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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 한 마디가 어려운 거야...

고마워. 감사합니다.

by 끄적끄적 Mar 21. 2025

 힘든 일도 많은 요즘 평상시에 감사함을 많이 느끼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정말 사소한 일이긴 한데 그 사소함이 굉장히 고마웠다. 최근에 여러 안 좋은 일들이 겹치고 답답한 상황들이 생기면서 주머니가 많이 가벼워졌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받아야 할 돈을 아직 못 받아서 좀 고생을 하고 있다는 점. 사실, 돈이 없으면 밖을 나가기도 귀찮고 싫어진다. 숨 쉬는 것 하나하나가 다 돈이고 길거리를 걸어 다니며 주변을 봐도 모든 것이 지출로 보인다. 그래도 사람을 아예 안 만나고 사는 게 어떻게 말이 되겠는가. 자리는 생기고 돈은 또 나가게 되어있다.


“야. 다음에 돈 들어오면 네가 그때 사.”


브런치 글 이미지 1


 시원한 커피 한잔, 따뜻한 밥 한 끼, 얼큰한 소주 한잔. 매일같이 얻어먹는 건 아니었지만 최근에 친구들에게 조금씩 이것저것 얻어먹는 일이 많았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야. 제일 싼 거 시키지 마. 좀 더 비싼 거 시켜.”“아이씨. 돈도 못 내는데 이 정도 염치는 있어야지.”

“너 원래 염치없잖아. 새끼야. 그냥 평상시 하던 대로 해.”

“여기서 제일 비싼 걸로 주세요.”


 작건 크건 누군가가 나를 위해 돈을 쓸 수 있다는 건 꽤나 감사한 일인 것 같다. 돈을 한 푼이라도 벌어본 사람이라면, 그 돈을 벌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힘들다.”

“나도 뒤지겠다.”“원래 인생이 이렇게 힘든 거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적어도 내 주위에는. 다들 힘들고 다들 고생이다. 매일 아침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싶음에도 터질 듯이 사람들이 꽉 찬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고, 가까이하기 싫은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며, 듣기 싫은 이야기를 견뎌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퇴근도 마음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부기지수고 웃기 힘든 상황에서도 안면근육을 부르르 떨어가며 입꼬리의 위치를 유지한다. 그렇게 힘들게 번 돈을 누군가가 날 위해 써준다는 건 엄청 고마워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받는 것에 당연함을 느끼는 순간부터 그 관계는 조금씩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야. 인간적으로 네가 한 번 사라.”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해? 쟤들도 안 샀는데.”

“하아... 됐다.”


 살다 보면 종종 자신의 돈을 쓰는데 지나치게 인색한 사람이 있다. 돈이 없는 이유는 항상 다양하다.


“야. 월급 받았다며. 한 번 사.”

“나 저축해서 돈이 거의 없는데.”


 실제로 꽤나 들어본 이야기다. 얻어먹을 때는 신나서 먹지만 한 번 사지도 않으면서 돈이 없는 이유가 저축이라니. 저축을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고 지 입에 음식과 술을 갖다 바치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게 아닌데 말이다. 모든 걸 칼같이 나누고 사람을 계산적으로 대하는 녀석들과는 점점 사이가 멀어지게 되는 것 같다.


“와...  진짜 멋지다.”

“크크크. 진짜 등신 같네.”


 그런 친구들 중 대부분은 사람을 대하는 데 급을 나누는 것 같았다. 같은 행동에도 누군가에게는 찬사를 누군가에게는 멸시를 보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고깝게 보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다들 앞에서는 웃고 떠들지만 눈에 거슬리는 행동이 보일 때마다 알게 모르게 뒷담화가 이어졌다.


“하아... 저 새끼 또 시작이네.”

“저번에 여자들이랑 만날 때는 돈 존나 잘 쓰던데.”

“냅둬. 여미새잖아.”

“왜 저러냐? 진짜 존나 이해 안가네.”


 같이 욕을 하면서도 뭔가 좀 뜨끔하는 느낌이 들었다. 대통령도 면전에서 욕을 먹는 세상이긴 하지만 내가 보기 싫은 행동을 할 때도 누군가 저렇게 나를 뒤에서 씹을 것 같았다. 모든 사람의 기준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주변 사람들에게 쓰레기로 보이기는 싫은 게 본능인 것 같았다.


“야. 이번에는 내가 한 번 살게.”

“뭐야? 돈 들어왔냐?”

“얍. 제일 비싼 거 빼고 다 시켜.”

“꺼져, 제일 비싼 거 시킬 거야.”


 한 번씩 돈이 들어오면 지금까지 받은 은혜를 최대한 갚으려고 하는 편이다. 친할수록 돈관계는 더 철저해야 한다고 배웠고 받은 게 있으면 주는 게 인지상정이니까. 이전에는 잘 몰랐다. 그래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나랑 비슷할 줄 알았고, 오래도록 봐왔던 친구들은 다 이해해 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들은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걸. 그래서 요즘은 내가 힘들 때나 형편이 좋을 때나 그 자리에서 나라는 인간을 그냥 그 자체로 봐주는 친구들이 있는 게 좋은 것 같다.


“뭐래. 병신이.”


 거친 욕설과 장난스러운 태도가 기본값이 된 사이지만 사실 항상 다른 인격에 탑승해 나라는 인간이 아니라 내가 속한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행동해야 하는 이 세상에 날것 그 자체로 누군가를 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감사한 일이 아닌가 싶다.


“야. 부모님한테 잘해.”


 이전 같았으면 “네가 뭔데. 새끼야.”라는 말이 먼저 나왔겠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부모님들을 먼저 떠나보낸 친구들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이 대답을 했다.


“잘해야지. 뭘 어떻게 하는 게 잘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받는 게 당연한 관계만 되면 안 된다며 손가락에 열이 날 정도로 타자를 치고 있지만 사실 다른 누구보다도 받는 것이 너무 당연한 사이가 된 건 부모님과의 사이가 아닌가 싶다. 회사 일에 핑계를 대고, 친구들과의 자리로 미루고, 그저 즐기기만 하는 술자리로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을 경시해 왔다.


“힘내라. 아들.”


 사실 항상 가장 많이 응원하고 도와주는 건 부모님인데 평상시에 그 감사함을 자주 잊고 사는 것 같다. 바닥을 찍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받기만 하고 살았는지 알게 된 것 같다. 까치도 은혜를 갚고, 까마귀도 효도를 하고 사는데 어쩌면 나는 새대가리보다 못한 인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언제쯤 조류에서 포유류로 진화할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전화라도 한 번 드려야겠다. 감사하다는 오글거리는 말을 하면 아마 더 걱정을 하실 것 같으니까 그냥 가볍게 인사나 해야지.


브런치 글 이미지 2


“너 요즘 무슨 일 있냐? 왜 이렇게 전화를 하냐?”

“크흠... 일주일에 한 번씩만 할게요.”


 그래도 걱정하시려나? 뭐... 말로는 못해도 그냥 고맙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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