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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미워하는 만큼 내가 미워진다

사회생활, 인간관계, 성공적?

by 삼십대 제철 일기

퇴사를 하고 집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무도 만나지 않으니, 사람에게서 받는 스트레스가 완전히 사라졌다. 저울이라면 영점의 상태.


누구를 미워할 일도, 좋아할 일도 없어졌다. 미워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 애쓰지 않아도, 좋아하는 사람과 더 친밀해지기 위해 버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지금 평온한가?


그렇지 않다. 나는 아직도 불편한 기억들이 시시때때로 떠오른다. 일터에서 나를 함부로 대했던 사람들, 존중받지 못했던 순간들, 일이 아닌 인간관계로 허비한 시간들.


돌이켜보면 사회생활의 팔 할은 인간관계였다. 끝내주게 일을 잘하는 경지에 올랐다면 또 달랐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나의 경우 그러했다. 내가 얼마나 일을 잘 해내느냐보다 어떤 상사와 동료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과가 바뀔 때가 많았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시해도 '늘 하던 대로 하자' 주의의 상사를 만나면 평소 하던 것 이상의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 혼자 독보이기 위해 뒤통수를 치거나, 여러 방법으로 깔아뭉개는 사람도 있다.


정말 알 수 없는 부분에서 기분이 상해 마음을 확 닫아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거북이가 등껍데기 속으로 목을 홱 집어넣듯이, 조개가 있는 힘껏 껍질을 오므리듯이. 쓸데없는 기싸움도 겪는다.


연차가 쌓여도 이런 순간은 늘 힘들었다. 분명 옛날에 비해선 수월해진 부분도 있을 거다. 하지만 여전히 상처받고 속상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언제쯤 단단해질까?' 하고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기도 하고 실망도 했다.


남을 미워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희한하게도 미워하다 보면 관심이 간다. 그 사람의 행동거지를 살피게 되고, 최대한 부딪히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피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를 미워하려면 과한 에너지를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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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정말 미웠던 A가 있었다. 자신의 무능함을 숨기기 위해 벌였던 유치 찬란한 줄타기를 보면서 진이 다 빠졌다. A가 제 몫을 해내지 못하니 그 부담이 다 나에게로 왔는데, 그러면서도 A는 체면치레를 하기 위해 모든 걸 자기 손에 쥐고 싶어 했다.


A가 나이도 많고, 연차도 높았기 때문에 최대한 예의를 차려 성심성의껏 도왔다. 업무적으로 헤매는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왔고, 거슬리는 건 최대한 모르는 척했다. 하지만 A의 욕심은 끝이 없었고, 나도 지쳐갔다. 어느새 나는 A가 너무 미워서 가슴이 답답해질 지경이 됐다.


A를 신경 쓰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썼다. 내 일만 하자. 내 길만 가자.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했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사이에서 완전한 차단은 불가능했다. 나는 A가 너무 미워서 불행해졌다. 온통 A 생각뿐이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나는 남을 미워하면 시름시름 앓는다. 그 사람의 언행에 필요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기분 나쁜 순간들을 계속해서 복기했다. 그다음엔 반드시 나 자신을 미워한다.


난 왜 그 사람과 잘 못 지낼까? 사실 나의 문제가 아닐까? 열심히 커리어를 쌓아야 할 시간에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는 게 너무 한심해!


이런 생각에 빠지기 시작하면서는 A에 대한 미움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 차 버린다. 내가 너무 미성숙하고, 그릇이 작고, 형편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아서 질책하고 또 질책한다. 그러다 보면 나는 나와 멀어지고, 어느새 어둡고 깊은 수렁에 빠져 버린다.


퇴사를 할 때는 여러 상처들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온몸에 상처가 나서 한 발 내딛기만 해도 따갑고 쓰라렸다. 너무 아파서 제자리에 설 수밖에 없을 때, 한 발짝도 움직이기 두려울 때,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 모든 게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상처가 아무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아직 피가 멎지 않았는지, 이제 딱지가 진 건지, 새 살이 돋기 시작한 건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아직 나는 괜찮지 않다는 거였다.


그리고 또 하나 분명한 건,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 절대로. 그 사람이 밉다는 건, 나의 기준이다. '나라면 안 그럴 텐데'라는 마음이 깔려 있는 탓이다. 어차피 나는 남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남도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세상엔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이 있고, 살아온 환경도 가치관도 다르다. 한 사람을 알아가는 건, 또 하나의 세상을 알아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려면 내 품을 더 키우는 게 덜 아프지 않을까. 그래야 남과도, 나 자신과도 화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다짐했다. 나를 유연하게 만들자. 동그라미, 네모, 세모, 별, 마름모 등등 다양한 도형이 나의 세상에 들어올 수 있게끔. 내 세상의 입구를 늘렸다가, 조였다가, 구부렸다가, 펼 줄 알아야 어떤 도형이라도 통과할 수 있을 테니.


고무 인간이 되어보는 거야!

오래 걸릴지라도, 그 과정이 너무 힘들지라도, 마침내 여유롭게 품을 줄 아는 멋진 어른이 되어 보자. 이상 백수의 호기로운 다짐이었습니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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