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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론이 즉시 119를 불렀고, 10분도 되지 않아 구조대가 도착해 라선을 응급차에 싣고 병원으로 향했다.
회사에서 비상연락처를 따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 어디에 이 상황을 알려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고론이 기억하는 건, 퀵펜슬 시절 라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 라선에 가족 관계에 대해서는 어떤 정보도 없었다. 가장 친해 보였던 초율에게도 전화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회사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할 일을 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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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는 여전히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맥박과 혈압도 정상 범위 내였지만 문제는 발열과 발한이었다. 몸 전체가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전신 CT를 찍어야 한다. 촬영은 빠르게 진행되었고, 30분 뒤에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모니터에 촬영 결과를 띄우고 스크롤을 움직이며 여러 단면을 살펴보았다. 후복막 림프절이 비정상적으로 커져 있었다. 폐문과 종격동 림프절도 비대해 있고. 비대 림프절의 크기를 측정하면서, 위치와 분포를 차트에 기록했다. 간은 경계가 불규칙하고, 군데군데 저음영 병변이 보였다. 림프종이 이미 전신적으로 퍼져 있었다. 폐 주변의 림프절이 커진 건 예상했지만, 폐 자체에 병변은 없었다.. 하지만 골수 침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다른 형태의 림프종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주된 병변의 특성과 크기, 전형적인 장기 침범 양상을 봤을 때 DLDCL(미만성 거대 D세포 림프종)이 가장 유력하다.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하겠지만, 이미 '4기'라는 결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즉각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두 시간 뒤 환자가 깨어났다.
"머리는 좀 괜찮으세요?"
"조금 지끈거리네요."
환자는 피로에 절은 목소리로 말했다.
"의식을 잃으신 동안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전신 CT를 촬영했습니다."
"아, 정말요, 얼마인가요?"
"그건 수납처에서 확인하시면 되겠습니다. 중요한 건, 현재 전신에 림프절에 비정상적으로 커져 있습니다. 림프종이 의심됩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조직 생검과 골수 검사를 진행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게 뭐죠. 꼭 해야 하나요?"
환자는 심각성을 잘 모르는 듯했다.
"림프종은 일종의 혈액암입니다. 지금 CT 결과로 봤을 때는 4기 정도로 보입니다. 서둘러서 림프절을 채취해 확진하고 아형을 파악해야 합니다. 오늘 조직 생검, 골수 검사 모두 들어가셔야 합니다. 림프종은 표준 치료에 대한 반응성이 높아 완치가 가능합니다. 다만 말씀드렸다시피, 치료를 빨리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격적인 종인 경우에는 단기간에 심각한 증상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설명을 들은 환자의 얼굴은 지우개로 지워진 듯했다.
"죽는 건가요?"
"완치가 가능합니다. 보호자 분한테는 연락하셨나요? 혹시 모르니 검사 전 보호자 분한테도 동의서를 받아야 해서요."
"보호자...없습니다."
"전화되시면 바로 알려주세요."
"아니요. 보호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뜻이에요. 부모님도 안 계시고, 친척 분들은 연락처도 모릅니다. 외동이고. 친구도...없어요."
"정말 없어요?"
난감한 목소리로 의사가 말했다.
"현행 의료법 제24의 2 의료행위에 관한 설명에는 '의사는 사람의 생명 또는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 수혈, 전신마취를 하는 경우 환자 또는 환자가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경우 법정 대리인에게 설명하고, 서면 또는 전자문서로 동의를 받도록 한다'라고 되어 있으니, 본인 서명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요."
갑자기 삽입된 듯한 목소리에 의사는 고개를 돌렸다. 큰 키의 여자가 동의서를 환자에게 건네주었다. 새로 온 직원인가.
"그럼 비용이 모두 어느 정도 될지 알 수 없나요?"
환자가 두려운 눈빛으로 물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가요?"
짜증스럽게 의사가 답했다.
"집을 사야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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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생검과 골수 검사는 무탈하게 마쳤다. 온몸이 뻑뻑하고 무거웠다. 빠르면 일주일 뒤에 정확한 진단명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비용은 총 54만 원이 나왔다. 비교할 방법이 없으니, 적정 가격에 받았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나온 라선은 지하철로 향했다. 부재중 전화는 없었다. 메시지는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내일 출근하지 말고 푹 쉬라는 고론의 메시지였고, 다른 하나는 휴대폰 요금 납부 예정 안내 문자였다.
지하철 안에서 림프종에 대해서 찾아봤다. 의사의 말대로 완치가 가능한 병이었다. 비록 4기이지만, 완치된 사례도 몇 보였다. 유명한 래퍼도 림프종에 걸렸다가 완치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심각하지만 밝은 표정으로 투병 얘기를 하는 래퍼가 부러웠다. 완치 시 들어가는 총비용은 얼마인지 계산해야 한다. 다행히 림프종으로 진단되면 산정특례를 받아 치료비의 5%만 내면 됐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살아남은 사례를 보니, 6개월 치료 기간 동안 총 240만 원이 들어갔다고 나와 있었다. 극단적으로 희망적인 시나리오였다.
라선은 극단적으로 희망적인 시나리오만 확인하고, 검색하기를 그만뒀다.
집은 당연하게도 비어 있었다. 냉장고에서 얼려둔 밥을 꺼내고, 양파를 조금 썰어 그릇에 같이 넣은 카레 가루를 뿌려서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카레향이 진하게 났고, 한 수저를 들어 입에 넣었다. 따뜻했다. 그래서 눈이 가려웠다. 한 숟가락을 더 넣었고, 씹었다. 아직 덜 익은 양파가 아삭했다. 흘리려고 한 건 아닌데, 물이 천천히 뺨을 타고 내려오다, 쉴 새 없이 나오기 시작했다. 신음과 밥을 함께 삼켰다. 가혹했다. 겨우 올라왔는데, 사다리를 걷어찼다. 내일 계약금으로 2억 천육백만 원을 보내야 한다. 극단적인 희망적인 시나리오에서는, 현재 자산으로 충분히 집을 매수할 수 있다. 그렇기에 라선은 극단적으로 희망적인 태도로 밥을 먹어야 했다. 회사에도 나가야 하고, 중개사도 만나야 하니까. 아프지 않다가 상처가 난 걸 발견하고 아픔을 느끼기 시작할 때가 있다. 병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통증이 하나로 집약되어 느껴졌다.
아, 진짜
나한테 왜 이래.
숟가락을 잡은 손이 떨렸다. 화가 나 던지고 싶었다. 손이 풀렸다. 쓰러질 것 같았다. 신경이 전깃줄처럼 제멋대로 엉켜 있었다. 누구라도 있었으면 나았을까. 식사를 끝내고, 설거지를 했다. 라선은 생각을 머리 한편으로 구겨 넣고는 침대에 누웠다. 자신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일찍 잠에 들어야 했다. 한 칸이라도 나아가기 위해.
다음날 아침 출근한 라선에게 사람들이 몸은 좀 괜찮냐고 안부를 물었다. 대답은 '아무 문제 없어요!'였다.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리이다. 아무리 회장의 요구에 따라 지정된 대표라고 해도 직무 수행이 불가하다면, 다른 누구로 당장 교체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회사를 위해서도 그게 맞는 거고. 자신을 위해서도 그래야만 했다. 몸은 퇴근 시간까지 잘 버텨 주었다. 업무를 마치고 라선은 오리엔탈펠리체드래곤힐드래곤힐 부동산 사무실로 향했다. 부동산 안에는 매도인과 중개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매도인은 양복 차림의 30대 중반 남자였다. 그쪽도 직장에서 곧바로 부동산 사무실로 온 모양이었다.
"언제 입주 예정이신가요."
원래 계획 대로라면 대출 심사가 끝나는 즉시 바로 잔금을 치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림프종 아형이 밝혀지고 나면 곧바로 항암 치료에 들어간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니, 가능한 가장 늦게 잡는 것이 나을 듯했다. 그 전에 죽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의 판단이었다.
"3개월 뒤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괜찮으실까요?"
"네, 저도 급한 건 아니라 가능합니다. 그럼 중도금은 1개월 뒤에 주시는 것으로 하죠."
중개사는 계약서에 일자를 명시하고, 등기사항과 매매 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설명을 듣고 나서 매도인부터 차례로 도장을 찍었다. 마지막 확인란에 도장을 꾹 눌렀다 뗐다. 이제 계약금을 넣어야 할 순서였다. 전날 기절한 탓에 잊고 있다가, 회사에서 급히 이체 금액을 상향했다.
216,000,000
송금 버튼을 누르기에, 살 떨리는 금액이었다. 이게 맞겠지. 이미 가계약금도 냈다. 림프종은 완치 가능하다. 치료 비용은 산정 특례가 적용된다. 이건 이성적인 선택이다. 겁낼 필요가 없다. 어차피 혼자였고, 한 번은 죽었던 목숨이었다. 나는 살아있고, 잔금도 잘 치르고, 반드시 이 집에 등기를 칠 것이다.
"처음이라 떨리시죠."
바로 계좌이체를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고 중개사가 말했다. 매도인도 지루한 표정으로 라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금액을 확인한 후 버튼을 눌렀다.
"보냈습니다."
곧바로 매도인 폰으로 알림이 왔다.
"네 받았습니다."
계약서를 나눠 가지고 각자 사무실을 떠났다.
온 김에 동을 한 바퀴 돌았다. 다시 봐도 살기 좋은 곳이었다. 산책로를 오가는 입주민들 중 행복한 표정을 짓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라선은 폰 카메라를 켜 자신을 보았다.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았다. 비슷할까. 어릴 적 얼굴은 하나도 없네. 순간 라선은 자신의 얼굴에서 아버지를 발견했다. 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제가 여기 왔어요. 곧 기다리세요. 제가 여기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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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라선은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그 사이에 통증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대기인 수가 10명에서 7명, 7명에서 4명으로 줄었고, 잠시 후 간호사가 이름을 불렀다. 인사를 하며 진료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희끗희끗한 머리의 교수가 차트를 보고 있었다. 인사를 했지만 고개를 돌리진 않았다.
"미만성 거대 D세포 림프종이네요. 암세포가 림프절말고 다른 장기로도 퍼져 있어서, 4기로 진단됩니다. 표준항암치료인 R-CHOP를 진행하도록 하죠. 70%가 이 치료로 완치되니, 지나치게 걱정하지 마세요."
의사는 덤덤하게 말했다.
본격적인 치료에 앞서 심장 초음파와 혈액 검사를 받았고, 항암치료는 이틀 뒤 시작하기로 했다. 약 투여는 입원 없이 외래 진료로만 가능하다. 연차 하나면 된다. 순백의 병원 복도에는 각자의 아픔으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진료실을 향했고, 진료실에서 나왔다. 물리적인 고통은 경제적인 고통과 맞물려 있었고, 이곳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사람 그나마 돈으로 상처를 아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일 테다.
경계선을 걷게 되었다. 언제 한쪽으로 쓰러질지 모르는.
할 수 있다.
지지 말자.
절대,
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