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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Oct 25. 2024

운수 나쁜 풍뎅이와 운수 대통한 거미.

생과 사의 갈래길을 지켜본다.

물 부엌 귀퉁이에

며칠 전부터

조그마한 거미줄을 치고서

먹이를 기다리던 산왕 거미는

오늘밤

성대한 만찬을 즐기게 생겼다.


왜앵  푸르르

어디선가 날아든 풍뎅이 한 마리는

정말이지

운수 나쁘게도

며칠간 쫄쫄 배를 곪던

산왕 거미줄에 걸려버렸다.


머리를 밑으로 하고서

대롱대롱 거꾸로 매달린 저 풍뎅이는

산왕 거미가 재빠르게

풍뎅이 몸뚱이 삼분의 이를

거미줄로 뱅글뱅글 감싸는 동안에도,

그나마 아직은 자유로운

앞다리 두 개로 허공을 저으며

살기 위해 죽을 둥 살 둥 몸부림쳤다.


드디어

거대한 먹이를 잡은

운수대통한 저 산왕거미는

이제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풍뎅이가 지치기만을

침착하게 기다린다.


풍뎅이가 딱하니 거미줄에 걸렸을 때

둘째가 앗! 풍뎅이가 거미줄에 걸렸어!

구해줄까? 하는 것을

아니야. 그냥 둬.

풍뎅이가 불쌍해도 어쩔 수 없어!

거미도 먹어야 살지! 했더니만

이융. 하고 고개를 잔뜩 젖혀

운수 나쁜 풍뎅이와

운수 대통한 거미를

한참 올려다보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살고자 하는 풍뎅이 몸부림은 

계속되고 있으나

이미 승부는 기운 것 같다.


서서히 풍뎅이 움직임은 줄어들 테고

거미는 여유롭고 흐뭇하게

풍뎅이 몸의 진액을 빨아먹을 터다.


이제 죽을 둥 살 둥 버둥거리던

풍뎅이 앞다리는

거미가 그마저 거미줄로 돌돌 감아버려서

꼼짝없이 접힌채 미라처럼 굳어버렸다.


풍뎅이 움직임이 완전히 멈춘 후에야

거미는 활발하게 몸을 움직여

풍뎅이에게 다가간다.


거미는 무시무시한 턱을

가위처럼 오무락 오무락거리면서

궁뎅이를 위로 치켜든 채

이제 죽음을 맞이한 풍뎅이 꽁무니에

턱을 야무치게 꽂고는

진액을 빨아먹는다.


풍뎅이가 끝까지 살고자 하던 버둥거림

소용없는 몸부림이었다.

이렇게 나는

생명들 생과 사갈래길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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