이 꺼진 화면에 비춰지 찌그러진 만두같은 얼굴을 보고 있으면 괜시리 가슴 속에 있던 ‘심술’이 주둥이를 통해 세상으로 나오려 한다. 자연스럽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이너피스(Inner Piece)를 찾지만 아직까지 꾸준한 효용을 본 것이 없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ASMR.’

‘햇살이 좋은 주말.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JAZZ.’

‘도심 속 야경을 보며 달리는 City POP.’


온갖 방법을 사용하여 청각과 시각을 평온함이라는 키워드에 맞춰보려고 노력하지마 고단하 삶에 벌어진 상처는 쉽게 아물지 못한다. 그래서 최근에 선택한 방법 중 하나는 유튜브에 떠다니는 무료 타로를 자기 전에 틀어놓고 자는 것이다. 사실 이런 유튜브 타로들에서는 좋은 이야기만을 해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누가 시간을 들여서 독설이 날아오는 인터넷 점괘를 들을 것인가? 그들도 사람들을 끌어모아 돈을 버는 것이 주 목적일텐데. 그럼에도 내가 이 타로를 듣는 이유는...


“듣기 좋으니까. 잘 될 거라고 생각하면 잘 될 것 같잖아.”


최근에 욕먹는 양파가 칭찬을 듣는 양파보다 훨씬 더 잘 자란다는 그런 실험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굳이 스스로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자라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이야기들로 자기암시를 걸다보면 언젠가 좋은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잠들기 전에 타로나 사주팔자 유튜브를 틀어놓고 자는 편이다. 아직 정신적으로 미숙하다는 증명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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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달마야 놀자' ]


“밑바진 독에 물을 퍼부을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채웠어?”

“그건... 그건... 그냥 항아리를 물속에 던졌습니다.”

“나도 그냥 밑빠진 너희들을 그냥 내 마음에 던졌을 뿐이야.”


영화 ‘달마야 놀자’에 나오는 명장면 중 하나인 항아리 씬이다. 밑빠진 독에 물을 가득 채우는 방법이 계속해서 물을 때려붓는 게 아니드시 어쩌면 망가진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이 노력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미워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상황도 도저히 채우지 못할 것 같은 욕망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는 욕심이 그 마음 때문에 우리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말라비틀어진 물길일지라도 밑 빠진 독을 놔두고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비가 오고 강이 생겨 독이 물로 가득 차지 않을까?

흠... 글을 쓰면서도 참 어려운 것 같다. 살다보면 방법을 찾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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