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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Oct 23. 2024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어엄청난 인내를 요한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어미 삶이 그렇다.

초원 사이사이로 난 샛길을

차로 지나가다 보면

숲 속 생명들과 마주칠 때가 있다.


어떤 날은

노루가 샛길을 가로질러

내차 앞을 지나 뛰어가거나,


단비가 쏜살같이

샛길을 가로질러 가거나,


 고양이가 어두운 밤 샛길에 서서

 눈에 레이저 광선을 내뿜고

나를 바라보거나,


주인 없는 떠돌이 개가

등짝에 딱 달라붙은 굶은 배를 이끌고

어슬렁거리거나,


거대한 까마귀가

샛길 주변 나무에 앉아

나를 경계하며 울부짖거나,


새끼꿩들이 어미 뒤를 따라

산책 나온 모습을 지켜보기도 한다.


꿩가족 산책은 보통 이렇다.

풀숲에서 놀다가

풀숲 옆 시멘트 길로 어미가 나오면

새끼들은 어미 뒤를 따라 쫑쫑쫑 거리며

부지런하게 따라 걷는다.


 타이밍에 내 차가 나타나면

깜짝 놀라 당황한 어미는

풀숲으로 먼저 쏙 들어가서 숨는데

그럴 땐 영리한 새끼들도 후다다닥

어미 뒤를 따른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는 속도를 늦춘 차 안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다가

혼자 슬그머니 미소 지으며 생각한다.


엇. 놀랬구나. 미안해.


어제   근처 초원 샛길로 들어섰는데

산책 나온 꿩 가족들이

 차소리를 듣질 못했는지

겁없이 차 앞을 무리 지어 앞장서서 걸었.


나는 최대한 천천히 꿩가족을 따라갔는데

선두에서 여유를 부리며 걷던 어미는

뒤늦게 내 차를 발견했다.

깜짝 놀라 자리에서 한번 툭. 튀어 오르더니

샛길 시멘트를 달려 풀숲으로 기어들어갔다.


어미 꿩이 달려가 숨는 모습을 보자.


어미 주둥이와 목은

숨을 곳 풀숲 덤불 목표지점을 향해

화살표 가리키듯이 쭉 뻗었고

두 날개는 몸통에 바싹 붙인 채

꽁지는 뒤로 길게 빼내고

짧은 두 다리는 아주 빠르게 다다다닥했다.


어미가 어찌나 다급히 달려갔는지

어미가 도망가는 모양은 

땅 위를 달려가는 통통한 화살같았다.


주둥이 머리부터 꽁지까지

큰 유선형 화살표 모양이라

어미  다리를 손에 잡고 화살 던지듯

주둥이 방향으로 피융 날려

과녁을 맞힌다 해도

과녁에 딱! 꽂힐법한 모양새였다.


닭도 그렇고

오리도 그러더니만,

꿩들도 다급히 도망갈 때 보니 별반 다르지 않았다.


머리와 몸통을  더 낮추고

주둥이는 앞으로 쭈욱  더 빼고

꽁지털은 뒤로 쭈욱 빼서

과녁을 겨누는 화살표처럼

몸 전체 각도는 수평이 되었고

그렇게 화살이 공기를 가르며 날듯이 달려갔다.


화살처럼 어미 행동이 워낙 재빨라서

어미가 풀숲으로 숨었는지도 모르고

눈치 없는 새끼들은

쫑쫑쫑 앞을 보며 계속 직진했고

이제는 지들끼리 신이 나서 달리기 경주했다.


나는 멈춘 차안에서

새끼달리기를 구경하며 킥킥거리다가

어미 꿩과 같은 어미로서 생각했다.

혼자 숨은 어미는 애가 타겠구만!


어미 꿩이 손이라도 있다면

녀석들 뒷덜미를 홱 홱 낚아채고

얼른 숨어! 하겠지만

불행하게도 어미에게는 

새끼 뒷덜미를 잡을 손이 없다.


손은 없지만 현명한 어미는

아주 시끄럽고 요란스럽게

푸다다닥  푸다다닥 날갯짓으로 

새끼들 주의를 끌었고

새끼들은 그제야 눈치를 채고

풀숲으로 후딱후딱 기어들어갔다. 


하나. 둘. 셋. 넷.

! 쏙! 쏙! 쏙!


이럴 때는 꼭 딴짓하다가

어미와 반대방향으로 뛰는 녀석들이 있다.

위험을 알리는 어미 신호로

다른 새끼들이 풀숲으로 신속하게 몸을 숨길 때,

어미 말, 럽게 안 듣는 새끼 한 놈쯤

이 꿩 가족에게도 있는 것이다.


그 녀석은 혼자 신나서

어미 반대편 쪽으로 뚱땅 뚱땅 달려갔다.

아이고. 저 놈은 반대방향으로 뛰네.

! 그쪽 아니야.

 엄마는 저 쪽에 있다고!


혼자 남은 새끼 주의를 끌기 위해

속이 타는 어미는 풀덤불속에서

시 한번

거친 날갯짓을 했다.

푸다다다다닥! 푸다다다닥!

(아가. 이리 와! 이리 오라고! 이쪽이야!)


새끼가 어미 행동을 이해 못 하고

여전히 혼자 달리기를 하고 있으니

다시 나가서 저 놈을 잡아올 수도 없고!

급기야  어미는

사람 어미들이 화날 때 그러하듯이,

최대한 화를 참는 발성으로

주둥이와 목젖에 힘을 준 채 화를 누르며

ㅡ사람 어미라면 어금니와 목젖에 힘을 꽉 준채ㅡ

낮고 굵게 꾸웎 꾸웍 소리를 질렀다.


꾸웤! 워억! 꾸웎!!!!

(..!!!

이리오라고오!!!!!!!

하아. 저 놈 시끼.말 안 듣는 거 좀 봐.)


어미의 발광은 효과가 있어서

다행히 새끼가 뒤늦게

가족모두 없어진 걸 깨달았는지

어미가 있는 풀숲으로 후다닥 달려들어갔다.


어미와 새끼들이 다시 모인 풀덤불속에선

말 안 듣고 속 썩이는 새끼를 혼내는

어미 잔소리가 아주 요란했다.


꾸웎! 꾸억!

푸다다다다닥.

꾸웎! 웤!!!!!!

푸다다다다닥! 푸다다다다다!


(엄마가 사람이랑 차는 위험하다 했나 안 했냐.

엄마가 오라면 얼른 올 것이지

혼자 딴짓을 해? 어?

또 할래 안 할래. 할래 안 할래?)


덤불속 요란한 소리에

새끼들을 혼내는 어미를 상상하니 웃음이 났다.

나는 다시 천천히 차를 출발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어어엄처엉난 인내를 요하는 거다.


사람이고 동물이고

어미들 삶이 다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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