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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완결) 내 콧구멍에선 용가리처럼 김이 품어졌다.

그가 창고에서 외쳤다. 저기이여어어!

by 시안

아이들 데리고 나간 저녁 산책길에선

손이 쨍하고 코끝이 찬공기로 매콤하며

입에선 입김이 솔솔 나왔다.
그렇게 산책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는데
집안공기가 냉랭했다.


읭?
뭔가 이상했다.
화목 보일러 둔 창고로 나가보니
보일러 고장인 모양이었다.
전원불도 안 들어왔다.

보일러 전원이 안 켜지면

산더미 같은 나무도 아아아아아무 쓸모가 없다.


에잇. 빌어먹을!

고장이 나려면 날 좋고 따뜻한 날 고장 날 것이지.

보일러는 꼬옥 날씨가 추운 날에만 고장이 난다.

꼭 그런다. 꼭!


우리는 벌벌 떨면서

코는 버얼게지고 손은 동태처럼 얼은 채
이불을 두 개씩 덮고 각자 침대에 누었다.

나는 잠이 들기 전에 생각했다.


날이 밝자마자 보일러 기사 아저씨를 불러야지.

보일러 기사 아저씨가

제에에발. 당장. 냉큼!

아침에 와 주셔야 할 텐데.

나는 당장 기사님이 올 수 있을까 걱정했다.



사람만 아픈 게 아니라 집도 나이가 들면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다.

수도가 고장 나거나.

갑자기 전기가 나가거나.

하수구가 막히거나.

보일러가 고장 나거나. 하는 거다.


집수리 기술을 1도 모르는 나는

집에 무언가가 고장이 날 때마다,

처분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날 구원해 줄 각 분야 수리 기사님을

언제나 오매불망 목을 빼고 기다렸다.


그들이 당장

우리 집에 나타나는 기적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겨우 연락이 닿은

수도, 전기, 하수구, 보일러

기타 등등 수리전문 기사님들은

항상 첫마디는 그렇게 말했다.


지금 하영 바빠부난. 예

(지금은 아주 바쁘니)

못 가.마씸.

(못 갑니다)

딴데 전화해봅써!

(다른데 전화해보시겠어요?)


갑 중의 갑.

시골집수리 기사님들이

당장 내일 방문할 수 없다며 읊는 멘트는

전문 분야 상관없이 똑같았다.


그들이 말하는,

그들이 당장 우리 집을 방문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러했다.


첫째.

시골집수리 기사님들은

일단 무조건 화가 나 있고,

일단 무조건 못 온다. 했다.

그들은 늘 화가 나있는 목소리였다.


왜 화가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화가 나 있었고

어쨌든 못 온다고 했다.

집이 중산간 시골 마을 귀탱이에 있다고

우리 집 위치를 설명하면

그들은 더더욱 못 간다고 화를 냈다.


전화기 너머로 그러한,

화 반, 공기 반, 의 분위기를 느낀 나는

공손하게 두 손으로 전화기를 쥐고서

최대한 불쌍하게 굽실 굽실 부탁을 했다.


기사니이이이임.

꼭... 시간 좀.. 어트케 안되까요?

이렇게 부탁하다가

씨알도 안 먹히면 작전을 바꿨다.

나중에는 삼추우운.

저 좀 살려주십씨요오.하면서 거의 울었다.


둘째.

그들이 올 수 있다 하더라도

공사 날짜를 잡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다.

그들은 언제나 바쁘다.

그들은 항상!

대형 공사를 맡고 있어서

도오저히 시간을 낼수가 없다고 했다.


제주 대형 공사일은 우리 동네 집수리 기사님들이

싹 다아아아. 맡고 있다.

단 한분도 빠짐없다.

전부 다아아 대형 공사를 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골집수리 따윈,

수리하시러 올 정신도 시간도 없다는거다.

그렇다는 거다.


......쩝.


중산간 시골집에 사는 나는,

365일 대형 공사를 맡아

돈만 벌기에도 바쁜 그들의 입에서

시골 우리 집

수도.하수구.전기.보일러 수리 날짜가 정해지기만을 기다렸다.


셋째.

그렇게 겨우 공사날을 잡아 놓더라도

그들은 언제고

시골집수리,그런 약속쯤이야

맘 내키는대로 빵구를 낼 수도 있는 것이었다.

시골집수리 약속 빵꾸는 별일도 아니었다.


죽어라 사정사정해서 겨우 날을 잡아놓고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으면

공사를 해주기로 약속한 날,

전화 한 통 없이 안.나.타.났.다.


안 나타났고

과연! 안 나타날 때가 있었고

역시나! 또! 안 나타나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눈발 날리는 한 겨울인데,

보일러 기사님도 피부가 있으니 느끼겠지.


당신이 당장 오지못해서

우리집 보일러가 돌아가지 않으면

제주방송 8시 뉴스에 나올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모월 모일 ㅇㅇ리 ㅇㅇ번지에서

보일러 고장으로 인해

어쩌고 저쩌고가 되버린 ㅇ모씨네 소식이.


날이 밝았다.

날이 밝으니 밤새 온기 없던 집안은
북극에 온 거처럼 휑했고

거실에 있는데도 식구들 입에서는

용가리 주둥이에서 김 나오듯

양 콧구녕에서 김이 품어져 나왔다.

밤새 얼어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증거지 뭐겠는가.


다행히도 보일러 기사님은
출근하자마자 시골길 달려서
시골집에서 얼어 죽기 일보직전인
우리 집을 순번 일등!으로 방문했다.

(당신을 찬양합니다. 복 받으소서.)


전날 내 걱정과 달리

기사님은 당장, 냉큼, 바삐 달려

우리 집을 방문해 주니 마음은 놓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수리비가 많이 나올까 걱정했다.

보일러 기계 결함이겠지?

수리비가 많이 나오믄 어쩐다?


드디어.

기사님이 집 뒤 보일러 창고를 향해 걸었다.

오른손으로 파란색 묵직한 연장통을 들고 가서

보일러를 살폈다.

오분 사십육초가 흐른 후에

그는 보일러 창고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쳤다.



저기여어어어어.





네애에.





이거어어요오.




네에.


























눼웨에에에에?!!! ( @.,@)



..는


전원코...코.


.....데


ㅈ..전원 코드..가


..요?


...뽑혔.다..고라.



호오올.리.쉣!



하.

렇다.


전날 릴리가
보일러 창고에 들어와서
쥐소리를 들었는지,
쥐를 잡는다고 창고에서

구석구석 이리저리 쿵탕 쿵탕 날 뛰더니

그 난리통에 보일러 전원 플러그가 빠졌었나 보다.


어젯밤 전원 코드도 확인했던 바

분명 멀쩡했었는데!
여러개로 연결된 플러그 중 하나가 빠졌던들

눈 뜬 장님이나 다름없는 내가 뭔들 알겠나.


우린 릴리가 빼놓은 보일러 전원코드 때문에

멀쩡한 보일러를 고장인 줄만 알고

밤새 달달달달 떨었던 거다.


가지 가지 한다아아.



릴리를 째려봤다. ( ㅡ.,ㅡ)++++
살기 띈 내 숨소릴 느꼈는지

릴리는 내 시선을 피하며

모른 척, 자기 죄가 아닌 척

언덕너머 먼 초원을 실눈을 뜨며 쳐다봤다.


릴리!

너. Eeee C!

내 눈 똑바로 봐바! P( -..-)^++++


날개만 없다 뿐이지 천사처럼 착한 기사님은

어이없는 상황을 보고 해맑게 웃더니
출장비도 안 받고 그냥 갔다.

아무렴! 저 양반은 천사네.천사!



뽑힌 전원 코드를 다시 꽂아놓으니

보일러 기계는 처음엔 워밍업하느라

으우웨엥 퇄퇄퇄하더니

브으우엥 우웨웽.소리를 내며 잘만 돌아갔다.

발바닥이 노곤 노곤 따뜻해졌고

이제야

아. 살겠네. 소리가 절로 났다.


보일러가 잘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한 후에

장작을 가져다가 화목 보일러에 넣고

집안에 있는,

밤새 얼어죽을 뻔한 식구들을

이번에는 장작을 때서 쪄 죽일듯이!

내리 몇 시간동안 불을 지폈다.

활활 화르륵 활활 불길이 세게 일었다.


장작을 꾸역꾸역 쑤셔넣어놓고 방안으로 들어오니

바닥이 좔좔좔좔 끓었다.

거실 바닥에 이불을 펴고 가족이 모두 누워서

이리 누워 등을 지지고

저리 돌아누워 옆구리를 지졌다.


아이고 좋다.

아이고 좋다.하면서

고등어를 굽는 후라이판처럼

우리 등을 굽고 있는

절절절절 끓는 방바닥을 사모하며 외쳤다.


..시!

진정한 시골집 방바닥인 거시지!

내가 선창하니


남편이 후창했다.

그.라.지!

그것인 거시지!




[제주 중산간 촌 마을에서 삽니다]연재를 마치며.


세번째 브런치

[제주 중산간 촌 마을에서 삽니다.]는

제목 그대로 제주 중산간 촌에서 시골 아줌마가

사는 이야기였다.


흔히 제주가 배경이 되면

관광지나 볼거리 먹거리 소개글들이 많은데

나는 이 연재에서는 그러한 소재들은

일부러 택하지 않았다.


나는 이 브런치에서

진짜 제주 촌마을에서

육지껏이 사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었다.


우리 동네는 시골에 새로 생긴

현대식 타운하우스가 아니라

아주 옛날부터 이 자리에 있던 시골동네라

집들도 동네도 다 오래된 집이요 동네다.

그러다보니

제주 토박이 내 친구들과 이웃이 되어 산다.


육지껏인 나는

정 많은 토박이 친구들의 배려덕분에

20년동안 한자리에서 잘 살고 있다.


90명이 쳐들어온 집들이.

대왕 지네 피습사건.

천남성 독초 사건.

해파리 사건.

동네 건달 노루들 이야기와

시골학교 순수한 아이들 에피소드 등,

육지사람들에게 생소할만한

제주살이 특별한 에피소드를 써보고 싶었다.


브런치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다.

그러한 이야기들은

기회가 되면 또 다른 모양의 브런치로

제주 시골사는 이야기가 엮어지리라 생각한다.


이 브런치에 있는 이야기들은

앞의 두 브런치

[너희도 다 생각이 있구나]와

[그사람의 잔상]처럼

다음 비공개 카페와 비공개 카카오스토리에

13년동안 일기처럼 스케치하여 모아놓은것들을

요즘 분위기에 맞게 빗질을 했다.


계절이 겨울이라

여름 이야기를 담지 못한게 아쉬운데

그것도 언젠가 다음 브런치에서

여름을 지내는 이야기를 소개할수도 있을거다.


이 연재를 쓰는 동안 나는 꽤 즐거웠다.

글을 쓰면서도 당시 상황이 생각이 나서

혼자 실없이 킥킥댔다.

(이를테면. 휘발유 맞지에.와 생채 사건이 그렇다)


글 쓰는 마음이 가볍고 편안했다.

연재 한 회 한 회마다

일부러 글을 찾아 읽어주신 분들과

매 글마다 마음을 담아

라이크와 댓글로 생각과 마음을 나눈

내 사랑스러운 글 벗님들 덕분이다.


제주 중산간 촌 마을에서,

수만마리 소들과

수천마리 노루들과

까마귀들과 까치들과

때로는 싸우면서도 다급하면 합심하여 짖는

시골 동네 개들과

칠렐레 팔렐레 촉수를 흔들며

여전히 바다속을 돌아댕기는 해파리들과

내 친구들과 이웃들을 대신하여,


2024.12.23. 23시 50분.

지금 이시간

제주 중산간 초원위를

수직이 아니라 수평으로!

날아다니는 눈발에 실어

내 사랑과 안부를 특송으로 전한다.


눈발에 얹혀 수평으로 날아간다.

피유웅.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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