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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Dec 06. 2024

아.됐어! 김장이고 뭐고 각자 사먹어!

어느해던가

그해 봄날에 마당 한켠에 밭고랑을 일구고

고추며 감자며 열무나 시금치 심을 자리를 만들어

내 생애 처음으로 농사란 것을 시작했다.

농사라 할것도 없는 소꿉장난같은 짓이기는 했으

그것은 나에게는 분명 농사였다.


하지만 나란 사람은

날씨와 시간에 너무나도 게으른 농부여

채소들이 자라야할 밭에

어느 순간 잡초 숲를 만들고 있었다.

명백히 실패한 농사였다.


그래도 미미한 수확은 있어

가 심은 감자와 열무와 시금치로

소박한 식탁을 몇번 차리기는 했다.

그래도 첫 농사치고 어쨋든 식탁을 차릴수는 있었으니 그것만해도 나는 만족했다.


기나긴 장마와 무더위로 나의 정원은

이제 잡초 숲이 아니라 밀림이 되어버렸고

꽃들이 있어야할 곳과  야채가 있어야할 곳이

잡초 밀림이 되버렸다.


꽃들이 있어야 할곳과 야채가 있어야 할 곳을

구분할수 있는것은

여긴 꽃밭이고 여긴 야채밭이야.하면서

내가 나란히 돌들도 경계를 지어둔 라인이 전부였다.


잡초들은 그곳이 꽃밭인지 야채밭인지

구분하지않고 어디든지 뿌리를 내려

태평성대를 이루는 생명들인고로,

꽃밭과 야채밭 경계를 넘어온 잡초들을

뽑아내 던져버려도 잡초들은 내 호미질을

비웃듯이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내 잡초밭을 보다못한 친구가 호미를 들고서

우리 집엘 들어 왔다.

그녀는 땅을 사랑하는 이로서

농사를 짓고 싶어도 농사 지을 땅이 없다고

허구헌 날 신세타령하는 친구였다.


그녀는 자기 집 가까운데 있는

버려진 돌밭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

끝도없이 나오는 돌을 하나하나 골라내고

을 일궈 기어이 채소밭을 가꾸었다.

그녀가 농사지은 야채들은 어찌나 실한지

쌈 야채뿐아니라 수박이나 참외도 키워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그런 그녀가 보기에

멀쩡한 땅에 잡초만발을 허락하나의 만행을

그냥 보아 넘기기 힘들었으리라.

왜 아니겠는가?

농사짓기에도 아까운 멀쩡한 땅에

잡초농사를 하고있으니 말이다.


난 슬슬 게으른 농부 본성이 도져서

어떻게 하면 일을 안할수 있으까.하며

농사 지옥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있었으나

호미를 손에 쥐고 작정하고 우리 집을 찾아온 그녀는 단호했다.


이 좋은 땅을 잡초 천국으로 만들다니!

당신의 만행을 도저히 봐줄수가 없어.

친구.

호미들고 따라와!

게으른 농사군인 기이인 한숨을 내쉬며

마당 어딘가에 뒹굴고있는 호미를 겨우 찾아들고

우리 정원 잡초 밀림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린채 두 팔을 앞뒤로 번갈아

흐느적 흐느적거리며 삐적삐적 걸어서

그녀 뒤를 따라 잡초 밀림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잡초들을 자근 자근 뽑아내기 시작했다.

조금씩 잡초 자리가  휑해지고

잡초들의 완패로 끝나는가 싶었으나.

생명력 질긴 잡초들은 끝내 내 땅을 욺켜잡고

우리에게 항복하기를 거부했다.

AC! 어디 잡초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친구는 잡초가 버틸수록 기를 쓰며

호미.낫.삽을 총동원하야 초를 뽑아냈다.


잡초들의 뿌리는 더욱 깊어지고

이건 풀이아니라 나무가 된 수준이었으니

그동안 나의 땅에 대한 방만적인 만행의

적나라한 결과물을 대면하고있었다.

우리는 땅을 움켜쥐고

끝까지 버티는 잡초들을 향해

번갈아 한번씩 욕을 해대며

하나 하나 뽑아냈다.


해질 무렵까지 그녀의 부지런함에

찍소리도 못하고 끌려가

잡초와 전쟁을 치룬 나는

그날 저녁 낑낑 거리며 몸살을 했다.


그녀의 억척스런 손놀림에

우리 정원은 이제야 좀 정원다운  정원이 되었다.

드디어 마당 넓은 빈 땅들이  훤히 내다 보였다.

그녀은 말끔해진 마당 빈 땅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친구야.우리 여기에다 김장 배추를 심자.

그리고 겨울에 같이 김장을 하자.

어?..

그래......좋은 생각이야.


전날 잡초를 뽑느라 어찌나 용을 썼던지

다음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어 끙끙댔다.

아이고.허리야.

아이고.삭신이야.하면서

자리에서 뭉기적 거리며 누워 있는데

새벽 댓바람부터 그 친구가 찾아왔다.


마당 텃밭 쪽이 부시럭 부시럭 거리길래

내다보니 내 친구였다.

잠이 덜 깬 눈으로 시계를 보니

정확히 624분이었다.

믿어지는가? 새벽 6시 24분이라니!

저 인간은 잠도 없나.

젠장! 오늘  일진도 망했네.


원래 상농사꾼 하루 일과는

새벽 3시 45분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친구는 상농사꾼들이 늘상 하는 일 패턴대로

당신이 일군 사랑스러운 텃밭을 돌아보러

새벽부터 우리 집을 찾아왔다.


친구야아. 시계 좀 봐바바바.

왐뫄! 아직 이른 새벽이쟈녜!하니

친구는 상농사꾼답게

지금 시간이 어쨌냐는듯이 말했다.

나 할일하고 갈라니까

당신은 당신 일이나 하셔!


새벽 댓바람부터 집으로 처들어와

그녀가 텃밭에서 일해놓은 것들을 보니

야채 심을 자리가 적당하도록

호미로 흙을 긁어 낮은 두렁들을 만들어 놓았다.


우리 마당 잡초밭이

부지런한 농사꾼 친구와 같이 돌보는

공동 텃밭이 되어버린 순간부터

나는 친구에게 단단히 코가 꿰인 팔자가 됐다.

몸이 아프다고 핑계댈수도 없고

일하기 싫다고 농땡이를 부릴수도 없는

팔자가  것이다.


오늘은 어떻게 일 안하고 빠져나갈까.

머리를 굴려 수를 쓰고있는데

점심무렵,

그녀가 꽃무늬 화려한 몸빼를 입고

시골 할망들이 쓰는 챙이 큰 농사 모자를 쓰고서

호미와 낫으로 완전 무장을 한 채

또 쳐들어 왔다.


이번엔 배추 300포기 모종과,

쪽파 씨앗 수천개.

그리고 어디다 심을 건지

이번엔 아예 그물 가득히

수억개 마늘까지 담겨져 있었다.

무우 씨앗과 시금치 까지.

이번엔 지난 봄처럼

너의 만행을 보고만 있지 않을것이여!

 앞에서 다짐하면서.


전날 잡초랑 싸우느라 몸살이 나서

밤을 꼴딱 새운 나는

점심무렵에 나타난 그녀를 따라

또 다시 호미를 들고 비쩍비쩍

마당 귀퉁이 밭으로 끌려 들어갔다.


친구야아아.

 이리 배추는 많은 거야.

쪽파들은 또 어떻고.

 망에 가득히 든 마늘은 또 웬말이니?

나는 연신 투덜댔고

친구는 게으른 내 투정을 무시하며

입술을 앙다문채 호미질을 하면서 말했다.

됐고!

조용히 이거나 심으셔!

결국 우린 그 많은것들을 텃밭에  심었다.


나는 그녀를 따라

그녀의 지시에 순종하며

하루 죙일 배추 모종이며 수천개의 쪽파와

수억개 마늘을 심으며

입이 댓빨 나온 채 줄곧 생각했다.


나도 차암 입이 방정이야.

쟤가 농사라면 아주 환장을 하며 달려드는 인간이란걸 기억했었어야 했는데.

 인간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여기다 배추 농사를 하자.라고 말할때

나는 도망갔어어야 했어.

바보.멍충이.

입 방정떨다 꼴 조오타!


그녀는 새벽 6시엔 어김없이

우리 마당 텃밭에 나타나

어떤 날은 스프링 쿨러를 켜서 밭에 물을 죽고

어떤 날은 김을 맸다.

또 점심무렵이 되면 반드시 다시 나타나

싹이 올라온 야채들을 솎아내고

어디서 가져온건지 비료나 거름을 뿌려 놓았다.


억척스런 그녀 덕분에

완전히 코낀  농부가 되버린 나는

그 해 가을내내 친구가 하라는대로

밭에 김을 매고 흐트러진 두렁을 호미로 긁어 올리며 어디 도망도 못가고 성실하게 농사를 지었다.


그 해 겨울이 되었을 때

우린 우리가 농사를 지은 것들로 김장을 했다.

그해 농사가 썩 잘 된 편은 아니어서

농사꾼 내 친구는 김장담을 배추가 성에 차질 않아

우리 텃밭에서 키운 배추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배추 250통을 사서

트럭에 싣고 나타났다.

아니이. 친구야아.

이 트럭 가득 실린 배추들은 또 어쩌자는 거시냐.


친구가 사온 배추 250통을 마당에 부려놓을때

나는 내 생전 그 많은  배추들을 듣도보도 못한지라

이걸로 어찌 다 김치를 만드나. 심난한 생각에

배추 250통을 보며 눈물이 날뻔 했다.


시골 동네 김장이라함은

역시나 동네 잔치나 다름없다.

또리네에서 모일 모시에 김장 한다더라

친구들에게 금새 소문이 났다.


우리 마당 텃밭 농사를 거든 자는 거든자대로

내 텃밭 농사 구경을 해온 자들은 구경한 자들대로

수육을 삶아 먹네. 굴무침을 하네.하면서

자기들끼리 신이 나서 각자 역할을 분담했다.


칼바람에 눈발이 수평으로 날아다니던 날.

김장하는 날이 밝자

농사꾼 내 친구네 가족을 비롯하야

우리 김장하는 일보다 굴무침에 수육을 얻어 먹을 생각에 신이 난 친구들이

각각 자기네 집 아이들 세명씩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몰려왔다.

한자리에 모이고보니 역시나 수십명이 되었다.


추운 겨울날

마당에서 배추 수백통을 손질하여

씻고 절이고 준비하여

우르르 집안으로 들어가 김장을 한 우리는

각자 담은 김치들을 정확히 1/N하여

각각 자기집 김치 냉장고 통속에 넣어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마당에서 이렇게 대규모 군단이 한데 모여

김장이란걸 해본 역사가 없는 나는

그날 어찌나 생고생을 했던지

마당 텃밭에서 부지런한 농사꾼 친구와

두번다시 농사를 짓지 않았고

우리 김장 같이 하자.는 말은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게 했다.


친구야.올해 우리 김장 같이 할ㄹ....

아. 됐어!

각자 알아서 사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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