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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Dec 21. 2024

내 이웃, 꽐라 삼춘과 심술 할망.

세상만사 도통하여 도무지 짖지 않는 릴리가 밤새 짖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제주에 와서 처음 살았던 동네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지금 이 집으로

우리는 두번째 이사를 왔다.

첫 번째 살던 집과 거리가 약간 떨어져 있긴 했으나

매냥 한 동네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처음 살았던 동네에서 친했던 장작할아버지에게

( 그 양반은 언제나 바지에 멜빵을 하고

사시사철 도끼로 장작을 고 있었으므로

우리 아이들이 붙인 할아버지 애칭이었다.)

동네 ㅇㅇ할머니식당 옆

샛길 안쪽에 있는 빨간 지붕 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소식을 전했다.


장작할아버지는 그 말을 듣다가

혼잣말처럼 튀어나온 첫마디가 이랬다.

아이고.

거기 이웃들. 성질 지랄 같은데.

헉! 눼애?

(가로 열고. 망했네! 가로닫고.)

응. 아. 아니여.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터줏대감 장작할아버지는

집들이 밀집되어 있는 본 동네뿐 아니라

사이드 동네 구석구석 사는 동네 인물들과

그들의 인간사를 훤히 꿰고 계셨다.

이거슨.

예사로 흘려들을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 집으로 이사 와서 보니

옆집에는 심술깨나 부릴법한 얼굴의 할머니와

새초롬한 샛님 같은 노총각 아들이 살고 있었다.

옆집의 옆집에는 심한 알콜중독임이 분명해 보이는

옆집 노총각보다 더 늙은 노총각이 살고 있었다.

우리 앞 집에는 근처 소 목장을 하는 어른이 살았고.


장작할아버지가 혼잣말처럼 하셨던

거기 이웃들 성질 지랄 같은데. 는

우리가 이사를 오자 하나둘 정체를 드러내며

그들이 진짜 지랄 같은 성격임을

스스로 입증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사오기 전 이 집엔

육지에서 수십 년 전에 내려온

나이 든 소금장수 할아버지네가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집주인이 우리에게 집을 팔았기 때문에

소금장수 할아버지네는 이사를 가야 했다.

그들은 앞 집에 있는 창고를 개조한

셋방으로 이사를 갈 거라 했다.


우리 집이 워낙 오래된 시골집이라

최소한의 리모델링 공사를 해야 했다.

원래 살던 소금장수 할아버지와

공사이사날짜를 조율했다.

소금할아버지네 형편을 고려해서

우린 이사 날짜를 늦추었다.


소금할아버지가 이사를 나가기 전

당신이 사는 동안에도

건물 외벽과 지붕 방수 작업은

미리 해도 된다 하셔서

업체를 불러 외부 방수 작업을 하는 도중이었다.


한 다리 건너 옆집의 알코올중독 노총각이

대낮임에도 한잔 걸쳤는지

얼굴이 벌겋게 상기가 된 채

마당으로 들어서며 외쳤다.


아니!

사람이 아직 살고 있는데

무슨 공사를 한다고 난리여?

젊은 사람들이 그러는 거 아니여!

(흠. 왔네. 동네 사람 1인 등장.)


그와 첫 만남이 그랬다.

그가 어떤 개인사를 지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술로 휘청댔다.

거의 매일 동네 입구 할머니 식당에서

외상으로 깡소주를 얻어다가

대낮부터 끼니 삼아 먹었다.

그는 365일 혀가 안으로 말린 말투와

꽐라 된 얼굴로 동네를 돌아다녔다.


우리가 서울에서 이사 온, 자들임을 알게 되었는지

(우린 이걸 제주 전문용어로 육지 껏.이라 한다.)

꽐라 노총각은 옆집 심술 할머니와 협동하여

이제 막 이사를 온 우리에게

시시꼴꼴 텃세를 부렸다.


옆 집 심술 할머니가 우리에게 가진 최대 불만은

50년 동안 우리 집 방풍림으로 서있는 편백나무들이었다.

니네 편백나무 가지가 우리 땅으로 넘어왔네.

니네 편백나뭇잎이 우리 마당으로 날아왔네.

그녀는 365일 지치지 않고

편백나무 가지타령을 했다.


하. 이 싸람들이 마랴.

너무 강적인데? 어쩐다지?


심술 할망의 365일 나무타령이

중중모리 장단으로 귀에 익숙해질 때쯤,

나는 전략을 바꿔 지랄 맞은 이웃들을

한 사람 한 사람 포섭하기로 했다.

그들 비위를 맞춰 똥꼬를 살살 긁어

내 편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거슨 또. 내가 전문이지!


꽐라 노총각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일단 호칭부터 바꾸자!

제주살이 필살기인 명칭! 삼춘.으로

(제주에서는 연배가 높은 이들을 친근하게 부를 땐

대상이 남자건 여자건 상관없이 삼춘이라 부른다.)


나는 그를 삼춘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다가갔다.

그가 우리 집 앞을 지나갈 때

그를 불러 세웠다.

삼추우우운. 잠깐 오셔서 차 한잔하고 가세요.

그가 못 이기는 척 들어와 차를 한잔 마시고 갔다.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부터

그는 우리에게 차츰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내 머리통보다 더 큰 늙은 호박을

데크 위에 놓고 갔다.

또 어떤 날은

이건 진짜 귀하고 멋진 돌이라며

현무암 돌뎅이를 선물로 주고 갔다.


나는 수석에는 도통 문외한이었으므로

모양이 멋지다!

그가 내민 돌뎅이가

도대체 어디가 멋진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하야 감탄했다.

우와아아. 이거.

괴엥장히! 어엄처엉나게! 멋진 돌이네요.

(주여. 저의 거짓된 혀와 입을 가엾이 여기사,

뱀의 혀로 거짓을 말한 저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


그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자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인 현무암 돌뎅이들은

드디어

그의 작품을 알아보고 합당히 인정하는 나에게

하나둘씩 선물이 되었다.


그가 아끼는 돌을 선물로 주고 갈 때마다

멋진 돌 생김새를 보고

내가 감탄하는 레파토리는

시시각각 업데이트 변화하며 심도 있게 진화했다.


그가 나에게 주고 간 돌뎅이는

하나씩 늘어나

데크 난간 위에 길게 늘어서

기차를 만들었다.

그것은 그와 우리 사이에

이웃지간 사랑의 가교 역할을 했다.


어느 날,

역시나 할머니 식당에서 깡소주를 마시고

역시나 꽐라가 된 상태로

역시나 돌뎅이 또 하나를 들고 나타난 그는

이번 돌뎅이는 저번 돌뎅이와 다르게

어디가 멋진 건지 또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는 돌뎅이를 이리저리 돌려봤다가

들었다가 내려놓았다가 하면서

돌뎅이 찬양가를 홀로 읊다가

긴 찬양가는 옆 집 심술 할망 욕으로 끝났다.


옆 집 심술 할망은

이 귀한 작품을 볼 줄도 모르는

무식한 인간이라 했다.

수석 전문가인 자기더러

아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돌뎅이에 미친 미친놈.이라 했다며

옆집 심술 할망 욕을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심술 할망의 나무 타령이

365일 중 344일째 이어지며

옆 집과 경계인 돌담과

편백나무 울타리를 넘어 들려왔다.

우리 마당에 서 있던 꽐라 삼춘이

그 소리를 듣고는 나를 대신하야

입에 총알을 장전하고서 참전했다.


양! 삼춘. 무사!

(이봐요.삼춘.왜)

허구한 날 옆집 나무 탓만 함수까?

또리네 편백나무는 이 집에 있은지 50년 됬수게!

삼춘.

삼춘 집에 이사 온 거 10년 전 아니이?

삼춘이 10년 전에 이사 올 때부터

이 집 편백나무가 있었주마씀.

편백나무가 경 꼴 보기 싫으면, 예?

삼춘이 그 집으로 이사를 안 왔어야핸. 예!

경 싫으믄 내일이라도 당장 삼춘이 이사 갑써!

또리네 괴롭히지 말앙.


그 해

함박눈이 내리던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매년 그랬지만 연례행사처럼

친구들이 각자 아이들 셋 씩을 데리고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자고 집으로 몰려왔다.


각 집마다 메뉴 하나씩을 정해

풍성하게 준비해 온 음식들을 꺼내놨다.

접시에 담아 거실 한쪽에 길게 늘어놓았다.

음료수와 접시들도 부페처럼 쌓아놓았다.

우린 둥글게 모여 바닥에 앉아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저녁식사 후에는

거실에 복작복작 모여 앉아서

미리 준비하라 공지했던

가족별 장기자랑을 구경했다.


어떤 가족은 세 살배기 막내가

재롱을 피우며 유행가를 불렀고

어떤 가족은 학교 방과 후에서 배운

어설픈 플룻을 불었고

어떤 가족은 아이돌 그룹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우리 가족은 집안의 불을 끄고서

열린 방문 틀에

영화관 자막처럼 넓은 흰 보자기를 고정하고

자막 뒤에서 전등으로 불을 켰다.

그림책 내용으로 미리 만들어 놓은

그림자인형을 움직여

미니 그림자극 공연을 했다.


마당에는 늦은 밤까지

함박눈이 소리 없이 쌓여갔고

우리 집 거실에는 옹기종기 둘러앉은

친구가족들의 웃음소리가

한 번씩 와락 와락 터졌다.

즐겁고 유쾌한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우리 집을 찾아온 이들의 숫자가 많아서

거실에서 이리저리 치이던 릴리가

마당으로 나가있었다.

우리들 웃음소리가 마당으로 뻗어나갈 때마다

릴리는 웡웡웡하면서 짖었다.


한번 짖기 시작한 릴리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잠시도 쉴 틈 없이 짖었다.

평소에 짖을 일없는

세상만사를 도통한 릴리에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날 밤

친구가족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후에

우리가 잠자리에 든 새벽에도

릴리는 쉬지 않고

아주 큰소리로 웡웡으르르 웡웡하면서 짖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크리스마스 날 점심때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마당 앞 동네 길에서

시끌시끌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동네에서 누가 싸우나?

거실 유리창을 내다보다가

무슨 일인지 궁금하여 거실 창문을 열었다.

심술 할망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도오옹네 사람드으을. 

사람이 죽었쏘오.

사람이 죽었단 말이요오.


뭐라고?이게 무슨 소리야?

남편과 나는 신발을 급히 신고 집 앞으로 뛰어갔다.

옆 집 심술 할망과 그 집 노총각 아들이

자기 집 대문 앞에 나와 있었다.

심술 할망이 고개를 뒤로 15도 젖혀

공중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옆 집 삼식이가 밤새 죽어부렀소.

밤새 혼자 술 처먹다 죽어부렀단 말이요.

아이고오. 삼식아.

놈아.

그렇게 술 처먹다간 디진다고

내가 그렇게 말했는디!



꽐라 삼춘이 죽었다.

함박 눈으로 세상이 하얗게 뒤덮인

화이트  크리스마스날이었다.

그는 뒹구는 빈 술병들 사이에 누워

오른팔을 위로 직각으로 접고

두 다리를 벌린 상태로

눈을 허옇게 부릅뜬 채로 자다가 죽었다. 했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

김장 김치를 나눠주려고

심술 할망 노총각 아들이 꽐라 삼춘집으로 갔다.

방문을 열고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기에

또 술 처먹고 자나 보네. 생각하며 흔들었단다.


이미 차갑게 식은 꽐라 삼춘을 보고 화들짝 놀라

자기 집으로 뛰어가 할망에게 말했고,

놀란 할망은 집 앞으로 달려 나와

꽐라 삼춘이 죽었다고

온 동네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앞 집 목장 집 어르신도 나와 있었다.

심술 할망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사람이 밤새 죽어 나가도

모르는 동네가 우리 동네요.

사람들이 그래야 되것쏘?

목장 집 어르신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놈 새끼.

그렇게 술 처먹더니 결국은 이렇게 죽었네.


우리는 마음이 굉장히 묘했다.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전에

그가 죽어버렸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가 죽어가던 그 시간에

우리 집에선 동네를 뒤집어놓듯이

와글와글 웃음이 터졌다.


우리 집에서 흘러나간 웃음소리를 들으며

그가 마지막까지 외롭게

숨을 몰아쉬었을 것을 생각하니

나는 그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삼춘.미안해요.

그날 밤에 삼춘이 그렇게 가신 줄 정말 몰랐어요.


그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내가 다정하게 삼춘이라고 불러준 순간,

굳게 닫힌 마음이 무장해제된 듯

그는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왔다.


찾아오는 이,찾아갈 이도 없는 그는

사람에게 주고받아야 할 사랑을

온기 없는 돌덩이에게서

위로와 행복을 찾아 느꼈다.

생명 없는 차가운 돌을 아끼고 사랑했다.


경찰들이 와서 뒷수습을 하느라

시끄럽고 어지러운 집 앞 골목길에서

몸을 돌려 마당으로 들어섰다.

데크 난간 위에는

그가 선물해 준 돌덩이 선물 기차가 보였다.


그는 외로울 때마다

돌을 선물해 준다며 우릴 찾아와

사람을 마주하며 차를 마시고

기분 좋은 수다를 나누고 싶었던건지도 모른다.


그가 내게 선물해 주었던 멋진 돌덩이들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았다.

꽐라 삼춘이 설명해 줬던 대로

마음을 갖추고 다시 돌들을 들여다보았다.

아기자기 옴팍하게 들어간 현무암들은

하나같이 각각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아주 작은 화분으로 쓰기 적당한 크기의

자연이 빚은 아름다움이 있었다.

정말이네. 정말 예쁘고 특별한 돌들이네.

꽐라 삼춘이 선물해 준 돌들은

여전히 우리 집 마당 한 곳에 잘 있다.


크리스마스날 새벽

밤새 짖던 릴리는

마지막 인사를 하러 우리 집 마당을 들른,

술과 외로움에 쩔은 육신에서 이제 막 해방된,

꽐라 삼춘 영혼을 봤나 보다.

나는 정말 그랬을꺼라 생각한다.

그 생각은 지금까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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