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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Nov 28. 2024

거기.돼지 트럭 양반.아 쫌 갑씨다!

연민은 가슴으로 느끼지 입으로 느끼지는 않는다.

아침에 약속이 있어서 읍내로 내려가는데

구불구불 내려오는 국도 2차선위에서

튼실한 분홍색 돼지 세마리를 싣고서

여유자적 가는 트럭을 뒤따라 가게 되었다.


약속 시간이 임박하여 그렇지 않아도

1분,1분. 마음은 조급한데

돼지를 실은 트럭운전사는

돼지의 안전이 걱정이 되어서인지

느리게 느리게 처어어어어언처언히 가는 거다.


앞서가는 돼지트럭이 급하면 먼저 가라고

잠시 옆으로 비켜주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돼지트럭 운전사는 도무지 비켜줄 생각이 없었다.

구불거리는 국도 2차선이다보니 추월해나가기도

아주 난감한 도로였다.

결국

트럭뒤 꽁무니만 보면서 혼자 궁시렁거리며

따라 갔다.


해도 해도 너무 느리게 가는 트럭을 보며

마음을 릴뤠에엑쓰 시키느라

침만 꼴딱꼴딱 삼켰다.


나는 발끈하여

차 왼쪽 창문을 내리고 비스듬히 고개를 내민채

왼 팔을 창문 밖으로 꺼내

왼손 집게 손가락을 펴서 돼지트럭을 향해 꽂으며


어이! 거기!

돼지 트럭 양반!

거어어 속도가 너무 느린거 아니요오!

아무리 돼지 안전이 걱정이 되더라도

바쁜 아침인데 거어 쫌 갑씨다!

라고,

마악 소리지르는 걸 상상했다.


화도 나고 마음은 다급했지만

소리지르는  걸 상상만 했지

진짜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한 

앞 유리창에 꽉찬 돼지 궁뎅이 3세트를 보며

운전석에 앉은 내 궁뎅이만 조급하게 들썩였다.


화가 막 가슴을 뚫고 치밀어 오르는 순간.

트럭에 실린 분홍 돼지 옆구리를 보게 되었다.

무심코 본 살찐 분홍 돼지 옆구리에는

이제 막 생긴 상처인듯

긁히고 굵게 패인 붉은 상처들이

돼지 옆구리에 원래 있던 줄무늬들처럼 촘촘했다.


트럭에 타고 있던 분홍돼지는

피부에 털이 없어 보였다.

면도기로 털을 홀딱 밀어낸 민둥 돼지마냥

속살이 뽀얗게 드러난 분홍색이었다.


그 돼지 옆구리에 굵고 진한 빨간 선들은

이제 막 모진 일을 당한듯 핏물이 배여 있었고

밝은 핑크색 돼지 통통한 옆구리에서

더욱 도드라졌다.


짐작컨데,

트럭에 타지 않으려고 버티는 돼지를

트럭에 싣기위해 사람들이 온 힘을 써서

있는 힘껏 끌고. 땡기고 .밀치고. 때리고.하면서

어찌 어찌 어거지로 태운 모양이었다.

분홍돼지는 꽤애액 꽤액 비명을 질러댔을꺼고.

분명했다.

예전에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분명 그랬을것이다.


느리게 가던 트럭뒤를 쫒으며 부글거리며 치밀던 화가 돼지 옆구리 상처들을 보는 순간

언제 화가났었냐는듯 슥 가라앉았다.

내가 약속 시간에 늦게 된것은 뻔한 일이라

이미 마음은 비웠다.


이제는 약속에 늦은게 문제가 아니라

분홍 돼지 옆구리 상처를 보니

돼지가 딱하다는 생각을 했다.


돼지 트럭양반에게 거어 쫌 빨리 갑씨다.라고

소리지르고 싶었던 입으로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려

크게 탄식하며 혼잣말을 했다.


아이고. 저런!

돼지야.

넌 또 옆구리가 왜 그 모냥이냐.그래.


모든 생명은 다 아름답다.라고 했는데

저 분홍 돼지는 무슨 잘못이 있어서

저렇게 맞고 긁히고 채찍질을 당해

저 많은 상처를 입었을까.

딱하기도 하지.


분홍 돼지들아.

그렇게 끌리고 땡겨지고 맞아가면서

욕을 얻어먹으며 트럭을 타고

지금 어디로 가는거냐.


너네 설마.

어쩌고 저쩌고를 당하러 가는건 아니겠지?

진심으로 아니길 바란다만,

네 몸에 난 상처들 때문에

못 볼것을 본 것처럼  마음이 참 안좋다.

나는 트럭을 뒤 따르며 줄곧 그 생각을 했다.


로타리 갈림길에 들어서서야

분홍 돼지들이 가는 곳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돼지들은 돼지들이 가야 할 길로 가고

나는 내가 가야할 길로 가며

돼지트럭양반이랑 길에서 갈라섰다.


가수 김창완 아저씨가 언젠가 말했다.

아주 무더운 여름 굉장히 좁은 울타리속

돼지 두마리가 갇혀 있는걸 봤는데

날이 너무 더우니 돼지들은 그 와중에도

흙바닥을 파내고 거기에 배를 깔고서

더위를 식히더란다.


몸을 돌릴수도 없을 만큼 좁은 울타리 속에서

돼지도 더워서  더위를 식히겠다고 그렇게 행동하다니.

돼지도 더위를 느끼고 고통도 느낀다는 것을

아저씨도 느낀 모양이다.


아저씨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아.저건 고기가 아니구나.생각했단다.

그 모습을 본 이후로 돼지를 안 먹게 되었했다.


김창완 아저씨가 어떤 마음으로

돼지고기를 안먹고 채식을 하게 되었는지

분홍 돼지 트럭을 본 날

상처입은 돼지 옆구리가 떠올라

나도 충분히 이해가 다.

나 역시 트럭 위에 실려가던

돼지 옆구리 상처들을 보면서

분홍 돼지들에게 강한 연민을 느꼈으니 말이다.



이런 에피소드를 경험하고 썰을 풀 땐

이 글 마무리는 당연히 이래야 하는데.

그리하야,

그날 트럭에 실려가는

분홍돼지들 옆구리 상처를 보고나서

저는 두번 다시 육식을 않습니다.라고.


그러나

나는 착하지 않은 사람인가보다.

착한 가슴은 연민은 느끼지만

비정한 입은 연민이란건 모르고

맛만 느끼나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여전히 돼지고기 오겹살을 좋아한다.

그것도 제일 좋아한다.

소고기는 안 먹고 돼지고기만 먹는다.

게다가 제주 돼지고기는 비계도 쫄깃하고 고소하니

얼마나 맛있ㄴ..........

크큼!

어.허험!


그렇다. 암튼 그랬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그래도

돼지고기를 잘 잡숫는 사람으로서

내가 할 소리는 못되지만서도,

그날 그 바쁜 아침에

트럭 짐칸에 셋이 나란히 묶여서

궁뎅이를 흔들며 서있던

분홍 돼지 세마리의 옆구리 상처를 본

여운은 꽤 길었다.


그 마음은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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