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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기 위해 잠에 들어봤니?

매일 경험하는 대혼돈의 멀티버스

by 심색필 SSF

근 몇 년 동안 숙면이라는 걸 그렇게 자주 해본 적이 없다. 걱정과 근심이 숙면에 가장 큰 해약이라는데 12시 이전에 잠을 자기만 하면 너무 심하게 빨리 눈이 떠진다. 마치, 옆에서 누가 나를 빤히 보다가 잠에서 깨우기라도 하듯 말이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온 밤보다 서서히 해가 뜨는 새벽이 오히려 잠에 들기 더 편한 느낌마저 든다. 프리랜서 특성상 출, 퇴근의 개념보다는 납기라는 단어에 따라 움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남들과 같이 출근을 하기 위해 12시 정각에 눈을 감으면 꼭 귓가에 들리는 소리가 있다.


-바스락. 바스락.-


불이 꺼진 방에 한 남자가 잠에 들자 바퀴벌레와 쥐들이 몰래 기어나와 집안을 들쑤신다. .jpg


바퀴벌레와 쥐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우리 주변에 서식한다고 한다. 인간의 눈을 피해 여기저기 숨어드는 것뿐. 가족들과 함께 살고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그런 경험이 없겠지만 아무도 없는 집 안에 혼자서 잠에 들 때면 그런 경험을 한 번쯤은 해볼 것이다.


-쩌적. 쩌저적.-


집이 내는 특유의 소리가 있다. 마치 집이라는 객체에 생명이 부여되기라도 한 듯 그들은 다들 저마다의 소리를 가지고 있다. 해가 떴을 때나 사람들이 많을 때는 거의 그 소리를 내지 않지만 아무도 없는 고요한 그 시간이 되면 집은 기다렸다는 듯 그 소리를 낸다.


잠에 빠진 한 여자의 뒤로 음흉한 표정을 지은 벽지가 그녀를 보고 활짝 웃고 있다.jpg


-끼익. 찌직. 툭.-


자기 안에 사는 주제에 집을 마음대로 꾸미거나, 청소를 미루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집은 항상 잠에 들기 직전에 그 이상한 소리를 내곤 한다. 어쩔 때는 마치 내게 말을 걸고 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서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잠에 들기 저 뭔가 홀로 불을 켠 침실 한편에서 핸드폰을 보다 잠이 쏟아질 때가 되어서야 잠에 드는 버릇이 생겼다.


배가 고플 때는 먹방이나 음식 영상을.

몸이 찌뿌둥하고 어딘가 뻐근할 때면 운동영상을.

내일의 하루가 막막하고 풀리는 일이 없다고 생각할 때면 타로영상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고 막막하면 영화나 드라마 요약영상이나 과학영상을 본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영상을 보고 있으면 집이 내게 말을 거는 소리를 듣기도 전에 깊게 잠에 빠져든다. 물론, 잠에 들기 전 뇌를 녹이는 짓을 하고 잤기에 항상 말 같지도 않은 해괴망측한 꿈을 꿀 때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난 그런 꿈이 꽤나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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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


‘꿈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다른 멀티버스(다중 우주)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의 삶을 경험하는 것.’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에 나온 드림워킹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야기다. 뭐 정말 말 같지도 않은 꿈들을 꾸지만 그 꿈들이 사실 어쩔 때는 너무 신박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내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 같아 자면서 꿈을 꾸는 게 나쁘지는 않다. 고단하고 반복되는 하루가 끝나고도 또 새롭고 재밌는 장면을 목도하는 느낌도 나고 평상시에는 ‘왜 저런 상상을 하지 못했지?’하는 장면들도 심심치 않게 재현된다.


-위이이이이잉. 위이이이이이잉.-


한 번은 핸드폰 진동소리에 잠에서 깨 눈을 뜬 적이 있었다. 반사적으로 누군가에게 전화가 왔을까 봐 핸드폰을 봤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핸드폰이 이상한 것 같아 전원버튼을 눌러보기도 하고 핸드폰을 손바닥으로 찰싹 때려보기도 했지만 기괴한 진동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고 안경을 쓰자 귓가에 울리던 진동소리의 정체가 눈앞에 들어왔다.


-위이이이이잉. 위이이이이이잉.-


이불이 헝클어진 침대에서 말벌들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jpg


커다란 말벌 하나가 나를 정면으로 노려보며 저 멀리서 언제라도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머리맡에 있는 베개를 집어 들어 녀석에게 던지고 다른 방으로 뛰어 들어가 전기파리채를 가져왔다.


-위이이이이잉. 위이이이이이잉.-


계속해서 귓가에 녀석의 날카로운 날개소리가 들렸고 전기파리채로 녀석의 머리를 후려치자 저릿하게 흘러나오는 전류에 녀석은 가느다란 철조망에 걸려 몸을 부들대었다. 그럼에도 귓가를 울리는 진동소리는 꺼지지 않았다. 자기 몸짓보다 훨씬 더 큰 날갯소리는 점점 더 큰 소리로 고막을 진동시켰고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잠을 자고 있던 침대 이불 밑에서 수십, 수백 마리의 말벌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들이 내게 달려들기 전에 더 빨리 움직여서 말벌들이 완전히 비행하지 못하게 전기 파리채를 휘둘러 녀석들을 제압했지만 놈들을 다 제압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아.. 시발. 꿈이구나.’


평상시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고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런 광경이었다. 그냥 눈에 너무 선하게 보여서 그게 실제인 줄 알았다. 아마, 그날도 잠에 들기 전 집이 내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보다 잠에 든 한 남자를 보고 머리 맡에 있는 작은 전등이 걱정스러운 듯 남자를 말리고 있다. (1).jpg


-쩌저적. 쩌적. 쩌저적. ( 지금 잠들지 마. 다른 차원의 네가 지금 위험해. 지금은 아니야. )-


지금 생각해 보니 집이 내게 내는 소리는 아마 지금 잠에 들면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을 것이라는 신호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몇 개월 같이 붙어살았다고 내게 정이 쌓인 것이 아닐까?


뭐... 이것도 참 신박한 헛소리 기는 하지만 혹시나 다음날 쉬는 날이 있다면... 그리고, 뭔가 좀 기괴하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그런 신비한 꿈을 꾸고 싶다면 잠에 들기 전 여러 영상들과 자극으로 뇌를 한 번 녹여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일 것 같다. 도파민에 절여진 삶이라고 손가락질해도 한 번쯤은 그런 꿈을 꾸면서 ‘와... 꿈 뒤졌다.’라는 말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일 테니 말이다.


물론, 내 기준이라서 맛이 없어도 뭐라고 하지 말고... 참고로 난 비위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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