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우리가 키우던
시베리안 허스키 '심바'는
삼 개월을 갓 넘긴 철딱서니 없는 강아지였다.
애기 강아지라고는 하나
덩치로치자면
다 큰 진돗개정도 덩치였고
철딱서니 없는 것은 물론이요,
그 맘 때 강아지들이 그러하듯이
호기심도 활동량도 왕성하기 그지없었다.
동네 산책을 나갈 때면
우리보다 몇 미터 앞장서서
논두렁을 달리다가
때로는 물 가둔 논 속으로 들어가
개구리를 잡는답시고
모내기 막 마친 논바닥을
이리저리 뒤집어 놓기 일쑤였다.
그때 우리는 마당에
오리 4마리와 닭 3마리를 풀어서 키웠는데
이놈의 심바가
닭과 오리 꽁지를 쫓아다니며
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놈들을 사냥을 하겠노라
닭과 오리들을 몰아댔다.
닭들과 오리들은 낼수있는 온갖 비명을 다 지르며 철딱서니를 피해 마당 이리로 저리로 우르르 몰려다녔다.
그러면 나는 신고 있던 슬리퍼 한 짝을 벗어 들고
너 이느므시끼! 하면서
심바 콧등아리를 한대 쥐어박았는데
철딱서니는 깨갱 비명을 지르고
저만치 떨어져서
내 눈치를 살살 살폈다.
우리가 외출할 때는
대문 옆 귀퉁이에 조그만 울타리를 만들어서
오리와 닭들을 그 철딱서니로부터
보호해야 했다.
울타리로 피신한 싱싱한 사냥감들이
몸을 벌벌 떨면서 공포에 휩싸일 때,
오직 본능에 충실한 심바는
우리가 없을 때만을 기다리면서
호시탐탐 사냥감들을 노려봤다.
우리가 저녁 무렵
영화 한 편을 보러 시내로 나갔을 때,
철딱서니는 때는 이때다 하면서
마당 귀퉁이 울타리 속으로 기어들어가
무방비상태 사냥감들을 습격했다.
철딱서니는 오리 한 마리를 냅다 물어서
오리의 몸통과 대가리를 잘근잘근 씹어서 분리를 시켰다.
엄마야. 나 오리 잡았다! 하듯이
오리 대가리는 가족들 보란 듯이 현관 입구에
몸통은 마당 한 중앙에
떡하니 전시를 해두었다.
드디어 오리를 사냥해 낸 자신이 자랑스러운 듯,
입을 양 옆으로 크게 헤에 벌리고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어대며
두 눈을 보석처럼 빤짝이면서
자기를 칭찬해 달라며 우리를 바라봤다.
처참한 오리모습에
당연히 우리는 경악했고
심지어는 공포스럽기까지 하여
역시나 나는
신고 있던 슬리퍼를 당장 벗어
너 이느므시끼!
너 이느므시끼!
누가 오리 잡으라고 했어! 어?
누가 오리 잡으라했냐고오!
하면서 철딱서니 주둥이를
손으로 웅켜쥐고 콧등을 줘 박았다.
철딱서니는 본인의
이 영광스러운 사냥의 결과가
왜 이토록 비참하게 끝을 맺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신나서 헤에 벌어졌던 입은 냉큼 다물고
양쪽 귀를 아래로 내려뜨린 채 풀어 죽어
곁눈질로 한 번씩 내 눈치를 살피면서
가랑이 사이로 꼬리를 감추고는
헛간 속으로 슬금슬금 피신을 했다.
공포스러운 습격을 당한
나머지 오리들과 닭들은
뒤늦게까지도 놀란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
골골골골 곽곽거리면서
마당 귀퉁이에 지들끼리 모여서
무른 똥을 지리며 벌벌벌 떨었다.
아버지와 전화 통화 중에 아무 생각 없이
이 이야기를 들려드렸더니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아기 키우는 집에서 그렇게 험한 개를 키우다니!
니네 제정신이냐.
당장 다른 사람에게 갖다 줘라!
그 개를 다른 사람 안 갖다 주면
부모 자식 간의 연을 끊어버릴 테니 그리 알아라!
아버지는 심바가 저지른 짓을 무척 불안해하셨다.
아들 귀한 집안 삼대독자인 둘째가
돌도 되기 전이었고
허구헌날 마당 잔디밭을 안방삼아 기어다녔으니
아버지가 어린 둘째 걱정 때문에 그러신 게 이해가 됐다.
그러시면서 덧붙이시기를,
충청도에서 목장을 크게 하는
아버지 지인이 있는데
그 양반이 예전에 시베리안 허스키를 키웠단다.
그놈이 목장에서 멀쩡하게 놀던 송아지를
목덜미를 물어 사냥해서는 마당까지 끌고 와서
나 송아지 사냥했소! 하면서
자랑스럽게 주인을 쳐다보았다 했다.
송아지도 잡는 개가 그 개다!
아버지는 이야기 끝에 그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첫째는 처음으로 키우던 강아지 철딱서니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그러나
아버지 말씀대로
철딱서니로 인해 부모 자식 간의 연을 끊는 불상사는 없어야 했으므로
우리는 첫째 눈치를 살피면서
철딱서니 심바를 우리보다 더 사랑해 주고
잘 키워줄 주인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철딱서니는 시베리안 허스키 순종이었고
모양새도 이쁜 것이
녀석을 키우고 싶어 하는 이가 여럿 있었다.
철딱서니가 살 환경이
친환경적이고 자유로워야 했으므로
(이미 그렇게 살고 있었기에)
우리는 필히 넓은 마당이 있고
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이를 찾았고
다행스럽게도
저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연락이 된 사람이
찾아오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우리 첫째였는데
그때 다행히 녀석은 할아버지 댁에 가 있을 때여서
우리는 그때 눈물을 머금고
철딱서니 심바를 새 주인에게 넘겨주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첫째는
심바~심바~하면서
약 네 시간을 울어댔다.
어쩔 수 없이 심바를 보내는 우리 역시
마음이 무척 우울했다.
새 주인이 봉고차를 끌고 와
우리 집 대문 앞에 서서
가자. 심바! 하니
철딱서니는 새 주인이 될 아저씨를 보면서
꼬리를 살레살레 흔들더니
새 주인 봉고차에 냉큼 올라탔다.
그렇게 철딱서니는 뒤도 안 돌아보고 부웅 떠났다.
심바를 데리고 간 새 주인은 얼마 후
철딱서니가 지내는 사진을 보내왔다.
우리랑 살 때처럼
논두렁 밭두렁 사이를 휘집으면서 달리고
넓은 잔디 마당에서 뒹굴거리며 잘 지내고 있었다.
그 집 마당엔
철딱서니에게는 아쉽게도
철딱서니가 사냥할 오리나 닭들은 보이지 않았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