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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화 Dyuhwa Nov 20. 2023

몽환숲_우리의 이야기

눈호랑꽃

- “여기는 디스토피아와 가장 가까운 곳이야.”


관리자가 말했다. 현실, 그 세계 영향을 많이 받아 악몽 같은 곳이라고. 물론 예외인 것들이 존재한다 했지만.


- ‘예외인 게 뭘까?’


우리는 속으로 생각하며 특이한 꽃들이 가득한 꽃밭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의 속 마음을 읽었는지 관리자가 갑자기 호랑백합과 비슷한 꽃을 불쑥 내밀었다.


- “슬퍼 보이면서 강해 보이지? 이 꽃이 대표적인 예외라고 할 수 있어.”


그리고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그 꽃은 현실의 꽃 이름과 흡사한 꽃이었다. 눈호랑꽃이라고 했다.


먼 옛날 마을에서’로 시작하는 뻔하고 뻔한 설화.

마을의 가장자리에 혼자 힘겹게 살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살기 위해 늘 숲으로 향했다. 그날도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숲에 들어갔다. 아주 깊숙이. 열심히 찾다 보니 어느새 캄캄해진 숲은 무서웠다. 들리는 소리라곤 불행한 일이 당장이라도 찾아올 것만 같은 소름 끼치는 까마귀 울음소리뿐이었다. 우는 것에도 지쳐 널브러진 소녀 앞에 반짝 빛나는 무언가가 다가와 쳐다보았다.


- ‘아, 이렇게 죽나 보다.’


심드렁하게 생각하며 눈을 마주쳤다.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해 줄 것 같은 무언가를 눈에 담기 위해. 할짝.


- ‘뭐지?’


황당함에 몸을 일으킨 소녀 앞에는 이마에 달무늬가 박힌 작은 어린 호랑이가 있었다. 호랑이는 소녀의 주변을 빙빙 돌더니 이내 소녀를 감싸 안고 잠들어버렸다. 소녀는 잠시 어이가 없었지만 따스한 체온 탓일까. 자신도 모르게 포근한 꿈을 꾸며 소녀 또한 잠에 들었다. 아침이 밝아왔지만 어린 호랑이는 어미를 찾아갈 생각을 안 하고 소녀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귀찮고 언제 위험해질지 모르기에 쫓아내려 노력했으나 호랑이는 계속 곁을 지켰고 내심 외로웠던 소녀의 마음은 조금씩 열렸다.


- “너 나랑 같이 살래?”


그렇게 소녀와 달호는 같이 살게 되었다. (달무늬를 가진 호랑이라 이름을 달호라고 지었다.) 마을에서는 호랑이가 크면 잡혀 먹일 거라고 얼른 다시 숲에 갖다 놓으라고 했지만 소녀는 그러지 않았다. 소녀는 오히려 호랑이를 위해 자신이 살던 집도 마을에서 가장자리위치 했음에도 좀 더 멀리, 멀리 가 집을 짓었다. 그렇게 소녀와 같이 성장한 달호는 마을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마을을 수호하는 영물이 되었다. 마을은 언제나 달호 덕에 평화로웠고, 평화로움을 원하는 다른 마을 사람들이 이주해 마을은 점점 커지며 번창하였다. 이에 화가 난 다른 마을이 자들은 한 곳에 모여 달호를 쫓아낼 궁리를 하게 되었다. 시작은 달호 마을 가축들을 호랑이가 죽인 것처럼 훼손해 놓는 것이었다. 그다음은 노래였다.


- “호랑, 호랑, 달호랑이 붉은 달이 뜨는 날 붉게 타오른다. 활활 모든 게 다아 타오른다. 호랑 호랑 불을 부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이장들의 풋돈에 신나 노래를 불렀다. 이 마을, 저 마을 퍼져나가는 노래와 사라지고 훼손되는 가축들로 달호네 마을 사람들은 달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의심은 금방 확신으로 돌아섰다. 궁지에 몰린 소녀와 달호.


- “아줌마, 아저씨, 달호가 그럴 일 없잖아요. 달호는 그동안 우리를 지켜줬잖아요. 다 아시면서……. 알잖아요. 다 저거 잘못된 소문인 거 아시잖아요!”

- “예전엔 그랬을지 몰라도, 결국 짐승인 게야! 짐승은 본래 자신의 본능에 따라. 이년아. 이것들을 봐라. 호랑이 짓이 아니면 무엇이 이랬단 말이냐. 계속 두면 우리도 이렇게 당할 거야! 그전에 쫓아내야 해!”

-“아뇨, 아니라고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어떻게요! 왜 아무도 믿어주지 않으시는 거예요!”


달호를 지키기 위해 억울함을 아무리 호소해도 소용없었다. 아무도 소녀의 말을 믿지도 듣지도 않았다. 소녀는 믿지 않는 이들에 화가 났다. 마을 사람들이 달호를 향해 돌과 무기를 던지는 모습을 보자 소녀의 눈에선 아주 뜨거운 눈물이 흘렀고 검붉은 분노가 타올랐다. 착한 달호를 이대로 두면 마을 사람들 손에 죽을 수 있었다. 소녀는 더 이상 달호 없이는 살 수 없는 삶이었다. 소녀는 달호를 숲으로 데려간 후 숲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달호또한 소녀 없이 살 수 없는 삶이 돼버린 지 오래였다. 달호는 덩그러니 앉아 소녀가 돌아가자고 말하길 기다렸다. 그런 달호를 소녀는 매정하게 돌아섰다. 달호는 점점 멀어지는 소녀를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다시 돌아오리라 믿으면서 달호는 기다렸다. 마을에 돌아온 소녀의 손에 횃불이 들려져 있었다. 소녀는 노래를 부르며 마을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 “호랑, 호랑 달호랑 그것이 나라네. 붉은 달, 붉은 나의 눈이 타오르네. 달아 달아 붉게 타올라라. 모든 것에 타올라라. 아아, 붉은 달, 달호랑이는 나였다네. 활활 타오른다.”


소녀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고 얼굴에 알 수 없는 미소만 가득했다. 마을에 불이 번지기 시작하자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불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 소녀를 향해 뛰어갔다. 불타오르는 마을에 뒤틀린 분노는 이제 소녀에게로 향했다. 마을사람들은 소녀를 마을 가장자리에서 가장 먼 곳, 소녀와 달호의 소중한 보금자리에 소녀를 밀어 넣고 마녀라며 불을 질렀다. 따스했던 보금자리에서 소녀는 마을사람들 손에 노래처럼 활활 타올랐다. 기다리다 지쳐 스스로 마을로 돌아오던 달호는 그 광경을 목격했다. 달호는 소녀를 구하기 위해 불 속에 뛰어들었다. 슬픔의 절규가 마을에 울려 퍼졌다. 시커멓게 타버린 소녀를 본 달호는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해치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달호를 향해 칼을 던졌다. 달호와 소녀는 시퍼런 절규와 함께 타올랐다. 달호는 소녀를 지키지 못했다는 분노와 슬픔에 죽어 영혼이 되었음에도 보금자리를 지키고 또 지켰다. 소녀의 마지막 자리, 이곳을 누가 훼손할까 걱정하며 그렇게 달호의 영혼은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자리에 뿌리를 박았고 뿌리는 싹으로 싹은 자라 꽃이 피었다.


우리는 꽃을 다시 바라보았다. 햇빛에 반짝이는 꽃잎과 눈빛에 사랑하는 이의 흔적을 지키려는 아련하고도 씁쓸한 감정이 느껴졌고 향은 달콤하면서도 섬뜩한 분노가 있는 듯했다.


- “그래서 말 그대로 눈호랑꽃이야. 꽃말은 수호, 분노에 찬 슬픔. 달호는 몽환숲 호랑이였어. 그래서 아주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지. 꽃을 가지고 있으면 위험한 일에서 지킴을 받아. 그래서 예외적이야. 악몽과 욕망, 어두운 것들이 가득해야 할 곳에 오로지 따스함만이 존재한 것이 있잖아.”


관리자는 자기가 이야기를 하면서도 다시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 “그 이후는 어떻게 됐어요? 너무 억울하잖아.”


우리는 말했다. 그 말에 관리자는 뭐가 웃기는지 낄낄 웃었다.


- “뻔하잖니. 뻔하디 뻔한 설화야. 이야기 결말 뒷이야기도 마찬가지지. 달호의 수호를 받지 못한 마을은 망했어. 다른 마을 이장들이 원하던 대로 이루어졌지. 그리고 그들은 아주 잘 먹고 잘 살았단다. 진짜 끝은 현실이었거든. 권선징악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아무 일 없다듯이 흐르다 시간의 흐름대로 다른 마을도 그저 사라졌을 뿐이야. 뭐 여기가 그 보금자리 위치였다고 하나 봐. 그래서 여기서만 피는 듯해. 어쩌면 여기서 또 다른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기다리는 건 아닐까?”


우리는 손에 든 꽃의 눈을 하염없이 쳐다보다 관리자가 들려준 이야기를 조용히 적었다. 그리고 관리자는 우리의 재킷에 꽃을 꽂아주었다. 잘 간직하고 있으라며 또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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