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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6시간전

차린 건 없지만, 부끄러워말고 먹어.

잘라놓은 수박 위에 손님을 올려놓고서 말했다.

잠자리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줄 때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이 외쳤다.

우옷. 반딧불이다!


집 뒤 방대한 십만 평 초원을 놔두고

언제 좁은 우리 집으로 날아 들어왔는지,

반딧불이 한 마리가

깜빡 까아암빡 꽁지에 형광불을 켜고

하얀 옷장문에 붙어 있었다.


책 읽어주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조용히 듣고 있던 분위기는

반딧불이 출현으로 난장판이 되었다.


잠깐. 불 꺼보자.

깍.

오오오오오오오오

우리는 껌껌한 방에 누워서

형광 반딧불이 불빛을 바라봤다.


반딧불이.

반딧불이는 제 짝을 찾느라

꽁지에 불을 켜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유혹의 춤을 춘다는데.

저 반딧불이는 어쩌자고

우리 방으로 기어들어와서

제 짝을 찾냐 이 말이다.

정신 나간 놈 같으니라고.


곤충이라면 종류도 따지지 않고

환장을 하는,

아주 진짜 환장을 하는,

오도리가 그걸 잡고 싶어서 궁뎅이를 들썩일 때

지 누나한테 한 소릴 들었다.


야. 그냥 보기만 해.

누가 니 얼굴 손으로 그렇게 뭉개면 좋냐?

오도리가 생각해 보기에도 그러했는지

하얀 옷장 문에 들러붙어서

꽁지에 형광불빛을 내는 반딧불이를

당장 잡고 싶은 마음을 절제하며

꼴딱 꼴딱 침만 삼키며 가만히 바라봤다.


곤충들이 아뿔싸. 하면서

자기도 의도치 않게 길을 잘못 들어

집안으로 날아들면

우리는 해충만 아니라면

가만히 티슈로 감싸서

창문을 열고 밖으로 보내 준다.


초원 풀 숲에서 지들 맘대로 살다가

거실 불빛에 홀려서 날아와

거실 방충망에 달라붙은 곤충들은,

이 집엔 누가 살고 있나. 궁금해하며

거실에 있는 우리를 구경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곤충들이

한 번씩은 우리 집을 방문한 듯

우리 집에 놀러 온 곤충들은

모양도 제 각각, 종류도 다양했다.


이러한 곤충들이 등장할 때면

오도리는 방충망에서 조심스럽게 떼낸후에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몸통을 잡고

이리 한번 뒤집고 저리 한번 뒤집으며

이놈이 어떤 생명인지 살펴봤다.

그리곤 외쳤다.

엄마. 곤충도감 가꼬아봐봐. 빨리. 빨리!


사실 나는 원래 곤충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다.

그러나. 왜. 그런 말이 있잖나.

엄마는 용감하다고.

나는 곤충이 싫어도

자식이 좋다고 환장하면

나도 환장하는 척이라도 하게 된다.


둘째 놈이 하도 곤충에 환장을 해서

보이는 족족.

엄마. 곤충도감 가꼬아봐봐. 할 때는

책장에서 곤충도감을 뽑아다 냉큼 갖다 바치고

오도리와 머리통을 둘이 맞대고

잡힌 곤충 놈들을 요래조래 돌려봐 가며

이름을 찾아봤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나도 어느새 새로운 곤충이 궁금해지더라.

(넌 또. 뭐라 부르는 생명인 거시냐.)

이런 걸 두고

강제적 호기심의 발현이라고 한다.

그런 말이 어딨 냐고?

흥. 내 맘이다.

내 맘대로 붙인 명칭이다.


우리 집엘 놀러 온 곤충들은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는 녀석들보다

모르는 생명들이 더 많았다.


오도리는 그럴 때마다

책장에 꽂힌 손 때가 묻어 너덜너덜해진

제주 곤충도감 책을 펴고서

방문한 곤충과 가장 똑같은 곤충 사진을 찾았다.


곤충도감 책이 여럿 있지만

우리가 늘 들여다보며

곤충들 이름을 쉽게 찾고 확인할 수 있었던 책은

사진작가 서재철선생이 쓴

제주도 곤충이라는 책이었다.


제주 사는 작가님이 초원으로 오름으로

직접 다니며 찍은 사진이라 사진이 생생했다.

제주 환경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곤충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우리 집을 방문한 새로운 곤충을 앉혀놓고

책을 펼쳐서 찾아보면,

백이면 백

거의 모든 종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곤충들도 자꾸 보니

얘네들도 묘한 매력이 있었다.

전 세계 공통 혐오대상 바퀴벌레가 아닌 이상

곤충들은 상당히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빤짝빤짝 거리는 딱지날개하며

길고 짧은 희한하게 생긴 더듬이들.

각기 다른 몸통 색깔들은 또 어떻고!

그러다 재수가 없는 날엔

노린재 같은 놈들을 만지다가

노린재의 고약한 냄새 때문에

뛟! 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여름이 다가오면

이제 종류별로 하늘소들이 날아들었다.

알락하늘소도 오고

뽕나무하늘소도 오고

재수가 좋으면

덩치가 대빵 큰 장수하늘소도 오고

집게가 멋진 사슴벌레도 왔다.


가끔씩 대벌레도 왔는데

얘네를 볼 때마다

우리는 항상 나뭇 가진 줄 알았다.

열 번이면 열 번. 매번 그랬다.

웬 잔가지가 집안에 떨어져 있지? 하면서

무심코 덥석 잡았다간

꼼지락거리는 놈들 덕분에 항상 놀랐다.


대벌레 뒤를 이어 여름이 갈 때쯤엔

그날 밤처럼

반딧불이들이 날아들었다.

보통은,

얘네가 집으로 들어온 줄도 모르고 있다가

자려고 방에 불을 끄면 그제야

벽이나 장롱에 붙어서

꽁지에 불 밝히고 형광빛을 발하는 녀석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방문한 곤충의 이름과 생김새를 확인하면

다음 순서는,

그 곤충도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이므로

오도리는 곤충에게 뭐라도 대접할 양으로

주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수박이나 사과 같은 달콤한 즙이 있는

과일을 가져와 그 위에 손님을 올려놨다.


차린 건 없지만

부끄러워말고 먹어.


동네 마실 오듯이

그냥 한번 우리 집엘 놀러 왔다가

오도리에게 맥없이 잡혀 화가 난 곤충은

수박이나 사과 위에서 욕을 내뱉었다.

퉤!

안 먹어. A C!

당장 나를 풀어줘.


녀석들은 달콤한 즙이 흐르는

수박 위에 앉아서 수박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수박에 주둥이 끝도 안 댔다.


곤충도감을 뒤적여

그날 방문한 곤충의 신상파악이 끝나고

먹든 안 먹든. 어쨌든.

곤충 손님에게 손님 대접도 했으니

오도리는 창문을 열고

풀숲에 휙! 던져 놓아 줬다.


잘 가아. 푹신한 풀 속에서 잘 살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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