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富럽지 않게, 나 富끄럽지 않게 33화

by 설다람




오전 10시, 지각이었다.


부배중 전화 5통, 부재중 메시지 3건.


그중에, 소배와 반호의 답이 있었다.



"미안한데, 시차 좀 내줄 수 있어요? 11시까지."


라선은 뛰어가며, 팀원에게 전화로 부탁했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허니맨에게 전화했다.


"허니맨, 오후 두 시랑 세 시에 각각 소배랑 반호 미팅 가능해요?"


-둘이 하겠대요?


"오늘 이야기해보고 결정하겠대요."


-오케이 알았어요. 준비해 둘게요.


허니맨이 밝은 목소리로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침부터 질주였다. 달리면, 심장이 뛴다. 심장이 뛰면, 힘을 낼 수밖에 없다. 출근 시간이 지나고 한 템포 느슨해진 도시의 속도를 거슬러, 회사로 달려갔다. 정확히 11시에 터치다운을 했고, 책상을 잡고 숨을 헉헉거렸다.


"힘들면 오늘 하루 안 나와도 되는데."


허리를 숙이고, 가쁘게 숨을 내쉬고 있는 모습을 본 웨일이 말했다.


"소배랑, 반호가 온 대요. 하아, 바로 출근한다는 뜻이 아니라, 오늘 입사 관련으로 미팅하려고 온다는 거였어요. 하아-"


라선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간신히 말했다.


"들었어요. 인사 업무니까, 이제 허니맨한테 맡겨도 돼요."


"제가 억지 부린 건데, 끝까지 책임져야죠."


"억지였으면, 허락 안 했어요. 오늘 불발되면, 바로 공고 띄울 거예요. 알아 두세요. 기획팀장이니까."


"네!"


라선이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소배가 두 시에 도착해, 허니맨과 미팅을 시작했다. 라선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정신은 모두 회의실에 가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소배가 회의실에서 나왔다. 소배는 라선을 보고 인사했다. 잘 부탁합니다. 개발팀으로 간 소배는 세안나와 헬렌에게 인사했다. 세안나는 소배를 헬렌에게 소개해줬다. 내일부터 정식 출근이니. 내일 점심 같이 먹어요. 네, 그럼 들어가볼게요. 소배는 마지막으로 웨일에게 얼굴을 비추고, 돌아갔다.



다음으로 반호가 세 시에 도착했다. 허니맨과 미팅을 시작했고, 똑같이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두 사람이 회의실에서 나왔다. 반호는 라선에게 반갑게 인사하고는, 고론에게 갔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전에 넥스테이트에서 UI를 맡았던 반호라고 합니다. 고론이 자신과 다른 팀원을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반호도 웨일에게 인사하고, 돌아갔다.



두 사람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허니맨이 라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한 고비 넘겼다.



라선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드디어 스타트 라인에 설 선수를 모두 모았다.





프레시와 고론이 휴게실에서 생강 쿠키와 함께 차 시간을 가졌다. 정확히는 프레시가 가만히 있는 고론을 끌고, 휴게실로 온 것이었다. 프레시 우유에 블루베리 가루를 넣고 신경질적으로 잔을 저었다.


"내가 뭐랬어, 고론 지금 넥스테이트 출신이 요직에 다 앉았잖아. 이번에도 둘이 추가 됐어."


"그야, 요직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퇴사했으니까요. 새로 온 분들은 저희랑 같은 직위이고요."


"그게 다 인수하면서 작전을 다 세워두고 퇴사시킨 거지. 게다가 고론은 요직이죠! 디자인팀장이잖아. 그러네, 고론은 왜 안 잘렸지? 나 같으면 고론부터 잘랐을 것 같은데."


프레시가 막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저한텐 말이 없던데요."


의아하다는 듯이 프레시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이번에 새로 온 디자이너가 고론 자리 치고 올라오겠네. 눈에 훤하지."


고론은 조금 전 인사하고 돌아간 반호가 치고 올라오는 모습을 상상했다. 주먹으로 치고, 발을 차고, 올라온다?



다음날 출근한 반호가 어디에 앉으면 되는지 고론에게 물었다. 고론은 바로 답하지 못하고 허둥대다, 나지막이 말했다.


"제 자리가 탐나세요?"


고론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뇨, 빈 자리면 어디든 좋습니다."


휴, 고론은 안도했다.



아침에 작업 환경 세팅을 마친 반호는 프로젝트 진척 상황을 확인했다.


현재 완성된 스토리보드는 잘 짜여져 있었지만, 화면 전환에 조금 어색한 부분이 있어, 보완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이전 디자이너의 노트북에는 만들다 만 컴포넌트들이 있었다. 소배와 함께 얘기해, 넥스테이트에서 쓰던 디자인 시스템 체계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나아 보였다. 이전 작업 파일들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을 때 메시지가 도착했다.



라선이었다.


[이거 참고하셔서, 디자인 시스템 재구축하는 작업이 가능한지 소배랑 논의해 보고, 바로 알려주세요. 가능하면 바로 회의해서 WBS 재조정하게요.]


첨부파일에는 네이밍 목록과, 컴포넌트 정보값을 정리한 파일이 있었다.


꼼꼼하시네. 반호가 속으로 박수쳤다.



반호는 소배에게 파일을 공유하고, 어떻게 작업할 것이 나을지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소배 역시 넥스테이트 디자인 시스템을 살리는 것에 동의했다. 받은 자료로 무리 없이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반호는 라선에게 가능하다고 답장을 보냈다.


잠시 후 라선이 개발팀과 디자인팀을 소집했다. 소배와 반호가 이번 주 말까지, 필수 컴포넌트 중심으로 디자인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고, 그동안 세안나와 헬렌은 더미 형태로 기능만 작동하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고론과 다른 팀원은 디자인 시스템이 단계적으로 완성되는 대로, 와이어 프레임을 작성하는 것으로 정했다.



소배와 반호가 투입되고 나서, 작업은 가속이 붙었다. 작은 수정 사항이 생겼다가, 해결되었다를 반복했지만, 라선이 최종적으로 조정한 대로. 프로젝트는 WBS의 타임라인에 맞게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한 달 하고, 한 주가 지나서 마침내 최소 기능 제품이 완전한 모습을 갖췄다. 아이콘만 제외하고.



아이콘 후보는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보라색 배경에 집 모양의 메모지가 그려진 형태였고, 두 번째는 푸른색 바탕에 펜 끝을 형상화한 물방울 안에 집을 넣은 모양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감귤색 바탕에 집 모양의 윤곽선 가운데를 45도 각도로 연필이 찌르고 있는 형태였다.


"어느 게 나아보여요?"


고론이 라선에게 물었다.


"저는 두 번째가 세련되어 보여서 좋은 것 같아요. 반호 의견은 어때요?"


"세 번째가 조금 더 직관적이라 좋을 것 같아요. 처음 본 사람들도 이게 어떤 앱인지 알 수 있으니까요."


반호가 소배를 보며 답했다.


"그럼 관전에서는 첫 번째가 가장 직관적이지 않아요?"


"그렇긴 한데 너무 낡은 느낌이에요."


소배가 의견을 냈다.


"세 번째 안에서 배경색을 바꿔 보는 건 어떨까요. 청색에 붉은색을 섞은 그라디에이션으로요"


라선이 제안했다. 청색과 붉은색은 부자고고의 키컬러였다. 하나의 패밀리 앱으로 보이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에서 제안한 색이었다.


"예쁠 것 같아. 그런데 붉은색보다는 밝은 노란색이 어떨까. 이렇게."


고론이 바로 색상을 변경해 보았다. 산뜻하면서 간결했다. 키컬러를 유지하면서, 느낌을 가볍게 띄웠다. 쉽고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메모'의 성격을 나타내기에 적절해 보였다. 소배와 반호도 모두 동의했다. 문득 라선은 집 지붕에 고양이를 올려두고 싶어졌다. 날개를 붙이고 싶어졌다. 하여간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것들이었다. 라선은 탱탱볼 같은 생각을 잡아눌렀다.


시안을 결정하고 나서, 디자인팀이 앱 아이콘을 최종적으로 다듬었다.


마지막 단계로 앱플레이 스토어에 출시 심사를 신청했다. 심사 통과까지 최소 2주는 걸릴 것이다.





MVP가 모습을 갖춰가고 있는 동안 특허 기술 개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헬렌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세안나가 언어 모델과 메타데이터 추출 알고리즘을 설계했다. AI 모델이 어떻게 입력 텍스트를 처리하고, 그 결과를 메타데이터로 변환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흐름을 구축하는 작업이 메인이었다. 헬렌은 이를 기반으로 AI 모델이 통합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와 서버를 설계했다. 코드를 리뷰하면서, 헬렌은 실력 차를 체감했다. 문장 단위로 의미론적 임베딩을 생성하여 문장 간의 유사성을 계산하고,각 문장 요소의 의미적 역할을 파악의 문맥을 형성하는 모델을 개발하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세안나는 자연어 처리를 깊게 파지 않았다고 했지만, 헬렌이 판 깊이보다는 훨씬 더 깊었다. 소배가 MVP 제작에 전면 투입되고 있어, UI와 결합하는 작업은 뒤로 미뤄지고 있었지만, 현재 속도라면, 출시 후 늦어도 2주 안에는 기능을 업데이트할 수 있어 보였다. 이렇게까지 빠르게 구축할 수 있나 의심할 정도로, 세안나의 개발 역량은 특출났다. 같은 시간을 살지만, 같은 속도로 성장하지 않는다. 얼마나 밀도 있게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출력하는 결과값이 다르다. 질투심과 열등감, 부러움과 경외감이 뒤얽힌 묘한 감정이 속에서 약하게 소용돌이쳤다.



"세안나랑 일하면, 항상 지는 기분이에요."


야근을 하던 중, 헬렌이 자백하듯 말했다..


"보통 그렇겠죠. 제가 더 잘하니까."


세안나는 거리낌 없이 말했다. 이젠 익숙했다.


"언제부터 개발 시작한 거예요."


"초등학생 때부터요."


출발선이 달랐구나. 대학교 때 처음으로 개발을 시작한 헬렌은 생각했다.


"빠르게 시작하셨네요."


"아버지가 게임 개발자였어요. '엘리세바' 만드셨죠."


"맥스노리의 '엘리세바'요?"


헬렌은 놀라서 외치듯 물었다.


"아세요?"


"알죠, 이번에 모바일로 다시 나왔잖아요. 제 인생게임이에요. 아직도 태양석으로 카이랄 월드를 모두 밝혔을 때가 기억나네요. 다시 보기 힘든 명작이죠."


"그건 몰랐네요."


세안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감정 없이 말했다.


"저도 사실 게임 개발자가 꿈이었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원래 사람들은 보통 꿈에 맞춰 살지 못하죠. 꿈을 자신에게 맞춰 사는 게, 편리하니까."


"세안나도 후자인가요?"


답이 없었다.


괜한 질문이었나, 후회가 들었을 때, 세안나가 입을 열었다.


"앱이 잘 되면, 전자. 앱이 망하면, 후자."


세안나의 목소리는 시각 검사표를 읽듯이 담백했다.


"그러니까, 집중해요. 일에."


헬렌은 그러겠다고 하고, 작업에 몰두했다. 세안나의 말이 맞았다. 잘 되면 전자이고, 망하면 후자다. 꿈은 성공에 비례한다.





마침내 출시일이 되었고, 앱이 배포되었다.


퀵펜슬에서도, 넥스테이트에서도, 이미 운영되고 있는 앱으로만 일을 해보았다. 라선에게 '임장고고' 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세상에 내보인 첫 번째 앱이었다. 감회가 남달랐다. 누구보다 가장 먼저 다운로드 받아, 패드에 설치해 보았다. 개발 중 테스트했던 대로 잘 작동되었다.


시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라선은 두근거렸다.



출시 후 2주 동안 라선은 매일같이 임장고고의 성적표를 확인했다.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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