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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Dec 18. 2024

산책길에서 만난 소들과 노는 법은 이렇다.

집으로 돌아오다가

드라이브 삼아 초원 샛길로 들어섰다.

들이 언덕바지 위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아이들을 실은 내 차가

노랫가락소리 왕왕대며 시끄럽게 등장하

고개 숙이고 풀을 뜯던 소들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됐다.

소들이 모여있는 널따란 울타리 앞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렸다.


호기심 많은 대장 소가 거만한 자세로

육중한 몸을 흔들며 걸어왔다.

그 나머지 무리들도

앞장선 대장 행동을 주시하며

몇 발자국 뒤에서 대장 소를 따르면서

슬금슬금 다가왔다.


대장 소는

왕방울 만한 눈을 뙤록 뙤록 굴리며

울타리 앞에 선 우리탐색했다.


나는 한 손은 카메라를 들고

나머지 한 손을 녀석에게 내밀었다.

대장 소는 고개를 십오 도 정도 뒤로 젖히고

왕사탕 같은 눈알에 흰자를 드러내며

새까만 눈동자로 나를 내리 깔아보며

콧구멍을 최대한 벌름벌름 거려

내가 내민 주먹 냄새를 맡았다.


킁! 킁!

흐으으음. 킁! 킁!


내 냄새를 맡던 녀석은 입을 살짝 벌리고

양쪽 입 꼬리를 위로 잡아당기며

대문짝만 한 가지런한 이빨을 드러낸 

콧구멍 평수를 넓히면서 씨이이웃었다.

소가 웃었다.


냄새를 맡으며 탐색을 마친 대장 소는

내가 내민 손을

혀로 스윽스윽 핥다가

먹을게 못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흥! 콧김을 길게 한번 내뿜었다.

뒤돌아 서서 나머지 무리들에게

야. 저건 먹을게 못된다.

별거 아니다. 흝어져! 하듯이

미련 없이 언덕 위로 사라졌다.


대장 소 뒤에 무리 지어 서서

대장이 하는 짓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고 있던

수백 개 소눈깔들과 마주 보다가

나는 순진한 소 표정들이 재미있어

혼자 낄낄거렸다.


 뒤에서는 우리 큰애가

내가 하는 짓을 지켜보다가

내가 대장 소가 했던 것처럼

나머지 소 무리들에게 다가가

고개를 십오 도 정도 뒤로 젖힌 후에

흥! 흥! 콧김을 보냈다.


소들아.

나야.

나 이런 사람이야.


그러자 소들은

우리 큰 애가 내뿜는 콧김이 못 마땅했던지

웃긴 애 다 봤네.라는듯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뒤도 안 돌아보고

대장소를 따라 언덕으로 냉큼 올라가 버렸다.


가끔 우리는 산책을 나갔다가

집 근처 방대한 초원 위에서

풀을 뜯느라 정신없는

들에게 장난을 걸 때가 많다.


언젠가는

황소 두 놈이 씨끈덕 씨끈덕 대며

두 뿔을 부딪히며 싸우길래

울타리 가까이 다가가 소싸움을 구경했다.


내가 사진을 찍으러 다가가

녀석들은 머리를 탕. 한번 부딪힌 다음

머릴 맞대고 밀어내고 밀리면서

씩씩거리며 싸웠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

기를 쓰고 싸우고 있던 두 놈을 향해

있는 힘껏 큰 소리로 소처럼 울었다.


움머어어

옴마아아아

엄마아아아아아

오옴마아니반메에훔


머리를 다시 한번 뙁! 맞부딪힌 두 놈은 씩씩거리다가

내가 내는 소울음 소리를 듣더니

맞댄 머리를 떼낸 후 나를 빤히 쳐다봤다.


싸우던 놈들은 한 놈씩 우리 주변으로 다가와

고개를 쳐들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뭐야?

방금. 너 뭐라했어!


소들의 호기심을 해결해 주기 위해

나는 다시 한번 더 크게

소보다도 뱃심 좋은 통소리를 내며 울었다.


옴마냐아아는 뭐고

엄마아아아는 또 뭐래?

오오옴마아니반메후우움이라니!

여엄병.미친!

소들은 지들보다 더 크게 울고 있는 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분명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두 놈이 지은 표정을 보며

너무 재밌어서 미친년처럼 웃었다.


우리에게 다가온 두 놈에게

남편은 먹고 있던 조각을 손바닥에 얹어

놈들 앞에 손을 쭉 내밀었다.


이리 와. 이리 와!

싸우느라 힘 빼지 말고

이거나 먹어봐!


녀석들이 큰 눈을 벅이면서 다가왔다.

손바닥에 코를 가져다 대고

쿰쿰 거리며 냄새를 맡다가 구미가 당겼는지

기다랗고 끈적한 혀를 한번 휘둘러

귤을 집어삼켰다.


그러자

녀석들 주변에 흩어져 있던 소들이

뭔데? 뭔데? 하는 표정을 지으며

한 마리씩 모여들었고

운 좋은 몇 녀석들 조각을 몇 개 얻어먹었다.


남편과 내 앞에 모인 소들이

뭔가 얻어먹는 걸 봤는지

나머지 소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소들이 귤이 하사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남편은 주머니 속 나머지 귤들까지 꺼내서

한 조각 한 조각 떼어주었다.


녀석들은 큰 머리를 서로 들이밀면서

바닥에 떨어진 귤을 주워물고는

아래턱을 좌우로 비벼 맷돌 돌리듯

귤을 갈아 씹어 삼켰다.


귤껍질까지 다 먹어치운 후에

녀석들은 입맛을 다시며

우리를 다시 올려다보았으나

손에 있던 귤이 바닥난 고로

우리 앞에 모인 수만 마리 소들을 향해

남편과 나는 손을 탁탁 털어 보이며

이젠 없다! 했다.


앞서 싸움을 하다가

  조각 얻어먹은 소들이

좀 전에 싸우던 일은 잊어버렸는지

등을 돌려 돌아서서

사이좋게 어깨를 나란히 초원으로 멀어질 ,

저 멀리 초원에 떨어져 있던 소들이

무슨일인가하며

그제야 우리를 향해 우당우당 달려왔.


그들이 부랴부랴 달려와 우리 앞에 도착했을 땐

이미 상황은 끝났고

들은 상당히 실망한 표정으로

초원 쪽으로 다시 흩어졌다.


귤  몇 개라도 먹은 소들은

 맛이 아쉬웠던지

가다 뒤돌아보고

가다 뒤돌아보고 했고

뒤늦게 한 입도 못 얻어먹은 소들도

귤 먹을 찬스를 못 잡은 게 아쉬웠는지

가다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지들 갈길로 갔다.


소들이 흩어지자 남편이 내게 말했다.

소들 놀리면서 낄낄대는 내 마눌.

이런 짓 하는 걸 보면

차암 할 일없는 사람이다.


아.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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