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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Dec 02. 2024

사람이 해파리를 입에 물듯이 해파리도 사람을 문다.

첫째 또리가 7살되던 해 여름,

세살 오도리또리 사촌 오빠 쭝이를 데리고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바닷가로 향했.


또리와 쭝이는

바닷가에 풀어놓자마자

우리 먼저 바다들어간다!하면서

내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와아아 소리를 지르며

물속으로 텀벙텀벙 달려갔다.


둘째 수영복을 입히고

썬크림을 바르려고 하는 찰라

끼에에애액하는

기분이 쎄해지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물속에 막 들어간 또리였다.


또리는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고

쭝이는 얼굴이 사색이 된 채로

앞으로 넘어질듯 모래밭을 달려 내게로 왔다.

외숙모.외숙모.

또리가 해파리에 쏘였어요!

빨리 와 봐요.

빨리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머리속이 하얗게 되고

엄청난 공포감이 밀려들었다.

왜냐하면

그 전날 뉴스가라사대

제주 서쪽 해수욕장에서

해파리에 쏘인 젊은 남자가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결국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전날 본 뉴스가 한 몫 더해져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공포감이 들면서

그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또리 주위 바다에서 놀던 사람들이

애기가 해파리에 쏘였다는 말에

모두 놀라 물에서 나온 다음

어린 또리를 달래주며 웅성대고 있었다.


나는 쏜살같이 달려가 또리를 등에 훌떡 업었다.

어디로 가야하지?

119를 불러야하나?

지금 독이 퍼지고 있으면 어쩌지?

쇼크가 오면 어쩌나.

온갖 생각들이 내 머리속을 휘젖고 있었다.


또리는 내게 업히면서 울면서 말했다.

엄마.나 해파리에 쏘여 죽는건 아니지?

흐애애앵.

어.걱정마.걱정마.

병원가면 괜찮아.괜찮아.


나는 사실 괜찮다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들지않았다.

나 역시 엄청난 불안감에 휩쌓였으나

그렇게 또리안심시키며 다독였다.


어린 둘째는 쭝이에게 맡기고

또리를 업고서 눈에 띈 해상 안전요원에게

달려가 다급하게 물었다.

아저씨.아저씨.

우리 애가 해파리에 쏘였어요.

어떻게 해요.네?


아저씨는 침착하게

해수욕장 안전관리 상황실에 가보라고 말했다.

아저씨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아이를 업고서

발이 푹푹 들어가는 모래밭을

우샤인 볼트마냥 쏜살같이 달렸다.


내 생애 통틀어서

그날처럼 달리기를 빠르게 한 역사는 없다.

평소100미터 달리기 내 기록은 23초다.


나는 나도 믿기지않을만큼 빠른속도로

아이를 등에 업고서

넓디 넓은 모래밭을 가로질러 상황실로 달렸다.

나 역시 너무 겁이나 눈물이 났고

입으로는 중얼 중얼 기도를 하며 달렸다.


상황실은 바닷가에 있는 건물 삼층이었는데

내가 어떻게 그곳까지 뛰어갔는지

기억조차 못하겠다.

상황실 문을 벌컥열고 외쳤다.


아저씨!

아저씨!

우리애가 해파리에 쏘였어요!

어떻게 해요.


내가 곧 울음을 터트릴듯 소리치니

아저씨가 다가와 또리 다리를 만지며 말했다.

아이고.엄마가 더 놀랬나보네.

괜찮아요.괜찮아요.

제가 응급처치 해드릴께요.

뭐야.오늘 벌써 세명째네!


나는 그 아저씨의 차분한 대처에

굉장히 위안이 되었다.

아.응급실에 갈 최악의 상황은 아닌 모양이구나.

아이고.주님. 감사합니다.


그제서야

해파리 쏘인 또리 다리를 들여다보았다.

해파리의 긴 촉수 몇 가닥이

또리 오른쪽 다리 허벅지에서 종아리까지

길게 감고 내려와 감긴 모양이었다.


또리 다리는 촉수에 감겨서

마치 채찍을 호되게 맞은 모양새마냥

좍좍좍 줄이 가있고

그자리는 벌써부터 벌겋게 부어올랐다.


아저씨는 별일 아니란듯이

아주 능숙하게 처치를 해주며 말했다.

해파리에 쏘였을 때는 식초가 제일 좋아요.

식염수로 먼저 씻어낸다음

카드로 살살 긁어서

해파리 촉수 끝에 있다가

피부에 박힌 독침들을 빼내줘요.

그리고 식초를 부어주면 돼요.

식초가 독을 중화시켜주거든요.

아셨죠?


아.그렇구나


또리는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는지 울음을 그치고

해파리에 쏘일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오빠랑  물에 들어가자마자

다리에 뭔가가 따갑게 쏘이는거 같더라고.

얼마나 아픈지 말도 못해.

진짜 진짜 아팠다구.

아저씨. 나 이제 괜찮아요?


아저씨는 응급처치가 끝난후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제서야 안도하며

다시 둘째와 쭝이가 있는곳으로 갔다.


상황이 잘 마무리가 되고서

우리는 집으로 오는길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또리의 해파리 쏘인 무용담을 들었다.

낄낄대는 여유를 가지고.


그 뒤로 몇 년동안

여름철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에 수영을 하러 나갈 

베낭속에 식염수 한통과 거즈에 식초를 듬뿍 묻혀서 작은 락앤락통에 담아 챙겨서 나갔다.


빌어먹을 망할놈의 해파리!

해파리는 냉채로 먹는건줄만 알았지.

그 생명이 내 딸 다리를 물거라고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사람이 해파리를 입에 물땐 작정하고 문다.

오늘은 해파리 냉채를 먹어야지 하면서.

해파리는 심심하면 사람을 문다.

그냥 물고 싶을때 문다.

그것들은 촉수로 무는건지 쏘는건지

어쨌거나 그런 짓을 한다.


걔네한텐 칠렐레 팔렐레거리는

길고 강력한 촉수가 있다.

길고 긴 촉수를 흐느적 흐느적거리며

바다속을  멋대로 돌아댕기다가

촉수끝에 뭔가가 걸리면

물귀신처럼 촉수로 냅다 휘감아 감싸고

! 달라붙는다.


촉수끝엔 독침들이 다다닥 달려있는데

대상을 휘감자마자 독침을 쏜다.

독침 한방이 아니라 촉수가 닿는 부위 전체에서

독침들을 발사하는것이다.

해파리 독침이 몇 개나 될까.

아마도 수천개.수만.수억개일지도 모른다.

그걸로 우리 또리 다리를 물었다.쏘았다.내지는,

독침 수억개로 줄줄이 박음질을 했다.


독은 강력해서

몇시간내에 통증이 진정될수도 있지만

쏘인 사람 체질에 따라

전날 뉴스에 나온 남자처럼 죽을수도 있다.


해파리에 쏘인 또리 다리는

일년이 넘도록

채찍맞은 자리마냥

볼썽사납게 시커멓게 자리잡고 있었다.

금새 사라지지 않는 해파리 촉수 자국을 보며

걱정이 되었다.

지금은 흔적도 없다.


그건 그렇고.

암튼

기억해두시라!

해파리에 쏘일때는

식염수 세척 후에 식초를 바르는게 장땡이다.

식초다.식초.

된장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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