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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Nov 19. 2024

이만하면 우리는 제주라는 행성에 잘 정착했다.

늦은 밤

예전에 살던 동네 지인분이

잠깐 집에 들르라며 전화를 하셨다.

당신 옆집에 육지에서 새로 이사 온 가족이

있는데 나를 소개를 시켜 주시고 싶다고 하셨다.


가서 그 가족을 만나보니

부산에서 내려온

초등4학년 남자아이와

7살 난 여자아이를 둔 젊은 부부였다.


우리 가족처럼

연고지 없이 육지에서 제주로 이사 온 데다가

아이들이 다녔던 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하니

지인분은 나를 소개해 주시고 싶으셨던 모양이었다.

내가 무슨 도움이 될랑가.


지인분 마당 테이블에 앉아서

그분들과 인사를 했다.

 가족은 저번 주말에 제주에 입도를 했으니

그야말로 초짜배기 제주도민들이었다.


도시아파트에서 살던 아이들은

얼굴이 희고 고왔는데

한마디로 도시물이 잔뜩들은

녀석들이었고 시골생활이 신기하고

호기심이 넘쳐나 보였다.


시골에 이사오니까 좋으니?

내가 묻자마자

녀석은 제일 먼저 집에서 맘껏 뛰어도 되니

그게 믿기지가 않을 만큼 좋다고 했다.

아이들도 부부도

새로운 생활에 대한 설렘이

잔뜩 묻어나서 보기에 좋았다.


이제 막 낯선 제주 생활을 시작한

 가족을 보니

우리가 처음 이곳 생활을 시작할 때가

생각이 났다.



서울에서 제주로 이사오기 직전,

서점에서 우연히 뽑아 든 책이 있었다.

책 내용은  인상 깊었고

작가가 아이를 키우는 방식과 자녀 교육관에

크게 공감하며 읽었었다.


작가는

우리보다 2일찍 제주로 이사를 와서

시골 자연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중이었고

본인 인생관에 따라

자연에서 충만한 삶추구하며 살고 있었.


제주에 입도하기 전날 밤에

나는  양반이 우리 동네 근처에 살고 있다는 걸 떠올리고그냥 인사차 작가에게 메일을 보냈다.


작가님이 쓰신 책을 공감하면서 읽었고

내일 우리도 제주 ㅇㅇ동네로 이사를 간다.

걱정도 되고 설레기도 하다.

뭐. 그런. 내용 없는 메일이었다.


이삿짐을 풀고 며칠이 지났는데

놀랍게도 그분이 우리 집을 찾아오셨다.

굉장히 당황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양반이 반가웠다.


그렇게 처음 대면한 우리는

네댓 시간을 꼼짝 않고 자리에 앉아

따뜻한 차를 내려마시면서

그분이 사는 이야기와

우리가 사는 이야기를 서로 나눴다.

우리는 서로 비슷한 인생관을 가져서인지

대화주제는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면서

풍요로웠고 상당히 즐거웠다.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는

제주 이민 붐이 일어나기 한참 전이었다.

제주로 유입된 인구보다 육지로 나간 인구가

더 많다고 지역 뉴스에서 늘상 떠들어 대던 시기였다.


당시 우리는

본가와 친정 식구들. 친구들을 모두

서울에 남겨두고서

아무 연고지 없는 제주로 내려왔기에

새롭게 시작한 제주 삶이

마냥 막연하게만 느껴졌었다.


우리처럼 역시나 연고지 없이

서울에서 이사 온 그분은 

같은 처지인 우리가 당신보다

시행착오를 덜 겪길 바란다 했다.

그리고 우리가 제주에서 평안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그분 지인들을 소개해주시기 시작했다.


동화. 에세이나 시와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뿐만 아니라

환경운동연합일을 하시는 분.

대안학교를 만들고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선생님과

도예 하시는 양반.

천연 염색하시는 분.

목공 예술을 하시는 분.

수제 차를 만드는 명인과

직접 집 짓기를 독학하면서 흙집을 짓고 있던 분,

유기농 농업대부도 소개를 시켜주시는 등

그분이 우리에게 소개해 주시는 분들의

전문 분야는 정말 다양했다.

소개받은 그들의 삶은

당시 나에게 놀라움과 감탄의 연속이었다.


그들을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눌 때

그들은 한결같이 표정이 편안했고

미소가 아름다웠다.

나는 그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들이 사는 자연환경이 그들을 평안하게 하는지,

그들이 인생을 살아가며

삶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과 철학이

그들 얼굴에 평화로운 미소를 만드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모두 아주 곱고 편안한 표정을

가진 분들이었다.



메마른 도시 삶을 살 때 나는

사람 사는 것은

다 그저 비슷비슷한 모양새만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제주에서 소개받은 그분들의 시골 삶을 들여다보니 정말이지 버라이어티 했고

펄떡펄떡 살아있는 삶 그 자체였다.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 그들의 생활지켜보니

각자의 다양한 색깔들이 담겨있었다.

한 사람의 아름다운 인생 속에는

그가 지닌 향기가 흘러넘친다는 걸 느꼈다.

인생을 보는 시야가 순식간에 확장된 느낌이었다.


소개받은 그분들에게서

특별히 어떤 도움을 받지 않았다 해도

시골 삶을 이제 막 시작한 우리에게는

그분들의 삶을 들여다본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는 인생 공부였다.


낯선 이곳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

어린 내 아이들을 어떻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키워야 할지 체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 발로 꾸역꾸역 찾아든 이 시골에서

우리는 지금도

우리가 원하는 삶의 속도와 오감으로

느리지만 촘촘한 행복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이제는 지금 이 삶이

예전 서울에서 살던 삶보다 더 익숙해진걸 보니

이곳에 잘 정착하여 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제 막 육지에서 이사 내려온

그 가족을 보니 딱 그때의 우리가 생각이 났다.

덕분에 새로운 삶의 항해를 앞두고서

우리가 느꼈던 가슴 두근거림과 설레었던 감정잠시 회상했다.


우리가 이곳에 자리 잡은 지

이십여 년이 되어가니

 작가분이 우리를 여러 지인들에게

소개를 시켜주고 도움을 주셨듯이

이제는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럴 때가 있다.


육지에서 연고지 없이 내려온 가족들에게

그들이 필요하다면

특별할 것도 없지이곳에서의 삶의 정보나 노하우. 인맥들을 소개해준다.


그동안 멀게는 미국. 중국. 호주. 캐나다와 같은 외국뿐만 아니라 서울이나 육지 여러 도시에서

새로운 인생을 그리며

 시골 구석을 찾아오는 가족들이 많았.


육체적, 정신적인 건강상의 이유로,

아이들 육아교육관에 따라,

인생관에 따라,

인생의 중요한 삶의 터닝 포인트에서

제주 외진 시골에 찾아드는 가족들은 

한때 제주 이민바람을 타고서

정신없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가

요즘은 주춤한 모양이다.



그들 중에는

제주에서 잘 정착한 가족이 있는가 하면

이사 온 지 2.3년쯤 지나면

다시 육지로 떠나간 가족들도 상당히 많았다.


잘 정착한 이들보다

각자 다양한 이유로 다시 육지로 올라간 가족이

월등히 더 많았다.

그래도 요즘 내 주변에는 제주 토박이 친구들보다

그들 수가 훨씬 더 많은 편이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겠지만

이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함께 맘을 나누는 동안,

인연이 찾아오고 다시 그들이 우리를 떠나갈 때

우여곡절 별별 일들도 참 많았다.


이곳에서 20년이란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가 겪은 크고 작은 일들을

어찌 다 짧은 글에 담을 수 있을까.


어쨌거나

 삶을 시작하는  가족이

이곳에 잘 정착해서 행복하게 지냈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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