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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투자자의 편지
15화
2월 7일의 편지
나의 아버지에게
by
아르노
Feb 7. 2024
곧 설입니다.
이번 설에는 여행 일정이 있어 시골에 가지 못할 것 같아요.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시고 빈 집으로 있는 시골집으로 명절 때마다 내려가시는 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같이 내려가서 이것저것 정리도 같이 하고 해야 하는데요.
명절이다보니 이런저런 생각과 감정이 교차합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사업이 잘 될 때
아버지는 늘 호탕하고 자신감이 넘치셨어요.
그러다 사업이 무너지고 나서 집 여기저기에 빨간 딱지가 붙었을 때 아버지는 제가 알던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 뒤로도 아버지는 이것저것 하셨지만 조급한 마음과 불같은 성격
으
로 생각만큼 잘 되지도 않으셨
던
것 같아요. 시기도 맞지 않았겠죠.
아버지도 이래저래 정신없으셨겠지만, 저도 저 나름대로 정신이 없었어요.
공부 욕심이 많았던 저는 학원에 가고 싶어서 친구들을 많이 따라다녔
거
든요.
시범 강의를 듣는다는 명목으로 이 학원 저 학원을 전전하며 몰랐던 내용을 제 나름의 방식으로 보충해 나갔습니다.
결국 동네에 있는 모든 학원을 돌아다니고나니 저는 이제 시범 강의를 들을 학원이 없었어요.
많이 힘들었습니다.
혼자 공부하는 방법을 몰랐던 저는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상황을 바꾸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건 공부 밖에 없는 것 같았어요. 근데 이것마저 잘되지 않았거든요.
정말 많이 미웠습니다.
왜 아무것도 지원을 해주지 못했는지요.
능력 없는 아버지를 한탄하고 또 한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로 무의미한 한탄이었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학원을 다니자."
중학교 3학년 때에 처음으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좋은 고등학교에 가게 되고 나니 어머니가 이야기
하
더라고요.
"이제는 정말 힘들 것 같아. 혼자 어떻게 안 되겠니?"
이때 아버지는 곁에 없으셨죠.
알고 보니 어머니가 야간 아르바이트를 더 하면서 버티셨던 거예요.
힘든 어머니의 얼굴을 보니 당신에게 더 화가 났습니다.
그렇게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당신에게 문자를
받
았습니다.
"별일 없니?"
그렇게 연락이 된 아버지는 강원도에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먼
친척분의 도움을 받아 이런저런 일을 하고 계셨죠.
이때가 제가 대학교 1학년,
6
월이었을 겁니다.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제가 몇 개월동안 일하던 학원에서 잘리고 다음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노력하던 중이었거든요.
여윳돈이 없어 미숫가루를 타먹으며
하
루하루를 버티던 시절입니다.
아버지는 제게 60만 원을 송금해 주셨어요.
감사하다는 답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화가 풀리지 않았었나봐요.
그때도 모든 게 당신 탓 같았습니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었습니다.
아버지도 자책을 많이 하셨다는 것을요.
우리에게 당당하지 못한 당신을 드러내기가 싫어서 계속 숨으셨다는 것을요.
시간이 많이 지나, 가볍게 술 한잔 할 때 아버지는 저한테 말씀하셨죠.
"더 열심히 살라고."
울컥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왜 그리 울컥했는지,
그간 있던 일과 감정이 섞이며 서러운 감정이
터
져버린 것 같아요.
아버지의 그간 상황을 들은 상태임에도 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도 어렸나봐요.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내뱉었죠.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는데, 잘하고 있다는 말은커녕 왜 더 열심히 살라고 하세요.
그럴 자격이 있으세요? 저에게 무엇을 해주셨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셨을 때가 지금 제 나이보다 어리더라고요.
아버지도 저와 똑같았겠죠.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는 중인데 너무나 힘든 일을 겪은거죠.
아버지 역시 그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으셨을 텐데요.
아버지, 죄송했습니다.
진심이에요.
지금은 저도 더 성장
하
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스스로 이런저런 노력을 하면서 상황을 바꿔보려 하고 있어요.
조금씩 바뀌고 있고요.
아버지의 과거도 하나 둘 용서되고 있어요.
아버지의 과거가 문제가 아닌 걸 알게 되었어요.
제가 잘못한 것들이 더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
어
요.
과거들을 이제 탓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약했던, 성숙하지 못했던 저에게 분풀이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었고 그곳에 약해진 아버지가 있었을 뿐이에요.
아버지는 제 안에 모든 걸 단단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많이 힘들게 찾으며 걸은 길이지만, 이 길을 걸으며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뿌리 같은 마음과 삶의 태도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아버지의 과거의 삶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자랑스럽습니다.
끝까지 버티시며 마침내 일어서신 당신을 보면요.
자그마한 사업을 하시며 바쁘실텐데 대학원도 졸업하시고 계속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배우고 있어요.
맞아요.
아버지가 그때 술자리에서 하신 말씀대로 정말 열심히 살게요.
이제야 그 묵직했던 한마디가 어떤 의미였는지 깨달았습니다.
아직은 당신을 품을 수 있는 품이 충분치 않습니다
만
,
그 언젠가 당
신
을 편안하게
안
을 수 있는 품을 만들
어
볼게요.
그리고 지금은 압니다.
당신의 노력이 있었기에 내가 있다는 것을요.
아버지,
후회되는 모든 선택을 실수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버지
스스
로도 좀더 칭찬해주세요.
선택의 그 순간 당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니깐요.
(추신
)
저는 이 편지를 아버지에게 전달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냥 아버지에 대한 제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그냥 제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설 끝나고 한번 찾아뵐게요.
식사나 한번 해요. 아버지.
당신이 알려준 이 삶,
절대로 대충 살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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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투자하는 다독가입니다. 자본주의 생존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책에서 찾고, 그중 핵심 문장을 꾸준히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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