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富럽지 않게, 나 富끄럽지 않게 34화

by 설다람




보도 자료도 뿌렸다. NK 배너 광고에도 노출시켰다.


'부자고고를 띄운 넥스테이트 팀이 다시 모여 개발한 앱, 임장고고'


'메모만 써도, 위치와 매물 정보, 걸음 수가 자동으로 기록되는 신개념 임장 메모앱.'



그런데 3주 동안의 다운로드 건 수는 1,500건이 전부였다. 헬렌과 세안나가 전력을 다해준 덕에 메모 내용을 기반한 매물 추천 기능을 빠르게 추가해 선보였는데도, 사용자 수는 늘지 않았다. 1,500명도 활발히 앱을 사용하지 않았다. 한 가지 희망적인 사실은 1,500명의 사용자 중 83%가 평점을 남겼고, 평균 평점이 4.8점이란 것이었다. 마케팅이 문제였다. 부자고고 리뉴얼 때와 상황이 달랐다. 부자고고는 이미 인지도가 있는 상황에, 인플루언서 부밝남의 영상이 바이럴 되면서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제로에서 시작한다는 개념을 라선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라선을 부동산 아카데미를 비롯한 부동산 카페에 들어가 광고글스럽지 않은 앱 리뷰를 작성했다. 계정이 정지당했다. 부동산 투자 오픈 그룹방에 들어가, 은근슬쩍 앱을 추천했다. 효과는 미미했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었다.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라선의 머리엔 토스트기 10대가 동시에 달궈지고 있었다.



회사의 자금이 말라가고 있었고, 웨일은 피가 말라가고 있었다. 두 달 전부터 웨일은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하고, 무급으로 일하고 있었다. 리코로부터 받은 투자금은 이제 5,000만 원도 남지 않았다. 이번 달 월급을 지급하고 나면, 마이너스가 된다. 퀵펜슬에서 나오는 수익이 사무실 유지비를 충당할 수 있다는 사실에, 웨일은 신에게 감사했다. 다음 달 월급을 지급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대출을 하거나,


투자를 받거나.



사업 초기에 흥미를 보였던 투자사들의 시선은 모두 떠났다. 엔젤윙즈만이 유일하게 넥스노트를 살펴보고 있었다. 웨일은 고양이 꼬리를 잡는 심정으로 민초율을 직접 만나기로 했다. 넥스테이트에 있을 때, 리코와 함께 몇 번 본 사이였지만 단 둘이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초율은 리코와 다른 색으로, 어딘가 의뭉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순진하면서도, 절대 손해는 안 보는, 그런 사람. 약속 장소는 당좌역 인근에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의 미팅룸이었다. 엔젤윙즈 사무실과 넥스노트 사무실의 중간 지점이었다. 서로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기에, 선택한 장소였다. 웨일이 먼저 도착해, 룸 안으로 들어가 초율을 기다렸다. 곧 초율도 룸으로 들어왔고, 둘은 가볍게 인사했다. 웨일은 바뀐 명함을 초율에게 건넸다.


"오랜만이네요. 한 대표님"


"민 팀장님도요. 덕분에 넥스테이트를 잘 마무리할 수 있어요."


"이 대표님이랑 넥스테이트 분들이 내신 결과죠. 저는 조율만 했죠."


"저희도 그 조율이 필요합니다."


웨일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최근 넥스노트가 보여준 행보를 지켜보고 있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확신이 안 들어요."


심사역 경력에 흠집을 낼 수도 있는 모험일 것이다. 웨일도 초율이 주저하는 이유를 이해했다. 충분히.


"지금 성과를 당장 내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회사의 잠재력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앱 자체의 완성도는 뛰어나죠. 마케팅에 조금 더 힘을 쓰기만 하면, 판도가 뒤바뀔 것입니다. 저평가된 기업을 발굴해 슬링샷을 쏘는 게, 엔젤윙즈의 투자 전략 아닌가요. 저흰 날아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웨일은 당당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게 티 나선 안 된다. 그러면서도 간절함을 보여야 한다. 매력적인 아이템을 팔기 전에, 매력적인 CEO가 되어야 한다. 리코를 지켜보며 배운 사실이었다. 뒤이어 준비한 자료를 꺼내 비즈니스 모델을 자세히 설명하고, 향후 계획을 브리핑했다. 초율은 유심히 자료를 살폈다. 몇 가지 질문을 초율이 던졌고, 웨일이 답했다. 넘어와라. 웨일은 속으로 기도했다.


"투자심의위원회를 모집해 볼게요."



기도를 들어주었다. 어떤 신인지는 모르지만.





도시락 점심을 먹고 나서 열을 식히러, 라선은 휴게실 소파에 반쯤 누웠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헬렌이 휴게실로 들어왔다. 헬렌은 사과 콤부차를 타고는 라선 맞은편에 앉았다. 기척을 느낀 라선이 고개를 들고 헬렌에게 녹아내리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머리가 어질하네요."


"잠시 낮잠 좀 자요"


"앱 생각 때문에, 쉴 수가 없네요."


"게임이라도 해 봐요. 생각 지울 때는 게임이 딱이에요."


"무슨 게임인데요?"


라선이 한숨 쉬며 말했다.


"엘리세바요. 옛날 PC 게임인데 모바일로 다시 나왔어요."


헬렌은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게임도 못하면 스트레스 받지않아요?"


"엘리세바는 그냥 탐험하는 게임이에요. 맵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광물도 발견하고, 새로운 크리쳐도 잡고."


게임이라, 라선은 생에 단 한 번도 게임을 해 본 적 없었다. 시간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헬렌은 라선의 눈치를 살피다 말했다.


"안 하셔도, 혹시 초대해 드려도 될까요. 그러면 광물이 나와서..."


"초대 링크로 가입만 하면 되는 거예요?"


"네!"


헬렌이 초대 링크를 보냈다. 중세 시대 기사와 우주선, 광선총과 창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의 썸네일이 떴다. 링크를 클릭해 게임을 받으려 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웨일이었다.



"뭐라고요!"


라선이 비명을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웨일은 5년 전 첫 차로 구매한 경차, 보아즈를 타고 피칭 장소로 향했다. 검은색에 가까운 남색이었다. 최근 신경을 너무 쓴 탓인지, 안구건조증이 더 심해졌다. 운전하기 전에 인공 눈물을 넣었다. 처음 세 방울을 바닥에 떨어뜨려, 미세 플라스틱을 빼내고 한 방울 씩 양쪽 눈에 넣었다. 도착할 때까지는 눈이 시릴 일은 없을 것이다. 처음 운전을 배웠을 때가 떠올랐다. 웨일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면허를 땄다. 돈을 아끼기 위해 독학으로 필기시험을 봤고, 유튜브 영상을 보고 시뮬레이션했다. 그렇게 합격하겠냐고, 주변에 킬킬거렸다. 아랑곳하지 않았다. 해내기만 하면 실로 경제적인 선택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그렇게 따냈다. 총 비용은 9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제 웨일이 움켜쥐고 온 지론이었다. 리코의 회사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리코가 흔들고 간 웨일의 머리 속은 스노 글로브처럼 생각의 조각들이 부유했고, 다른 풍경을 만들어 냈다.


넥스노트를 맡게 된 건, 그 풍경 속에 서 있는 자신을 보기 위해서였다.



보아즈는 가볍게 도로를 주행했다. 웨일은 타고 난 운전자였다. 좌회전 신호를 받아 운전대를 왼쪽으로 돌려 나갔다. 그때 반대편에서 승합차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왔다. 승합차의 범퍼가 그대로 보아즈의 후미와 충돌했다. 웨일의 차가 반 바퀴를 돌고 정지했다. 승합차는 멈추지 않고 지나갔다.



. 웨일의 몸이 옆으로 꺾였다. 돌아왔다. 머리를 유리창에 박아 현기증이 났다. 누군가 창문을 두드렸고, 웨일은 가까스로 문을 열었다. 누군가가 119와 통화를 하며, 웨일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으세요?"


귀가 멍멍했다. 중요한 일이 있었는데, 생각나지 않았다.


"괜찮으세요?"


중요한 일...


웨일은 폰을 열어 전화를 걸었다.



"라선 씨, IR 피칭 대신 좀 가주세요..."


폰을 떨어뜨렸고,


화면이 꺼졌다.





웨일의 폰으로 낯선 남자가 상황을 전했다. 허니맨이 웨일에게 가기로 했고, 라선은 웨일의 지시대로 IR 피칭 장소로 갈 준비를 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갑작스러운 출장, 갑작스러운 임무였다. 발표 자료를 메일로 보냈고, 혹시 몰라 USB도 챙겼다. 기획팀과 공유하긴 했어도, IR 피칭은 오롯이 웨일이 책임지고, 주도했다. 라선은 IR 피칭을 어깨너머로도 본 적이 없었다. 투자심의회는 문자로만 보았고, 지나가는 소리로만 들었다.


시간도 부족했다. 심의회가 열리는 곳까지 택시로 35분이 걸렸다. 지금이 딱 발표 35분 전이었다. 택시보다 빠른 교통수단이 필요했다. 라선은 1층으로 내려가며, 가장 빨리 이동하는 법을 검색했다. 그리고 퀵이 사람도 배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 턴을 지나갔다. 두 턴이 시작할 때, 담당자가 전화를 받았다. 퀵 업체 직원이라기엔 말 속도가 지나치게 느렸다.


-그..배차까지..한 10분 걸릴 수..도 있어요..


"10분이나요? 더 빠르게 안 되나요?"


-빨리 잡히면, 더 일찍 갈 수..도 있어요.


"네, 최대한 빨리 부탁드려요."


도로로 나와서 라선을 발을 동동 굴렸다. 웨일의 상태가 걱정되었고, 발표가 두려웠다. 머릿속에서 먼지 구름이 소용돌이쳤다. 10분이 지나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차라리 택시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팔을 뻗고 흔들었다.


그때 누가 라선의 팔을 낚아채,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혔다.


"주소를 제대로 찍었어야지. 뺑 돌았잖아."


민하가 꾸짖었다.


"퀵?"


라선이 물었다.


민하 대신, 고양이가 뒤에서 헬멧을 씌워줬다. 헬멧을 쓰자마자 오토바이가 직각으로 방향을 꺾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속도는 무자비했다. 벽에 조금만 스쳐도 피부가 뜯겨나갈 것 같았다. 라선은 민하의 허리를 움켜잡았고, 타아와는 라선의 헬멧을 움켜잡았다. 곧바로 고속화도로에 진입한 오토바이는 이제 차 사이를 거침없이 지나갔다. 코너에서 옆 차와 거의 치일 뻔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사람, 아니 이것들은 죽어도 상관없는 존재들이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다른 차들은 민하의 오토바이를 보지 못하는 듯했다. 웨일이 교통사고를 당한 마당에, 폭주라니. 어딘가 죄책감이 들었다.


"아무도 안 다쳐."


속을 읽었는지, 민하가 말했다.


어째서인지, 안심이 되었다. 점점 더 가속도가 붙었고, 지나가는 사물들이 폭발하듯 밀려나갔다. 아찔한 속도 속에서 느닷없이 졸음이 쏟아졌고, 급정거와 함께 깨어났다.



끽-



타아와가 헬멧을 벗겼고, 민하가 라선을 던졌다. 라선은 바닥을 한 번 구르고 일어났다.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고개를 들었다. 폐공장 같은 건물, 엔젤윙즈 사옥에 도착했다. 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7분 전이었다. 치솟듯 라선이 2층으로 올라가 철문 옆에 달린 인터폰의 호출 버튼을 눌렀다.


"넥스노트에 유라선 팀장입니다. 투자심의회 발표로 왔습니다."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문이 열렸고, 익숙한 얼굴이 달려 나왔다.


"한 대표님이 오시는 거 아니었어요?"


당황한 초율이 따지듯이 물었다.


"대표님이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대신 왔어."


초율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럼 발표는 누가 해요?"


"아마..내가..."


예감이 좋지 않은지 초율은 손톱을 뜯었다.


"피칭해 봤어요?"


"대학교 때, 조별 발표 정도..."


라선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초율이 손으로 이마를 때리고 눈을 가렸다가, 시계를 봤다.


라선도 시간을 확인했다.


'3분, 남았다.'


복도를 걸어가면서, 초율은 피칭의 핵심을 속성으로 가르쳤다.


"IR 피칭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가능성'을 보여주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라면 뭔가 해낼 것 같다. 그걸 위원들이 느끼게 해야 해요."


"뭔가 해낼 것 같다."


라선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야심차게 내놓은 앱이 지지부진한 성적을 내고 상황에서, '뭔가 해낼 것 같다'를 보여주라고? 웨일은 그걸 어떻게 보여줄 생각이었을까. 초율이 회의실로 라선을 데리고 갔다. 안에는 4명의 위원이 앉아 있었다.


앞으로 나가 위원들을 바라보았다. 임원 면접과는 다른 중압감이 느껴졌다. 초율이 화면에 자료를 띄우고, 포인터를 줬다. 위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집중되었다. 돋보기로 빛을 모아 불을 피우는 듯했다. 등이 저릿하고, 땀이 났다. 긴장하지 마, 할 수 있다. 가슴속의 응원단을 줄지어 세우고, 외쳤다. 할 수 있다.


"시작하시죠."


스포츠 머리에 뿔테를 쓴 남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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