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살이 (7)
자칭 국밥부장관이 내가 국밥 한 그릇 가격의 스무디볼을 사 먹었다. 꾸따에 Crumb and Coaster라는 브런치 집이 있었는데, 어제 친구가 먹은 스무디볼을 한 입 뺏어 먹다가 그 황홀한 맛에 빠져들어 오늘 또 방문하였고 어제 먹었던 그 메뉴를 그대로 시켰다. 한국이었다면 저 말도 안 되는 과일과 견과류 덩어리로 나의 점심을 때우는 일은 애초에 생각도 할 수 없었겠지만 여기는 발리다. 국밥의 마무리를 지을 때 자주 쓰는 스킬인 밥그릇 기울이기를 여기서도 보여줬다. 한 숟갈의 국물 아니 스무디도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워냈다. 다 먹고 처음 든 생각은 "아, 이거 집에서도 해 먹으면 진짜 좋겠다."였다. 스무디볼이나 포케 같은 메뉴들은 보통 여자들이 많이 먹는다는 생각, 그렇게 포만감이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 그리 우수한 영양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생각 등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부순 한 끼의 식사였다. 발리라는 새로운 환경에 오니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던 고리타분한 생각들이 사소한 계기로 점차 변화하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9000원은 살짝 아리송하다.)
발리에는 카페 겸 브런치집이 상당히 많다. 요리의 수준도 수준급이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라 그런지 그에 맞춰 서양 음식들이 거리에 즐비하다. (물론 사악한 가격으로 인해 매장 안에는 관광객들로 가득 차있다.) 커피 먹는 즐거움에 매일 카페를 방문하는데, 오늘은 BAKED라는 곳에서 라테를 한 잔 했다. 직접 원두를 볶아서 팔고 있었다. 머그컵, 텀블러, 필터는 물론이고 요즘 트렌드에 맞춰서 자체 원두로 만든 네스프레소 캡슐도 판매했다. 디피 되어있는 상품들이 꽤나 시선을 사로잡았고, 커피와 디저트를 먹기 전에도 맛이 있을 수밖에 없겠구나를 직감했다. 실제로 입에 가져다 넣는 것을 내 직감을 확인하는 용도밖에 되지 않았다. 브랜딩이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프랜차이즈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찾아보니 내가 2주간 머무르는 짱구에도 매장이 있었다. 다음 주쯤에 다시 방문해 보리라. (커피 한 잔에 한국이랑 똑같은 4000원이라니..)
다음 주부터는 완전한 vacation이 아닌 workation이므로, 방학의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해 저녁은 거하게 먹었다. 테이블 바로 앞에서 라이브 공연을 들을 수 있었다. 3명에서 기타 2대와 조그마한 드럼 1대로 올드팝을 연주해 주었는데,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분위기에 취했다. 연주하는 그들의 눈에는 행복이 가득해 보였다. 그 모습이 부러웠다. Hey Jude를 시작으로 No woman, no cry까지 익숙한 노래들이어서 고개를 흔들거리며 작게나마 따라 불렀다. 그 모습을 봤는지 기타 연주하시는 분이 신청곡이 있냐고 물어봐주었다. 별생각 없이 좋아하는 노래인 Piano Man을 신청했는데 알고 보니 피아노가 없었다. 재치 있게 I am a Guitar Man이라고 맞장구 쳐주고 바로 연주를 시작해 주었다. 마침 전주가 끝날 무렵 주문한 해산물 플래터가 나왔다. 랍스터를 먹을 때 즈음 Piano Man의 하이라이트인 부분이 나오더라. La la la, di da da~~ La la, di da da da dum~. 음악적으로 연주가 얼마나 뛰어났나는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있어 발리에서 맞은 최고의 저녁이었다. 랍스터 역시 내가 그동안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예전에 베트남에서 해산물 먹을 때 이렇게 안 비쌌는데, 10만 원이 넘어가는 가격을 보고 깜짝 놀라긴 했다.)
사실 지난 열흘 동안 발리의 매력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왠지 모르게 앞으로의 시간 동안 발리를 사랑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녁노을이 말해주고 있었다. '여기 사람들이 괜히 많이 오는 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