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富럽지 않게, 나 富끄럽지 않게 32화

by 설다람




허니맨은 뒷목을 잡았다.


'런'


면담 때 감이 왔던 두 명이 진짜로 튀었다. 전화를 했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둘 다 받지 않았다.


겨우 한 명을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옆에서 새어 나왔다.


프런트엔드 개발자와 UI 디자이너,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인력'이 하루아침에 모두 사라진 것이다.


허니맨은 웨일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우려했던 대로, 둘이 나갔어."


"채용 공고는 준비됐어?"


웨일이 물었다.


"네가 말한 대로 준비는 했는데, 어떤 사람이 지원하느냐가 문제지."


쏟아지는 문제에 웨일은 과부하가 걸린 듯, 아무 말이 없었다.


"헤드헌팅은 불가하고?"


"지금으로선 어려워. 우리 회사가 매력 있는 회사는 아니잖아."


허니맨의 말에 웨일이 낙심했다.


그때 문을 열고 라선이 들어왔다.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이런 일이 있으면, 저한테도 알려주셨어야죠."


라선이 볼멘소리를 했다.


"저도 기획팀장인데."


허니맨은 그 말에 아차 싶었다. 넥스테이트에서 리코와 웨일이랑만 간부 회의를 했던 것이 익숙해서, 라선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미안해요. 라선 내가 정신이 없었네."


웨일이 허니맨 대신 사과했다.


"지금 어떻게 인력을 채울지 논의하고 있었어요. 채용 공고를 내는 게, 유일할 듯해요."


허니맨이 라선을 보고 말했다.


"채용 공고 잠시 잡아둘 수 있어요?"


라선이 말했다.


"한시가 급한데 잡아두다니..."


무슨 의도로 하는 말인지, 허니맨은 감이 안 잡혔다.


"제가 찾아올게요. 프런트엔드랑 UI 디자이너"





정시야와 서노하, 각각 소배와 반호의 본명이었다. 웨일과 허니맨의 본명을 들었을 때처럼 어색했다. 링크미(Link-Me)에 두 사람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여러 사람들이 나왔고, 그중에 소배와 반호도 있었다. 소배는 넥스테이트를 끝으로 아무런 업데이트가 없었고, 반호는 무소속에 프리랜서로 적혀 있었다. 명함첩에 등록해 두었던 개인 연락처로 먼저 소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배, 예전에 넥스테이트에서 같이 일했던 라선이에요."


-아, 라선 어떻게 연락했어요? 잘 지내요?


"그럭저럭 지내요."


잘 지낸다는 말이 고깝게 들리지 않기 위해, 라선은 마지못해 사는 척했다. 소배의 상황이 더 나쁠 수도 있으니까.


-어떻게 연락 주셨어요?


"지금 넥스테이트에서 나와서, 부동산 임장 노트 앱을 개발하고 있어요. 넥스노트라고. 혹시 같이 일할 수 있을까 싶어 연락했어요."


-넥스노트요? 계열사인가요?


"아뇨, 그렇지만 웨일이랑 허니맨, 세안나가 있긴 해요."


-그 사람들 아직 믿으세요?


소배가 차갑게 말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소배에게 웨일과 허니맨은 제 몫을 챙기고, 먹튀한 사람들이었다.


"사람을 완전히 믿진 않아요. 하지만 실력을 믿고, 아이템을 믿어요. 해볼 만한 비즈니스가 될 거예요."


얼마나 설득력 있는 말일지는 몰랐지만, 라선은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소배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고민하고 있다. 당겨서 굴러오게 해야 한다.


"넥스테이트에서의 급여에서 15%를 인상해 줄게요. 허니맨이랑도 얘기를 끝냈어요."


한 번 더.


"입사 첫 달 월급에, 제 월급 4분의 1을 나눠줄게요."


말하면서 살을 베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러나 넥스노트가 망하면,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잃을 것이다. 떨어지는 칼을 잡을 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월급의 4분의 1은 목숨도 아니었다.



이윽고 통화가 종료되었다. 마지막 추가 조건에 흔들렸다. 지금 구직 중이라면, 제안을 무시하긴 어려울 것이다. 프로젝트를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침몰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세상에 제품을 내야 한다. 그게 가장 중요했다. 라선은 필사적이었다.



다음은 반호였다. 링크미(Link-Me)에 반호가 외주 의뢰를 받는 계정을 올려두었고, 메일을 보내 미팅을 신청했다. 방원동 근처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보자는 답신이 왔다, 소배와의 통화를 끝내고 라선은 코워킹 스페이스로 향했다. 코워킹 스페이스는 관엽식물 화분과 백색 조명으로 단촐하게 꾸며져 있었다. A-1 미팅룸 문을 열자, 반호가 일어나 라선을 반겼다.


"오랜만이에요. 라선. 잘 지냈어요? 주신 자료 봤어요. 신규 앱을 부자고고와 똑같은 컴포넌트로 제작하라는 말씀이죠."


"디자인 시스템 이용하면, 지금 넥스테이트에 있는 분들도 똑같이 할 수 있을 텐데요."


"저흰 넥스노트예요. 넥스테이트와 다른 회사예요."


"정말요? 전 넥스테이트에서 신규 앱을 출시하는 줄 알았어요."


웨일과 라선이 원했던 반응이었다.


"그게 목적이에요. 그래서 반호가 필요하고. 소배도 함께 할 거예요."


라선은 뻔뻔하게 소배가 참여할 거라고 말했다. 이건 뭐 거의 빌 게이츠 사위 만들기였다.


"소배랑 같이 작업한다고요, 그럼 외주로 진행하기보다는 인하우스 디자이너랑 같이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앞으로 통일성을 유지하려면 그러는 게 효율적이고."


"그래서 사실, 반호를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모시고 싶어서 연락했어요."


뜻밖에 제안이라는 듯, 반호가 라선을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 처우는 넥스테이트 때보다 안 좋을 수 있어요. 하지만 곧 나아질 거예요. 부동산 검색 앱의 틈새를 찾았고, 우리가 그 틈을 채워줄 거예요."


라선이 투자 피칭을 하듯 말했다.


"지금 맡은 외주 작업이 있어서, 인하우스로 들어가기는..."


반호가 망설였다.


"인사팀에 말해서 겸업 허락해 드릴게요. 단 본 업무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간절한 눈빛으로 라선이 반호를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답을 드리면 되나요?"


"내일까지요."





반호와의 미팅을 마치고 라선은 사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에 올랐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급한 마음으로 긴장된 채 이리저리 뛰어다닌 탓인 것 같았다. 식은땀을 흘리는 라선을 보고, 앞에 앉아 있던 노인이 라선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젊은 남자가 일어나 라선에게 자리를 주었다. 라선이 옆에 앉자 노인은 손수건을 빌려주었다. 라선은 감사하다고 말하고, 손수건으로 이마와 뺨, 목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소배와 반호가 과연 올까. 라선의 머릿속에는 신규 앱 개발 일정표가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 두 사람이 오면, 넥스테이트에서 구축한 디자인 시스템을 다시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작업 속도는 훨씬 더 빨라질 것이다. 어느 정도 고론이 스토리보드를 짜두었으니, 출발점은 잡혔다.


한 번에 성공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MVP가 중요하다. 헬렌 건으로 한 번 지연되었다. 프런트엔드와 UI 디자이너의 공백을 빨리 메우지 못하면, 타격이 클 것이다. 어쩌면 세안나가 찌익 그었던 것처럼 하염없이 마감기한 늘어질 수 있었다. 그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


땀을 모두 닦고 나서, 손수건을 돌려주려 했을 때, 노인은 먼저 내리고 없었다. 라선은 손수건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사무실이 위치한 현일역에 도착했고, 라선은 지하철에서 내렸다.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나타난 라선을 보고 놀란 고론이 얼음을 비닐에 담아 라선에게 주었다.


"어떻게 라선, 괜찮아?


"네 고마워요."


라선은 얼음주머니를 양손을 받으며 말했다.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달랑거리고 있었다. 일이 흐르지 못하고 걸려 있는 상황이, 라선을 괴롭게 했다. 허니맨이 일찍 집에 가도 좋다고 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회사 안에서 버티고 있는 게 차라리 편했다. 문서 창을 띄우고 라선은 뭐라도 썼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당연히 연락이 바로 올 리 없지만, 라선은 혹시나 메시지가 도착했는데, 보지 못할까 봐, 폰과 메일을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퇴근 시간일 될 때까지 소배와 반호로부터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전화해서 결정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집에 가기 전 라선은 약국에 들렀다.


"타미레올 하나요."


"타미레올 지금 다 나갔는데."


"그럼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다른 제품은 없나요?"


"미안해요. 앞전에 무슨 행사가 있다고, 비상약으로 싹 다 들고 갔네. 이건 성분이 좀 다른 건데, 이거라도 드릴까?"


약사는 녹색 형광색 박스의 약을 내밀었다.


"괜찮아요. 아세트아미노펜 아니면, 잘 안 받더라고요."


"안색 너무 안 좋아 보이네, 이거라도 마시고 가요."


약사는 로열비타를 라선에게 줬다. 약국에서 무상드링크 제공은 불법이었다. 라선은 사양하고, 밖으로 나왔다. 다른 약국을 찾아봤지만, 근처 약국은 모두 문을 닫았다. 반쯤 부은 뇌로 라선은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그때 머리 위에서 손이 내려오더니, 눈앞에 타미레올 한 알을 흔들었다,


"이열. 너무 빡세게 사는 거 아냐."


"치열. 빡세게 안 살면, 살아지지가 않네요."


민하였다. 라선은 약을 받아 입안에 넣고 삼켰다. 약이 목에 걸려 켁켁거렸다.


"물이랑 같이 마셔야지."


부엉이 모양의 컵을 민하가 내밀었다. 라선은 물을 남김없이 마시고, 가슴을 쳤다.


"너 그렇게 하다, 돈도 못 만져보고 죽는다."


"제가 살아봤는데, 안 죽으려면 돈이 필요해요."


공사판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쳐 쓰러졌을 때, 아버지가 가장 걱정했던 건 병원비였다. 라선도 쓰러졌다는 이야기에 가장 먼저 얼마가 나올까를 걱정했다. 다행히 금방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 그리 많이 들지 않았다. 그날 이후 아버지가 없는 임금에도 보험을 들었다.


'늙어 자빠져도 네 짐은 안 될 테니, 걱정 말고 네 삶에만 집중하렴.'


아버지는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그 말을 지켰다.


사망보험금을 허무하게 날려버렸다는 기억이 다시 따끔하게 팔뚝을 꼬집었다. 자책하지 말자.


삶에 집중하자.


"죽어서도 달란트 필요하다면서요, 그럼 살아 있을 때 더 벌어둬야죠."


부엉이 잔을 양손에 쥐고 라선이 말했다.


"이 땅에서 번 돈은 저 세상에 못 들고 와."


"그럼 리셋?"


"응, 리셋."


소름 돋는 사실이었다.


"설마 인생 게임 한 판 더, 같은 개념은 아니죠?"


"네가 나중에 직접 확인해 봐."


민하가 라선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민하의 손을 떼어내려고 한 손을 올렸을 때, 머리가 가벼워졌다. 민하는 사라지고 없었다. 남은 손에는 아직 부엉이 잔이 들려 있었다.


집에 도착한 라선은 도어락을 열고 '1004'를 눌렀다. 이젠 잘 열렸다.


책상 위에 부엉이 잔을 올려두자, 잔이 날개를 펼쳤다가 접었다. 머리가 아파, 헛것이 보이는 듯했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비현실인지 몰랐다. 현실을 도피하고 싶어지면, 잠이 쏟아진다는데, 사실이었다.



다음 날 아침, 한결 개운한 몸으로 일어난 라선은 폰을 보고는 소리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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