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있나요?

일단 저는 바람막이

by 심색필 SSF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진 요즘. 사람들이 입는 옷들이 더 다양해진다는 것을 느낀다. 여름, 겨울과 다르게 봄, 가을은 패셔니스타들을 환호하게 하는 계절이 아닐까? 여름에는 대부분 반팔을 입고, 겨울에는 대부분 패딩을 입는다. 회사를 다닌다면 여름에는 좀 가볍고 시원한 하계 오피스룩, 겨울에는 따듯하게 몸을 감싸는 겨울 오피스룩과 패딩. 그런데, 이 봄과 가을은 안 그래도 고민이 많은 현대인들에게 또 다른 고민을 선사한다.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고민하는 순간 또한 굉장히 즐거운 시간이겠지만 한 달 지출의 대부분을 식비에 지출하는 나의 경우로써는 이렇게 귀찮은 고민이 없다.


사람들은 옷이 가져다주는 인상, 느낌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하는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에게 보일 평판을 위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옷을 사 입는다는 행위가 거추장스럽고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생각이 가장 많이 드는 계절은 바로 여름이다. 하루 종일 내리쬐는 태양도 문제지만, 일단 마르지 않은 내 몸은 후덥지근해진 공기 자체를 거부한다. ‘더움’이라는 녀석을 구체화시킬 수 있다면, 아마 알래스카 모기 같은 존재가 아닐까? 엄청나게 많은 수의 더움이 마구잡이로 달려들어 내 몸을 헐뜯는 느낌이 난다. 실내는 에어컨이나 선풍기라는 퇴치제가 있지만, 외부로 나가기만 하면 녀석들이 떼어내려고 해도 떼어지지 않으며 끝까지 날 쫓아온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또 옷을 입어야 하는데, 심지어 그걸 신경 써야 한다니. 어떻게 보면 진짜 고문 중에 상 고문이 아니겠는가?

그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난 여름에도 술자리가 잦은 편이다. 술자리에 즐비한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을 나타내는 가지각색의 옷으로 본인을 나타내는 모습을 보면 마음 한편에 대단하다는 생각과 부질없다는 생각이 동시에 떠오른다. 사람을 괴롭게 하는 이 무더운 여름에도 불편해 보이는 의상으로 치장하는 젊은 청년들. 격식 있는 자리를 위해서, 미친듯한 더위를 참으며 안으로 땀을 내보내는 직장인들. 그리고 거울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한 번씩 후줄근하게 다니는 나의 모습이 굉장히 게을러 보이기도 하다. 어쩌면, 날 꾸미지 않는 것에 여러 의미를 부여한 것뿐이지 사실은 그냥 귀찮아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다 잡고 깔끔하고, 타이트한 불편한 옷을 입는 와중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있는 땀방울을 보면서 ‘그래, 이건 나 다운 게 아니야.’라는 말 같지도 않은 합리화를 시작한다. 특히, 친구들과 술 한잔 할 때 왜 내가 집 앞에서 술을 먹는데 편안하지 않은 복장을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으면 역시 3명 중 1명, 그리고 4명 중 1명은 이미 세팅을 마친 채로 내 옆자리에 앉아있다. 하필 내 옆에 앉아있는 그 친구가 한 번 내게 “야, 너 좀 제발 옷 좀 제대로 입고 다니면 안 되냐?”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이 방아쇠가 되었을까? 이상하게도 그 친구가 그렇게 핀잔 주 듯 내게 하는 그 말을 내가 들으면 그 친구 말을 듣고, 내가 꾸미고 나간 것처럼 보일까 봐 일부러 후줄근하게 입고 나가다가 다들 내 옷차림을 포기할 때쯤 제대로 입고 나간 적이 있다. 뭔가, 엄마가 항상 딱 공부하기 전에 “넌 도대체 언제 공부할래?”라고 말했던 느낌처럼 뭔가 그냥 한 번 친구한테 그리고 사람들을 대하기 위해서는 옷을 제대로 입어야 한다고 압박하는 사회적 약속한테 반항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도 외모가 깔끔하고, 옷 태가 이쁜 사람을 좋아한다. 이것이 바로 ‘내로남불’의 정석인 건가? 하지만, 올해까지는 그냥 좀 내 맘대로 옷 입고, 꾸미지 않고 살고 싶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렇게 자유롭게 다니는 것을 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렇게 마음대로 다니고, 누군가의 시선과 가치관에 대해서 덜 신경 쓸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최대한 온몸으로 자유를 느끼고 싶다는 핑계를 댄다.

다른 사람들은 ‘이것만 보고 일해야지.’, ‘10분만 있다 공부해야지.’라는 생각을 할 때, 나는 항상 ‘이거랑 저거랑 이거까지만 보고 일해야지.’, ‘1시간만 있다 공부해야지.’를 외쳤다. 즐길 수 있을 때까지 즐기고 나면, 죄책감이 훨씬 더 가중이 되어 업무나 공부의 효율이 좋아지는 느낌이 들어서 일부러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직전까지 밀어붙이고 뭔가를 하는 편이다. 어쩌면, 이게 내 외모와 꾸밈에 대해서 내 인생 마지막 핑계가 되지 않을까? 아니면, 내년에도 핑계를 대고 있을까? 그래도, 이제 휘발성 높은 음성이 아니라, 기록이 남는 문자로 기록들이 남으니 뭔가 좀 지켜지지 않을까?

내년 이맘때쯤에는 깔끔한 복장으로 글을 쓰고 있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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