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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Nov 22. 2024

그는 주저하며 물었다. 휘발유 맞지에?

긴가 민가 할 때는 긴가. 가 맞다.

예전에 내가 벌인

 사건에 대해 겸허히 고백하겠다.

십칠 년 전 얘기다.

크큼!

(호흡 가다듬고 물도 한 모금 마시고. 시이작!)


그러니까.

사건발생 두 시간 전.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얘들아 우리 목욕갈래?

그러자 첫째는 급 흥분했고 둘째는 심드렁했다.

엄마. 누나랑 갔다 와. 난 아빠랑 놀고 있을게.

어엉. 그럴래?


목욕탕 가자고 내가 먼저 바람을 잡긴 했으나

남편과 둘째가 심드렁하니

그때까지만 해도 나도 그냥 집에서 쉴라고 했다.

근데 첫째삐지는 바람에

어떻게 하나. 갈까 말까 하고

게으름을 피우며 뭉기적댔다.


사건 한 시간 전.


티브이를 보며 사과를 씹던 남편이 말했다.

당신 목욕탕 간다더니 왜 안 가?

또리 데꼬 얼릉 갔다와.

평소와 다르게 그는 우리를

목욕탕을  보내서 안달하며 재촉삼촉사촉했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마눌. 읍내 나간김에 내 차에 기름도 넣고 와.


각각 차가 있는 우리는

서로의 차를 대신 몰고가서

기름 넣어주는 자상한 짓은 안한다.

자기 차는 자기가 먹인다.

근데 왠 일로 자기 기름을 넣으라고 하냐!

그것은 필시 운명의 장난이었다.

나는 뭉기적 뭉기적대다가

마지못해서 남편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사건발생 십분전.


읍내에 나가기전에 주유소가 하나가 있다.

평소에는 거기서 기름을 넣었다.

일년 사시사철 보통 그랬다.

그날은 없던 의리가 불현듯 샘 솟아서

좀 멀리 떨어져있는 지인이 하는 주유소로 향했다.

기왕 기름 넣을꺼 친구네 좀 팔아주자.

원래 사건이 벌어지려면

꼬옥 평소에 안하던 짓을 할때 일이 생긴다.


사건발생 이분전.


친구 아버님이 하시는 주유소에 아버님안계셨

생전 처음보는 남자분이 기름을 넣어 줄껀가보다.

남편차 창문을 내리고 초식동물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 V ^) 외쳤.


오마너언이요~

(자기 독백 시작!)

오마넌이길 망정이지 만땅이었으믄 어쨌으까.


사건발생 이초전.


휘발유 맞지에?

그날 알바 첫 출근인게 분명해보이는 아저씨는

기름넣는 주유건을 들고서

주저 주저하며 나에게 물었다.


???????

아..에..또..(- -) (- -;)a~

(머드라. 남편차가 휘발유였던가.경유던가? )

그가 예상치않은 질문을 하자

나는 순간 긴가(경윤가) 민가(휘발윤가) 했다.


그렇다.

여러분이 상상하는바 대로다.

남편 차는 디젤이었다.

알바 아저씨는 휘발유 맞지에.라고 했고.


그 일이 있기 전에는

주유소에 기름넣을때마다

이렇게 주유소 직원이

휘발유나 경유냐를 묻는적은 없었다.

왜냐? 당연히 그들은 그냥 안다. 뭘 넣어야되는지.


그래서 나도 알아서 넣어주겠거니 방심을 했다.

그러나 그 날 그 아저씨는 주유소란 곳에서

처음 일을 시작한 알바생이었던거다.

주유소 첫 출근한 알바생이 뭘 알겠능가.

(어쩐지 묻는 목소리에 자신감이 없드라. 우쒸!)

것도 필시 운명의 장난이었다.


사건발생 순간.


음...눼에에...아..아마도 그럴껄요(--;)a~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나도 뭔가 이상하긴했다.

나 역시 그 아저씨마냥 아마도.....라고

주저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그는 한번 더 망설이더니 남편차  주유구

건을 쑤셔넣고 기름을 넣었다.


나는 분명 들었다.

알바 아저씨가 건을 쑤셔넣을때

소심하게 주저하며

휘발유 맞지에..라고 한번 더 중얼거리는 걸!


 나도 뭔가 조짐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난 촉이 좋다. 촉은 좋아도 차는 1도 모른다.

내 아들놈이 여섯살때

온갖 차종을 좔좔 외우며

어느 회사 무슨 모델 몇년식 차가 어쩌고 저쩌고

썰을 풀때,

내가 가진 차에대한 지식이라고는

6살 뇌속에 빽빽하게 자리잡은 차에대한 지식들 근처에도 못갔다.


존하는 생물들중에 어느 생명이 가장

단세포 뇌를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차에 대해 구분하는 지식이라고는

딱 그 생명 단세포같은 뇌정도였다.


차는 모름지기

뚜껑이 열린차와 닫힌차가 있고

높은 차와 낮은차가 있고

사각 모양의 차와 유선형 차가 있고

비싼차와 값싼 차가 있고

중고차와 새차가 있고

외제차와 국산차가 있다는 것만 알았다.


알바 아저씨는

남편의 디젤차에 휘발유를 멕였다.

그것도 꾸역꾸역 오만원어치를!

휘발유는 꾸역 꾸역.콸콸콸콸 거침없이 들어갔다.


차라면 일자 무식 나의 아마도.....와

주유소 알바 첫날 아저씨의 휘발유 맞지에...는

쿵짝이 잘 맞아서 결국 일을 저질렀다.


사건발생 후.


뭔가 기분이 쎄에하니 이상했다.

엔진소리도 이상했다.안 이상할 턱이 있겠나?

그래도 차는 굴러가드라.

(차가 굴러가네. 아.괜히 걱정했네.C!)

남편차는 나랑 첫째를 태우고

약 오백미터쯤 굴러가서 사우나에 도착했다.

거기에다가 차를 파킹했다.


사건발생 두시간 후.


목욕하고 매우 개운한 기분으로 사우나를 나와

첫째와 나는 희희덕거리면서

빠나나 우유를 손에 쥐고 쪽쪽 빨며 차를 탔다.

시동을 걸었다.

쓰르륵 씨이익 푸를르뤵~하더니

시동이 안 걸렸다.


허어어어얼.


드뎌 올게 왔고

뭔가 쎄하던 나의 촉은 그날도 영락없이 맞았다.

차는 이미 제 신이 아니었.

잠시 몇초동안 난 멘붕이었고

내 머리속엔 새 한마리가 짹짹짹거리면서

왼쪽 뇌에서 오른쪽뇌로 이동하며 지나갔다.


아놔. 이런! 엠병할 일을 봤나!

휘발유가 아니라 경유였던갑지?!

긴가(경윤가)민가(휘발윤가)중에 긴가였던거다.


시동을 켜보려고 몇번 시도를 할때마다

남편 차는 온갓 쇠조각  긁는 소리를 내며

쓰르느륵 프뤠레뤵  쓰륵 쓰륵 프뤨뤨뤨레거렸다.

쎄에에애했고 뭔가 잘못됬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났다.

결국 우리는 우리들의 든든한친구

ㅇㅇ콜을 불러서 집으로 왔다.


자던 남편이 일어나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상태로 부시시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물었다.

 갔다왔니?

여보.당신차 휘발유넣었다?!(  ^^)  (--  );;;;

흐억!

뭐???

니 방금 머시라켔냐.(@..@)

디젤에 어떻게 휘발유를 넣냐.

마눌. 니 제정신이냐아.


나도 멘붕이었으나 남편 자다가 왠 봉변이냐.

마눌. 니 제 정신이냐! 이후로 그가 침묵했다.

당연했다. 멘붕상태이니.

나는 남편 반응에 내가 지은 죄를 자각하면서

슬금 슬금 남편 눈치를 살피며 딴 방으로 피신했다.

이럴 때 죄인은 눈밖에 사라져 주는게 신상에 이로운것이다.


백년과 같은 남편의 침묵은 암 견디기 힘들었다.

딴방으로 피신해서 남편 눈에 띄지않으려고

노력한 나는 남편 눈치를 곁눈질로 살피며

한발짝 한발짝씩 남편과 간격을 좁히며 다가갔다.


약 세시간이 지난 후였다.

남편과 결혼한 이래로

가즈앙 비굴한 모드로

가즈앙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바닥에 깔고

죄인에게 허락된

죄인이 내도 될 만한 데시벨의 소리로

쥐새끼처럼 비굴하게 말했다.


아.미안해애애애~ (-- ;)

내가 알고 그랬나아아아? (-- ;)

나도 이런 내가 황당하다구우 (ㅠ ㅠ)

어쩌겠냐.

맘에 안 들어도 당신 마눌인디 데꼬 살아야지이.

 그래애? 으응? (ㅜ ㅜ  ;)


끄으응.

남편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누르는 소리가

남편 목젖을타고 넘었다.

꾸울꺼억.


그리고나서는 나를 한번 째려보더니

한심해 죽겠네.라는 뜻을 담아

크게 숨을 들이키다가

한번에 숨을 내뿜으며 한마디를 했다.

돼앴 따아!

하아아아아아아

(  -ㅇ-)+++++  (--  ;).   ( _ _ ); 


그렇게 24시간동안

내가 숨을 쉬고 돌아다니면 남편 화를 돋굴까봐

나는 숨도 절제하면서 쉬고 밥도 못 먹고

방에서 찌그러져서 쫵!소리도 못했다.


다음 남편과 점심을 먹는데

그래도 살고 싶은 욕구는 있어서

남편에게 한번 더 말했다.


어쩌겠냐아.

내가 몰라서 그런것으을.

당신 마눌인디 그런갑다아아하고 데꼬 살아야지.

당신이 좋다고 데꼬사는 마눌이쟈녜.

그가 긴 침묵을 깨고 말다.

전날보다는 문장이 길었다.

다행이었다.


그거 알아?

이거 다음 메인에 뜰 기사감이다아.

누가 너같은 짓을 하냐아.

그는 전날 내 만행에 뒤늦은 분노를 드러내며 으르렁 으르렁거렸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그럴만 했다.

나는 천하의 죽을 죄를 진 죄인이었으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하던지

눼.눼.

암요.암요.그렇다마다요.했다.

(   --)××××××   (--   );;;;

(-'-  ;)  (    . ,)a~~~


 다음은 어찌되었나하믄 설라므네.

사실 남편은

남편차를 폐차해야겠거니 생각했었나보다.

그렇게 되면

내가 주님 앞에 두 손 모으고 설 때까지

이승에서 나를 두고두고 옭아매리라 작정했다한다.


하지만 역시 제주도는 모든 문제를 인맥으로 해결할수있었.

아는 지인분이 친구가 운영하는 카센터를 소개해줬는데 그가 장장 이틀동안 차를 분해해 본 결과






완전





나왔다.


히야아아아. 살았다. 냐하! (^ ^)

할렐루~야

주님 나의 찬미를 받으소서.


남편 차가 사망하지않고 살아난 덕에

죄에서 약간 자유로워진 난

다시 주둥이가 살아서

매우 해맑게 남편앞에서 웃으면서 했다.


아따.죽는줄 알았구마~

그러자 그는 그렇게 화답했다

워메! 폐차할쭐 알았고마~ 눼휏훼

천사같은 그가 웃었다.

세상에.남편이 분명 웃었다.


착한 남편폐차를 안한것만해도 감사할 지경인데다가 수리비용도

완전 착하게 나왔으니까 다행이었던거다.




그 일은 지금으로부터 약 17년하고도 칠개월하고도 이십사일이 지난 얘기였다.


내가 9년전에 이 이야기를 친구들 몇명만 들여다보는 내 비공개 카페에다가 글을 쓴적이 있다.


친구들 반응이 짐작되어서

나는 글 맨 밑에 첨부했다.

PS.

제발 부탁인데

글을 온라인 어느 게시판이고

복사떠서 올리고 싶은 인생들이 있을줄 안다.

분명히 말한다.

안된다!


역시나  글을 올리자 친구들은

댓글에서 난리법석을 떨었다.


페이스북에 올릴 이야기 감이네.

인간극장 출연해라.

너무 착한 남편을 둔 너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

사망 직전이던 차의 회생을 축하한다.


친구들은 끈즐기게 이 글을 복사떠서 어디라도 게시판에 올리고 싶어서 주둥이를 들썩였다.

사실 난 그걸 두려워 해서

오랫동안 꾹꾹 참고 이 글을 안썼던 거다.


근데 나의 멍청한 실수를 그냥 넘어갈리 없는

의리라곤 개똥도 없는 내 친구들은 예상대로였다.

역시 반응은 생각대로 와글와글거렸

극 소심좌인 나는 그 상황에 역시 당황했.


그래서 내가 그랬다.

 글 복사떠서 옮기는 순간

나랑 인간관계 끝이다.했더니만

이름만 가명 처리하겠단다.

와 씨.

아무튼 마무리로 내가 다시 글 올렸다.


사생활을 보장해 다오.

내 글들을 복사할 생각 하덜덜 말아라.

시골 아줌마가 무슨 낙이있것냐.

궁시렁궁시렁 써대는글들 여기 저기다가

 복사떠서 옮기믄

그건 저작권 침해요.

한사람의 영혼을 갉아먹는 중죄다.알았냐.했는데

답글이 걸작이었다.


친구야.

걱정마.

가명처리하믄 암도 몰라.



그후로 몇년후에

거실에 있던 남편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마눌.마눌.이리와봐.

왜?

여기 다음 메인에 혼유사고가 요즘 자주 일어난다고 기사가 떴다.

야.당신같은 사람들이 또 있능갑다.

(아직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다뉘!)


그 기사는 혼유사고때문에

비싼 차 차주와 주유소가

소송이 붙었나.어쨌나.하는

얘기였던걸로 기억한다.

그래. 나같은 사람 또 있구나. 생각했다.


여튼

그 사건이후로 나는 남편이 내 차를 바꿔줄때마다

남편차가 바뀔때마다

늘상 묻는다.

이거 경유야.휘발유야?

남편이 수십번 가르쳐줘도

혹시나 할땐 또 묻는다

이거 경유야 휘발유야?


다른건 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데

어찌하야

차에 대해는 단세포가 되는지 알턱이 없다.

남편은 내가 수십번 물어도 대답해준다.


당신 차는 경유라고 경유!

내차는 휘발유고!

까딱 잘못했다간

또 일을 저지를수 있는 마눌이기에

차에 관한한 남편은 마눌을 방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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