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富럽지 않게, 나 富끄럽지 않게 38화

by 설다람




수치가 말이 안 되었다. 지나치게 많았다. 예산이 없었기에, 광고는 없었다. 대부분이 오가닉 트래픽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범인을 찾아낸 건, 반호였다. 최근에 부동산 공부를 시작한 러닝 인플루언서가 인스타그램에 랜덤으로 얻은 검은 개구리를 포스팅했다.


'나만 개구리야?'


해시 #임장고고, #뉴러닝크루멤버 #오늘은삼포에서 #달리기



검은 개구리에 걸려심각하게 억울한 인플루언서 얼굴이 밈이 되었다. 팔로워들은 심리 테스트를 하듯 앱을 설치해 캐릭터를 받았다. 가입자 수가 가파르게 올라갔지만, 거품이었다.


"제대로 떴네."


통계를 보며 세안나가 덤덤하게 말했다.


"곧 꺼질 거예요."


라선은 불안했다.


"무슨 수라도 써서, 안 꺼지게 해야지. 라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간절하게 부여잡아도 모자랄 판에, 회의적인 태도로 손 놓고 볼 뻔했다.


라선은 신규 유입 이후 잔존하는 사용자의 행위를 분석했다. 그들은 캐릭터 생성 후 1주일 이내 임장 기록을 남긴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 특징을 활용하여 라선은 1주일 이내 첫 임장 기록을 남기는 사람에게 장식용 아이템을 주는 혜택을 기획했다. 이탈률이 소폭 감소했다. 다음으로 2주 이어서 기록을 남긴 경우, 캐릭터를 꾸밀 수 있는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 포인트를 두 배로 주었다. GPS를 통해 임장 위치가 기록되기에, 순수한 진짜 기록만 남겨졌다.


검은 개구리를 받은 러닝 인플루언서는 착실하게 부동산 공부를 이어나갔다. 그 덕에 이제 러닝 인플루언서가 아니라, 달리기를 잘하는 부동산 인플루언서가 되어가고 있다는 댓글이 달렸다. 인플루언서를 팔로잉하던 러닝 크루들이 임장 크루가 되어 돌아다녔다. 라선은 임장 크루의 부정적 이미지가 임장고고에 튀지 않도록 올바른 임장법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다 같이 모여서 발 사진 찍는 건, 임장이 아니다. 라는 게 첫 번째 지침이었다 임장 크루는 유행이다. 그러나 임장고고가 유행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실수요자들이 쓸수록 앱의 가치는 증가한다. 필요한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반짝 인기에 취하는 게 아니라, 기초 체력을 다져야 한다. 웨일이 오기 전까지는.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퇴원을 하고 일주일을 더 쉬었다. 비대면 회의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진짜 돌아갈 시간이 왔다.


오랜만에 재킷을 입었다. 사고 이후로 팔꿈치가 욱신거렸다.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후유증이 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사무실에선 라선과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30만 가입자와 함께.


"다들 고생 많았어요."


"몸은 좀 괜찮아요?"


"물론이죠."


웨일은 이전처럼 똑 부러지게 답했다.


"그럼 오랜만에 회의를 해볼까요."



라선이 앞으로 나와 현황을 설명했다.


"유입 유저는 꾸준히 증가하고, 이탈율은 조금씩 줄고 있어요. 이 추세로는 두 달 이내에, 기존 부동산앱 유저가 사용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계산했던 환경수용력(carrying capacity)에 다다를 거예요. 다른 서비스를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죠.


"지난 주 UT 이후에 아이디어 나온 게 있나요?"


웨일이 물었다.


"유저 테스트에서 저희가 주목한 건 실제 매수하는 것과 임장을 다니는 활동 간의 싸이클이었습니다. 구매의사가 있는 사용자들은 임장 전, 후로 자금력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현재 여유 자금과 일으킬 수 있는 대출 규모 등을 하나씩 따져 보는 거죠. 시중 대출은 물론 정책 대출까지 살펴보려면, 어떤 상품이 있는지, 자격 조건에 맞는지, 가장 적합한 것은 무엇인지를 찾느라 일주일은 지나갑니다. 게다가 복비, 법무사 비용, 국민주택채권매입 금액, 취득세와 같은 비용은 완전히 빼놓아, 다시 계산하기도 하죠. 더 놓친 것은 없나 확인하려고 또 블로그와 카페를 뒤지고 다닙니다."


라선은 유리 칠판에 항목을 하나하나 적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라선은 항목 전체를 아우르는 큰 원을 그렸다.


"이제 이 지난한 과정을 임장고고 안에서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마이데이터를 활용해서요."


확신이 느껴졌다. 펜을 단단히 잡은 라선의 손에서.


라선이 제시한 목표는 부자고고가 지향했던 궁극적인 목표와 같았다. '금융 서비스, 정부 행정 서비스를 묶어 개인 자산을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 그러나 넥스테이트가 백방에 인수되고 나서, 부자고고는 그저 하나의 매물 검색 앱에 머물고 있었다. 웨일은 지금이 추월차선으로 들어갈 타이밍이라는 걸 직감했다.


"좋아요. 그럼 기획팀은 마이데이터 사업자 승인에 필요한 서류와 사업계획서 준비해 주세요. 다른 팀이랑 협조해서."


"네!"


라선이 씩씩하게 답했다.


세안나는 건성으로 답했다.


고론은 힘없이 답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갈 때, 라선이 뒤따라왔다.


"웨일, 방 안에서 잠시 얘기해도 될까요?"


심각한 표정으로 라선이 말했다.


"네, 어. 좋아요."


가능은 하지만, 좋지는 않은 기분이었지만, 웨일은 좋다고 말했다. 대표실 방문을 열었고, 소형 탁자에 라선을 앉혔다.


"저기, 웨일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예산 문제인가요?"


"아뇨, 아뇨. 그런 게 아니라..."


"그럼 인력 문제?"


"아니요..."


"그럼 무슨?"


"그게, 웨일이 생각하고,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들 저도 알고 싶어요."


말을 뱉은 라선의 귀가 붉게 달아올랐다.


"지난번 같은 위급 상황에, 웨일을 대신할 한 사람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요."


"아, 엔젤윙즈 투자 건은 신경 쓰지 말아요.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우리의 최선을 보여주지 못한 건, 아쉬워요. 분하고. 억울해요. 그 최선이 뭔지 모르고 있는 저에게 실망했고요. 다는 불가능하겠지만, 가능한 만큼 웨일과 같은 것을 보고 싶어요."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논리적으로 바른 값을 요청했다. 좋은 설득 전략이었다.


"사일로처럼 굴었네요."


웨일은 라선의 말을 듣고 잊고 있던 신뢰의 의미를 깨달았다. 업무는 맡길 수 있지만, 정보는 줄 수 없다. 최악의 상사 시리즈 1편이나 2편쯤에 나올 만한 유형이었다. 자신이 아는 만큼 다른 사람도 알아야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다. 사전에 충분히 투자 내용을 공유했더라면 라선의 말대로 최선은 보여줄 수 있었을 테다. 그랬더라면 '그때 자신이 갔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텐데' 하는 얄궂은 자만심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걸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병원에 있는 동안 내내, 후회를 하루 이틀한 게 아니었다. 내가 갔었어야 했는데.


"NDA 쓰면 공유할게요."


웨일의 말에 라선이 당황했다.


"농담이에요."


웨일로서는 박장대소할 만한 농담이었지만, 라선은 농담인지도 모르는 듯했다.


"NDA 없어도 공유할게요. 대신 민감한 사항들은 절대 유출하면 안 돼요."


"물론이죠!"


라선의 얼굴이 환해졌다. 라선을 돌려보내고, 웨일은 혼자 방에 남아 PC를 켰다. 할 일이 많았다. 나눠들 수 있는 일도 있었고, 그럴 수 없는 일도 있었다. 그럴 수 없는 일 중에 일부를 나눌 수 있는 인원이 생겼다. 사람 보는 리코의 눈을, 허니맨은 낮게 평가했지만, 리코가 뽑은 사람들의 눈은 정직했다. 리코에게 자신도 그런 사람으로 보였을지, 묻고 싶어졌다. 절대 묻을 일은 없을 것이지만.



*NDA(Non-Disclosure Agreement) 비밀유지협약서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늦가을과 초겨울, 숨을 쉴 때 여린 입김이 났다.


가성비 좋다는 4만 원짜리 러닝화는 가벼웠다. 1년 8개월이 지났다. 소득은 거의 두 배가 되었지만 지출은 전과 같았다. 나머지는 모두 저축했다. 미련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자산의 지수적 증가를 일으키는 것은 투자니까. 임금이 늘었다고는 해도, 노동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한 한시적이다. 임금으로 닿을 수 있는 천장의 높이는 돈을 버는 순간부터 정해져 있다. 그러나 증권사 이름만 들어도 전재산을 주식으로 날린 과오가 떠올랐다.



새들섬에서 시작하는 트랙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차림은 고등학교 체육복이었다. 왼쪽 가슴에는 둥근 원 안에 'ㄷㄴ'로 자음이 풀어쓰인 교포가 붙어 있었다. 다난고. 다사다난하다고 놀림받는 학교 이름이었다. 실제 한자는 차가 따뜻하다는 뜻이었다.(茶暖). 귀한 손님에게 차를 따뜻하게 대접한다는 환대의 의미로 지은 것이라고 했다. 창립자가 대단한 차(茶) 애호가라 그렇게 지었다는 이야기는 다난고에 입학하자마자 듣게 되는 카더라였다. 정작 본교 학생들이나, 근처 학교 학생들은 모두 도넛이라 불렀다.


교복은 무상으로 지원 받았지만, 체육복은 따로 사야 했다. 교복을 차라리 돈으로 줬으면 했다. 그랬더라면 이 체육복에 특별한 애착 같은 건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상의 출발선에 선 라선은 속으로 카운트를 셌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셋 둘 하나.


타 타 타


몸이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앞으로 갈수록 해가 떠올랐고, 눈앞에 빛을 받아 붉게 타는 듯한 모습의 송호 대교가 보였다. 전재산을 날리고, 뛰어내렸던 다리였다. 지금 다시 하라면, 다리가 떨려 올라가지도 못할 것이다. 비관이 사람을 구석까지 몰고 가면, 공포에도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이따금 그날의 아찔함으로 땀에 흠뻑 젖은 채 깨곤 한다. 어쩔 수 없다. 일어난 일은 일어났으니, 되돌릴 수 없다. 기억은 흉터처럼 남아서, 죽는 순간까지 괴롭힐 것이다. 그러니 또 한 발, 또 한 발을 내딛고 달려야 한다. 그 기억들을 한참 뒤로 보내기 위해서.


송호 대교에 도착하기 전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어 와담 공원으로 갔다. 말이 공원이었지, 꽤 고도가 있는 언덕이었다. 사람들이 추천하는 코스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라선이 이 코스를 고집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아버지가 지은 아파트를 보기 위해서였다.



언덕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오리엔탈펠리체드래곤힐 단지를 바라보았다.


저 단지 어딘가에, 아버지가 쓰러진 자리가 있을 것이다.



임장고고의 푸시 알람이 떴다.

keyword
이전 07화남富럽지 않게, 나 富끄럽지 않게 3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