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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Nov 29. 2024

노루씨. 눈치껏 쫌 살자.

흔한 시골 동네 개처럼

흔한 노루들

요즘 낮이건 밤이건

길을 가다보면

동네 개 만나듯 잘도 맞닥드린다.

그럴땐 심드렁하게 말한다.


음.노루군!


지난 봄에는

새끼들 데리고 초원을 달리던 어미노루를 보았다.

지난 여름엔

그 무리인듯 보이는 노루새끼들이 제법 커서

어미옆에 옹기종기 앉아 쉬는 모습이 보이더니

가을에 접어들어

새끼들이 독립했는지 거의 성장한

새끼 두어마리만

초원에서 어슬렁거린다.


이 노루 두마리는

집 앞 산책로 길에서

한밤 중 이틀에 한번 꼴로 마주치는데

얘네는 사이좋게 늘 붙어다닌다.

아마도 형제인가보다.



뒷뜰과 낮은 동산 사이에는

10만평 초원 평야와 연결되는 길목,

30미터폭 초원이 있다.


몇년전 그날도 마당에서 잡초랑 싸우면서

호미질을 하고 있는데

집뒤 동산 풀숲이 부시럭 부시럭 부산스러웠다.


읭? 무슨 소리지?

나는 오른손에는 호미를 들고

왼손에는 뽑은 잡초를 움켜쥔채

끙차.아이고 허리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를 숙여 몸을 28도 각도로 사선으로 기울이고

집뒤 동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고개를 쭈욱 뻗어서 소리나는 곳을 바라봤다.



동산 밑자락 풀숲에서 아래 초원쪽으로

부시럭 부시럭 푸울쩍.

노루 한마리가 1미터 높이를 슈우웅 뛰어내렸다.

아.노루구나.하던 찰라

한마리.또 한마리.  마지막 또 한마리가

정말 우아아한 자세로 연달아 슈우웅

연한 풀들이 초록초록 자란 초원으로

차례대로 뛰어 내렸다.


어디보자아.

한놈.두지기.석삼.너구리.

오엥? 오늘은 네마리나 네.

노루씨들.안녀어어엉.

노루씨들을 볼때마다 늘상 내가 인사하는 방식으로

노루씨들을 향해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초원으로 뛰어내린 노루들이

이제 막 풀을 먹어보까.하면서

고개를 숙였다가

내 소리에 깜짝 놀라서

네 놈이 동시에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내 목소리 큰 인사

입맛이 떨어져버렸는지

10만평쪽 넓은 초원방향으로

역시나 우아아한 점프를 하면서 도망갔다.


그 모습은 마치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에서 흔히 볼수 있는

아프리카에 사는 가젤 무리가

피융 피융 일제히 점프하며

달려가는 모습과 흡사했다.


한놈이 포물선을 그리며 뛰어올랐다가 착지하면

두지기와 석삼이가 동시에

다시 쌍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뛰었다가 내려왔다.

그러다가

한놈.두지기.석삼.너구리가

동시에 달리고 점프를 했다.

다다다 쓔우웅 다다 슈우웅 다다다 슈우웅

이런 방식으로 말이다.


동산 끄트머리 풀숲에서

연한 풀들이 자라난 초원위로

한 놈씩 뛰어내릴 때도 멋졌지만

석들이 한꺼번에

초원위를 멋지게 점프하며 달려가는 모습은

정말 그림같았다.


안개가 아주 짙게 내려 앉았던 날,

큰사슴오름 밑을 혼자 걷다가 만났던

수십마리 노루떼 모습도 잊을수 없다.


큰사슴오름에서 아래 넓은 초원 방향으로

수십마리의 노루떼가 달려 내려와

내 앞을 우르르르르 지나가더니

슈웅 슈웅 점프를 하며 달려갔다.


나는 그날

자연속에서 자유롭게 사는

노루무리들 모습에 어찌나 감동했던지

농담이 아니라

눈물이 찔끔 나려고 다.


내가 동네 친구에게 신이나서 이러한 얘길하며

야.그날 노루 진짜 아름답드라.

걔네 점프할때 말이야.

이이이야.진짜 멋지더라.

그렇게 노루 본 자랑을 했더니

내 친구가 냉큼 그랬다.


멋져어어어? 멋진거 아하네.

노루가 맨날 밭으로 내려와서

가 농사진 것들다아 파묵어부난(파먹어서),

내가 노루 말만들어도 아주 골머리가 아픈거

알아지크냐?(알겠어?)


어?  @.,@ )

아아....농사아아. (ㅡ ,.ㅡ)a

그르치! 농사.

그러어!

농사는 지어야지! 그럼.그럼.

노루가 농사피해주믄 안되지.

에이.

천하의 나쁜 당근 도둑놈. 노루들아.


슬렁 슬렁 돌아다니는 시골 동네 개만큼

시골 동네에 흔한 노루는

농사 짓는 내 친구에게는

농작물 도둑놈

농작물 망치는 네발달린 깍두기들인 것이다.



인간관계 잘 맺을줄 아는 사람은

노루가 내눈에 아무리 아름답게 보였다해

친구가 이렇게 노루를 욕하면

얼른 눈치를 채고서

바로 태세전환할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눈치껏 분위기를 파악해서

자기 생각따윈 얼른 내팽개치고

원만한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야,

친구말에 즉각적으로 맞장구쳐주는 짓도

잘해야 사는 법이다.


노루가 이 동네에서

천수만수누리면서 풀 좀 뜯고 살려면

남의 농사 파헤치지않고

나처럼 분위기 파악하고 눈치껏 사는 법을

꼭 쫌 배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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