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富럽지 않게, 나 富끄럽지 않게 31화

by 설다람



"현재로선 MVP 목표를 두 가지 기능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변경하고, 메모 기반 매물 추천 기능은 개발 리더 판단하에 개발을 진행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해당 기능을 제외하면, 오히려 MVP 출시 일정을 앞 당길 수도 있습니다."


라선이 웨일에게 설명했다.


"라선 말대로 가는 게 차라리 기존 계획안보다 나을 수 있어요. 특허가 있다고 해도, 기술 구현에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이란 게 있으니까."


세안나가 거들었다.


"그럼 두 가지 기능을 담은 MVP는 1개월 내로 시장에 낼 수 있다는 거죠. 라선?"


"네 그렇습니다."


"그럼 추천 기능은 언제 추가될 수 있어요?"


"헬렌이 남는다는 가정하에, 늦어도 3개월은 되어야 추천 기능을 어느 정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세안나가 대답했다.


"헬렌은 제가 설득했어요. 계속 근무할 거예요."


라선이 덧붙였다.


웨일은 괘씸죄로 헬렌을 내보내고 싶었지만, 세안나가 '헬렌이 남는다는 가정'을 기준으로 최종 마감 기한을 설정했다. 부분적인 변동 사항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기에, 참여 인력이 교체되는 건 좋지 않다. 누구든 히스토리를 아는 사람들이 일을 끝까지 맡고 가야 한다. 헬렌이 사직 의사를 낸 이유와 라선의 이야기를 듣고 하루 만에 철회한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 사이에 특허 문제가 끼여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지금 당장 그 부분을 들출 자리는 아니었다. 어쨌든 해결할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 자리였다.


"알겠어요. 그럼 오늘 나눈 내용 라선이 정리해서, 디자인팀이랑 공유하고 다시 일정 설계해 줘요."


"네."


"그리고 세안나는-"


웨일이 세안나를 흘겨보았다.


"당장 WBS에 줄처럼 일정 늘여놓은 거 돌려놔요."


전직 기획 팀장으로서, WBS에 장난친 사람을 혼냈다.



두 사람이 방을 나가고 나서, 허니맨이 찾아왔다.


"아침부터 무슨 일 있어? 다들 부산하네."


"그러게, 넌 무슨 일로 온 거야."


"헬렌."


"알아. 헬렌, 사직 철회한다며."


"어떻게 알았어?"


허니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서 헬렌한테 매물 추천 기능 구현 전까지는 퇴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 좀 받아와 줘. 법적 효력 있는 걸로."


"그런 게 있어?"


"그런 건 인사팀장이 알아봐줘야지. 그게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뭐가 필요한지."


웨일이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탁해."


허니맨이 거수 경례하고, 방을 나갔다.





웨일은 리코와 만나 저녁을 먹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투자자와의 미팅이었다. 따로 약속한 건 아니었지만, 웨일은 격주로 한 번씩 리코와 만났다. 회사 상황을 알려주는 것과 동시에 겸사겸사 경영 자문도 구했다. 오늘 주제는, 리코도 까무러칠 만한 소식일 테다.



"특허 깡통이었어. 자료가 없대."


웨일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알고 있었어."


리코가 민트 피자 한 조각을 들며 말했다.


"뭐?"


웨일이 손에 든 피자 조각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세안나를 설득 해서 넣은 거야. 세안나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술을 구현할 테니까."


"그걸 알면서 왜 퀵펜슬을 인수한 거야? 그걸 알면서 날 사장으로 앉히고!"


웨일이 부글부글 끓으며 소리쳤다.


"기술은 없어도, 특허가 있으면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 실제로 그 기술을 개발했든 하지 않았든, 해당 기술의 결과물을 선점해 두어야 잠시지만, 격차를 벌릴 수 있어. 다음 단계로 가기 전에 먼저 발판 삼을 계단 한 칸이 필요한 것뿐이야. 오히려 특허에서 중요한 부분이 다 가려져, 따라하기도 쉽지 않을 테고."


리코는 예의 매력적인 눈웃음 지었다.


"진짜, 이런 건 미리 공유해 줘도 되잖아, 아니 공유해 줘야지!"


"미리 알려주면 재미없잖아."


"이 사업 망하면, 너 가만 안 둘 거야."


웨일이 주먹을 들었다.


"이 사업 망하면, 나도 손해야."


맞는 말이었다. 리코가 자신의 돈을 건 사업을 망하게 둘 리 없었다. 그래도 대담하게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을 아바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웨일은 확신했다. 지금 넥스노트에 넣은 리코의 투자금은 리코가 가진 재산의 반의 반의 반의 반도 안 될 것이다. 그 정도면 심심풀이로 보드게임을 하는 셈이다. 웨일은 리코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게 더 바짝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민트 피자는 초코가 없어, 깔끔하고 시원했다.


계산은 각자 했다. 두 명이서 나눠 먹으면 합리적인 가격의 메뉴였다. 리코에게 넥스노트가 얼마나 합리적인 가격의 메뉴일지, 웨일은 상상했다. 스타트업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를 넓게 짠다. 100개 중 66개는 망하니까. 넥스노트는 메인일까, 디저트일까, 아니면 아직 메뉴판에 있을까.





신속희는 메신저 창 가운데 뜬 송금 거절 메시지를 보았다.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문자를 남겼지만, 답이 없었다.


늦은 저녁, 소파에 누웠을 때 전화가 울렸다.


그럼 그렇지.


씨익 웃으며 전화기를 들었을 때, 신속희의 얼굴이 굳어졌다.


발신인은 헬렌이 아닌 리코였다.


신속희는 자세를 고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이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신 대표님.


"네, 무슨 일로 이렇게 연락을 주셨는지요."


-확인해 보니, 특허를 거짓으로 내셨더라고요.


신속희는 뜨금 했다. 설마 자수라도 했나?


"아닙니다. 특허는-"


-네. 이제 특허는 저한테 있으니, 특허랑 관련해서는 다른 곳에 입도 벙긋하지 마시라고 전화드렸어요.


밝은 목소리였지만, 확실한 경고였다.


"제가 어딜 가서 말하겠습니까. 염려 마십시오."


신속희는 굽신거렸다.


-정정할게요. 다른 곳이 아니라, 본인한테도 벙긋하지 마세요.


"네, 네 아무렴요."


-그럼 평안한 밤 보내세요.


리코가 전화를 끊었다.


신속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들키는 게 문제였는데, 오히려 본인 쪽에서 입을 다물라고 지시했다. 사기 쳤다는 명목으로 고소당할 일은 없어졌다.


송금을 거절당한 것도 감사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다시 소파에 등을 대고 누웠다. 신속희는 히죽이며, 내일 가족끼리 오붓하게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즐기는 모습을 상상했다.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길 바랐다.





"라선 의기양양하게 돌아와서, 이전 사람들 깔보는 것 같지 않아요. 한비 씨, 아, 아니 고론."


프레시가 속삭였다. 아직 프레시는 바뀐 회사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프레시와 점심을 먹어주는 사람은 고론이 유일했다. 고론이 원해서라기보다는, 프레시가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을 때, 뿌리칠 방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그럴 리가요.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더 여유로워진 것 같은데. 배려심도 깊어지고."


고론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라선으로부터 느껴졌던 위화감이 프레시가 말했던 태도의 문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론은 평소처럼 좋은 말만 했다. 라선의 직위는 달라졌고, 구태여 척을 둘 필요가 없었다.


"헬렌도 라선이랑 친했다는 이유 하나로 거들먹거리고 있고."


프레시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신규 앱 개발하는 건 잘 되어가고 있어요?"


"뭐, 이제 막 스토리보드를 짜고 있어요. 부자고고를 참고하라는데, 앱 성격이 다르다 보니, 어렵네요."


"이것 봐요. 신규 앱이라면서, 자기네들이 만들었던 앱 카피하라는 게 말이 돼요? 완전 범법이잖아요."


"앱 카피는 아니고...요소들만 유사하게 하라는 거라...법적으로는 문제가..없다던데..."


"그건 그 사람들 말이고, 그렇게 작업하다 고론만 감옥 들어가면 억울해서 어떻게 살아요."


프레시는 목에 핏대 세워 말했다.


프레시의 말에 고론은 주뼛주뼛거렸다.


"그러면 억울하겠죠..."


"'그러면 억울하겠죠'라뇨, 조금 더 강하게 의사를 표시해야죠. 라선에게 이건 못하겠다.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


숟가락을 꽉 잡고 삿대질하듯 흔들며 프레시가 말했다.


고론은 수갑을 차고, 감옥으로 끌려가는 자신을 상상했다. 그건 안 돼. 고론은 상상 속에 자신의 손을 잡고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고론은 라선에게 갔다.


"라선 여기 스토리보드 초안인데, 좀 봐줄래?"


"네."


라선은 꼼꼼히 패드를 넘기며 스토리보드를 확인했다.


"전 괜찮은 것 같아요. 개발팀 미팅 때 공유하고 피드백받으면 되겠어요."


"그런데 정말 부자고고랑 똑같이 해도 괜찮을까? 경찰에 잡혀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


"고론이 잡혀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 소송을 당해도, 회사가 당하지 고론이 당하지 않아요. 고론이 말한 대로 떳떳하지 않을 순 있어요. 하지만 저희의 목적이 바로 그거예요. 부자고고와 형제앱처럼 보이는 거."


라선의 의견은 완강했다. 이런 게 프레시가 말한 '사람을 깔보는 태도'인가. 자존심의 코를 검지로 누르는 것 같았다.


"알아요. 디자이너로서 자존심 상하시죠. 저도 이런 요구를 하는 게 죄송스러워요. 그래도 이게 효과적일 것이라, 웨일이 판단했고, 저도 동의하는 바예요."


마음을 읽었는지, 라선이 위로하듯 말했다. 이런 게 프레시가 말한 '사람을 깔보는 태도'인가. 고론은 혼란스러웠다.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자리로 돌아와 고론은 개발팀이 이해하기 쉽게 주석을 달았다. 작업을 하다 어깨가 걸린 고론이 팔을 들고 만세 했다. 누가 내뻗은 손바닥에 과자 한 봉지를 올렸다. 라선이 웃으며 전통생강과자를 주었다.



먹을 걸 주면, 나쁜 사람은 아니다. 회사를 다니면 먹을 게 나온다. 먹을 걸 주면 나쁜 회사는 아니다.


고론은 최면을 걸듯 스스로에게 말하며, 라선에게 엄지를 내밀었다.



그런데 옆자리에 있던 로엔은 왜 아침부터 안 보이지? 연차를 냈으면 봤을 텐데. 혹시 결재를 깜빡했나?





세안나는 NK 부동산과 부자고고를 번갈아 비교하면서, 매물 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끌어오면 좋을지 고민했다. NK 부동산은 실제 거래 매물 정보도 함께 단지와 함께 확인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고, 부자고고는 다방면의 정보를 소화해 가독성을 높여 보여준다는 장점이 있었다. NK 부동산을 이용하는 게, 쉽고 빠를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한 번 해봤으니, 부자고고의 형태로 끌어오는 것도 시도해 볼 만했다. 헬렌이 하고 있는 특허 개발 작업을 간간히 체크하면서 해도, 충분할 것 같다는 게 세안나의 계산이었다. 프런트엔드와 디자인팀의 합의가 빠르게 이루어진다면 못할 것도 없어 보였다.



목을 풀기 위해 화면에서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헬렌이 자리 앉아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기본기는 탄탄한 것 같으니, 어느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겠지.



그런데 그 옆에 있던 프런트엔드는 왜 아침부터 안 보이지? 연차도 안 냈는데? 설마 결재를 깜빡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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