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 모르겠다!

로 살아온 지 30여 년

by 삼십대 제철 일기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모토는 '에라 모르겠다!'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아주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그냥 질렀다. 신중하게 하나하나 따져보는 게 아니라 '그냥 해!' 하고 빽 질러버렸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진로를 선택할 때였다. 지망 학교와 학과를 결정했어야 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2000년대만 해도 학교 안 학생들의 개성을 팍팍 뭉갤 때였다. 그저 시험만으로 모든 선택지가 제공됐고 적당히 성적에 맞춰 학교를 골랐다.


학교는 성적에 맞추면 됐지만 학과는 외면하기 일쑤였다. 명문대학교에 입학할 수만 있다면 그 학교에서 가장 경쟁률이 낮은 학과를 찾아 지원하게 했다. 대학이라는 건 일단 들어가는 게 중요했다. 내가 학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성적이 매우 좋거나, 경제적 여력이 되거나,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교사의 의견일 일치해야만 입학 원서를 쓸 수 있었으니까. 나 역시 고3 때 어느 대학교를 가느냐에 대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성적이 아주 좋지 않았으므로. (또르르..) 고민 끝에 스스로 최종 선택지를 만들었다.


명문대 가장 경쟁률 낮은 학과 vs 내가 원하는 학과가 있는 학교


취업까지 생각하면 전자가 나았다. 하지만 나는 중고등학교를 보내며 다시는 이런 수동적인 공부를 할 자신이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난 결국 도박을 하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학과'에 지원할 때 이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회가 있었는데, 그 대회에서 입상하면 원하는 학과로, 그렇지 않으면 학교 이름을 보고 가기로! 나는 그때부터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공부하는 척하고 몰래 대회를 준비했다.


결과는?! 두구두구두구. 장려상! 우수상이나 대상을 받았더라면 내 진로를 스스로 더 확신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 상은 그야말로 나의 앞날을 장려하는 상이 됐다. 그리고 부모님과 선생님과 상의 끝에 원하는 학과에 진학했다.


그 뒤로도 비슷했다. 대학교 입학 후에는 하고 싶었던 동아리에 불쑥 찾아가 모집 기간도 아닌데 가입하겠다며 선빵(?)을 치기도 하고, 독립 영화를 찍어보고 싶어서 무일푼으로 사람을 모아 영화도 찍어봤다. 작곡이 멋져 보여 작곡 공부를 다니기도 하고, 일본어를 배워볼까 싶어 어린이 학습지인 구몬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막 시작해도 돼?"


거침없는 나의 행보를 보고 지인들은 자주 물었다. 나에 대한 걱정이기도 했다. 사회적으로 크게 영양가 있는 활동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큰 고민 없이 시작한 만큼 고생도 많이 하고 실패가 잦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나의 '에라 모르겠다'도 점점 줄었다. 나는 더 안정적인 삶을 원했고 지금 가진 것도 놓치지 않으려면 애를 써야 하는 어른이 됐다. 조금만 방심해도 나의 자리가 점점 좁아져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더 많이 생각한다고 완성하는 건 아니다. 충분히 준비한다고 변수가 생기지 않는 건 아니고, 신중한 선택이 시도 자체를 내려놓게 할 수도 있다. 일상이 평온하다고 마음까지 파도치지 않는 건 아니고, 불시착하면 안전벨트도 소용없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배우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기로. 비를 맞고 싶으면 우산을 내리고 뛰고 싶으면 구두를 벗기로. 양말에 운동화를 신고도 바다에 첨벙 뛰어들기로.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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