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안 Nov 20. 2024

마당을 뚤래 뚤래 거닌다.

자연을 옆구리에 끼고

비비고

만지고

부딪히며 살고 있다.


그러한 자연이라는 것이

때로는

내 삶의 중노동거리가 되기도 하고

마음이 울적할 때

친구처럼 조용히 위로가 되어준다.


마당을 그냥 뚤래뚤래 거닐 때가 있다.

마당에서 자라는

풀. 꽃. 돌 위에 앉은 이끼들도

가만히 쭈그려 앉아 들여다본다.



때에 따라

이슬을 맞아

잎사귀가 자라고

아무도 관심 없을지언정

소박한 꽃을 피우고

또 그렇게 조용히 사그라진다.


이게 언제 피었나 싶으면

어느새 사그라들고

게 벌써 사그라들었구나 싶으면

다시 게 피어오른다.


몇 년간 나를 괴롭히던 토끼풀 덤불은

무던히도 덥던 이번 여름에

짧게 깎은 잔디 사이에서

뿌리까지 바싹바싹 타 죽었나 보다.


내린 후

다시 여기저기 번성한 잡초들 속에

토끼풀이라곤 도통 보이질 않는다.

대신

질경이라던지

이름 모를 잡풀들이

잔디를 비집고 야무지게 자리를 잡았다.


나는

토끼풀 때문에 몇 년을 쌩고생을 했던고로

저따위 잡풀들쯤이야.

! 겁나지 않는다.

더 무성해져도 괜찮다.



마당 소나무 솔가지도 만져보고

시들은 수국나무잎도 떼주는 사이

깨진 항아리에

직박구리 새가 날아와 목욕을 한다.


항아리 속 고인 물에 들어가

날개를 푸드덕거린다.

새는 머리를 물속에 집어넣었다가

고개를 든 다음

날개를 휘저어 물을 온몸에 끼얹는다.

종종 긴 부리로 정성껏

날개밑 사이사이에 깃털을 가다듬는다.


몇 번을 그렇게 날갯짓으로 물을 뒤집어쓰더니

내 발자국 소리에 놀랐는지

빼빼애거리며 나무 위로 날아간다.


장마 때쯤엔 수국들거창하게 피었다가 지고

가을이 시작될 즈음엔

범의 꼬리 무리가 화사하게 꽃을 피우는데

그 꽃은 가을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무리 진 범의 꼬리 꽃들이 절정이다.


마당에 떨어지는 햇볕에서도

뒤편 초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도

짙은 늦가을 냄새가 난다.


비가 몇 번 더 내렸다가 그치면

가을은 마당 깊숙하게 들어앉았다가

서리 내리는 초 겨울바람에

슬그머니 자리를 내줄터다.

이전 10화 이만하면 우리는 제주라는 행성에 잘 정착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