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저는 좋아함
퇴사 후 나의 상태를 말하자면 '히키코모리', '극 I', '마스크맨'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앞서 발행한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인간관계를 극도로 꺼리고 나를 드러내지 않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퇴사하고 수개월이 흐르고, 고요하고 잔잔한 일상을 보내다 보면 문득 그리워지는 게 있다. 그것이 바로 스몰토크(Small talk)!
스몰토크; 가볍게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 처음 만난 사이거나 깊은 대화로 들어가기 전 분위기를 풀기 위해 사용한다. 가벼운 대화를 통해 친밀감을 높이는 대화 기술이다.
나는 스몰토크가 무조건 필요한 사람이었다. 특히 일터에서는 출근한 직후나 점심시간 등에 동료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걸 좋아했다. 피곤할 때 스트레칭을 하듯 나에겐 스몰토크가 일종의 환기였다.
"오후에 비가 많이 온대요. 우산 챙기셨어요?"
"점심 식사 하셨어요? 못 하셨으면 간식 좀 드세요. 탕비실에 새로 채웠더라고요."
"머리 스타일 바꾸셨네요. 너무 멋져요!"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이야기들이 쌓이고 쌓이면 서로를 조금씩 알게 된다. 물론 아무리 오래 일을 해도 대화의 범위가 스몰토크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이도 있다. 그건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
나는 정말 친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딱 이 정도의 대화를 나누는 게 좋았다. 서로의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되, 함께 일하는 사이로서 관심만 두는 정도. 불편할 일도, 불쾌할 일도 없는 게 스몰토크였다.
전 직장은 개인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캐물었다. 여름휴가 결재를 올리면 행선지, 동행자 등등을 낱낱이 물어봤다. 남편이 어느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까지 꼬치꼬치 물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나 둘 답하다 보니 나중에 발가벗고 있는 것처럼 나의 모든 사생활이 오픈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부서에 'Z 세대'(1997년 이후 출생)가 입사했다. Z 세대는 확실히 달랐다. 사는 곳도, 가족의 직업이나 직장도, 휴가 행선지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대충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니 캐묻던 사람도 포기하며 말했다.
"그래. 요즘은 이런 거 물어보면 안 되지."
상사들은 요즘 사람에게 실수를 하면 '구닥다리'가 될까 봐, 요즘 사람에게만 조심을 했다. 그리고 그 외 사람에게는 습관처럼 또 사생활을 캐물었다. 그들은 그걸 '관심'과 '애정'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그런 불균형이 지속되자 웃기는 상황이 벌어졌다. Z 세대 직원도 Z 세대를 뺀 다른 직원들에겐 스스럼없이 사생활을 물었다. 자신의 사생활은 절대로 사수하면서, 남의 사생활은 잘도 물었다.
전 직장에서 직속 상사 A는 직원들의 사생활을 굉장히 캐묻는 스타일이었다. 카카오톡 프로필사진까지도 빠짐없이 들여다보고, 휴가로 해외여행을 가면 실시간으로 사진을 보내달라고도 했다.
물론 본인의 사생활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공개했다. 주말에 뭘 했는지, 어디로 이사 갈 건지 등을 끊임없이 이야기했고 업무 채팅방에 가족사진도 종종 올렸다. 나는 그때마다 이게 회사인지, 동아리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퇴사할 때도 A뿐만 아니라 모든 상사들이 나의 개인사를 파고들었다. 퇴사하고 뭘 할 건지,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지, 돈은 얼마나 모아두었는지, 어디에 살 건지 등등. 이런 건 롱토크(Long talk)라고 해야 하나? 딥토크(Deep talk)라고 해야 하나?
지금도 궁금하다. 왜 그렇게까지 동료의 사생활이 궁금할까? 물론 업무 하는 사이에 갑작스러운 공백이나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면 안 되니까 적당히 서로 알고 있는 건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여름휴가로 해외여행을 떠났는데 사고 등으로 복귀를 못 할 수도 있고, 자녀 계획이 있어서 육아 휴직에 들어갈 수도 있으니. 병환이 있는 가족이 있다면 알고 있다가 배려해 줄 수도 있는 거다.
근데 딱 그 정도. 일터에서 개인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캐묻는 건 업무 효율을 높이는 것과 아주 상관이 없다. 동료와 너무 친할 필요도 없고, 너무 깊게 알 필요도 없다. 친밀하게 굴고 싶으면 친구를 만나야지!
그래서 나는 스몰 토크가 좋다. 서로에게 따뜻하게 안부를 묻고, 호감을 기반으로 한 관심을 보이는 정도의 가벼운 대화. 나의 사생활보다는 구내식당 메뉴를 공유하고, 퇴근길 쏟아지는 비를 걱정하고, 바뀐 헤어스타일을 칭찬하는 대화가 더 산뜻하고 부담이 없지 않나.
지금처럼 홀로 내 안의 저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시기라고 할지라도, 스몰토크는 환영이다. 어디 사세요? 몇 살이에요? 무슨 일 하세요?로 시작하는 스몰토크보다는
무슨 운동 좋아하세요?
동네에 새로 생긴 돈가스집 가보셨어요? 맛있대요!
오후부터 쌀쌀해진대요.
이렇게 시작한다면,
무한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