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줄이기의 첫 단계
막상 내 소비를 점검하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가계부를 쓴 것은 대학 시절이 마지막이었고 생활비는 대체로 일정했다. 할부를 이용할 때만 카드값이 조금 더 나올 뿐, 청구액은 크게 변동이 없었다. 신용카드 두 장, 체크카드 한 장. 예금은 없고 적금은 모로코와 영국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크게 과소비가 없지만 그렇다고 저축액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소비를 파악할 수 있을까? 답은 물건이었다. 이사를 한 직후라 규모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사 들인 물건을 보면 소비를 알 수 있을 테니까.
찬찬히 둘러보니 집 안에서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품목은 옷이었다.
물건의 부피는 소비양과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 옷부터 돌아보자.
생각해 보니 단 한 번도 옷을 얼마큼 사는지, 매달 어느 정도 돈을 쓰는지 알고자 한 적이 없었다. 철없는 새내기 시절 백화점을 들락거리다 카드를 한 번 자른 후에는 백화점 쇼핑을 자제해 왔다. 비싼 옷을 사진 않지만 계절별로 옷을 사는 건 당연했고 계획 소비보다는 충동 소비가 대부분이었다. 지나가다가 예뻐서, 기분이 꿀꿀해서 쇼핑이나 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질러 왔다.
처음부터 모든 지출의 가계부를 쓰며 스스로를 압박하는 건 무리이겠지. 나는 나를 잘 안다. 극단적인 목표 설정은 늘 작심삼일로 끝나고 말 거다.
1년 옷을 안 사는 것보다 1년의 소비를 파악해 스스로 깨우치는 편이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1년만 옷에 한해 기록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돈을 가장 많이 쓰는 분야일 테니. 형식도 간단한 게 좋을 것 같아 가계부 대신 자주 쓰는 메모 앱에 매달 산 옷과 가격만 적었다. 이 정도로 가볍게 시작해 보자.
연말에 점검해 보니 총 40개 아이템에 177만 4140원을 썼다. 옷, 가방, 구두, 주얼리 등을 하나씩 사다 보니 이런 개수가 나왔다. 월평균 3.3개만 사도 40이란 수가 나오는 것에 놀랐다.
여기에서 한 발 나아가 후회의 수치를 계산해 보기로 했다.'잘한 소비'를 헤아려 보았다. 방법은 간단하다. 산 목록을 죽 훑어보며 '이 아이템은 다시 봐도 사겠다.'라는 마음이 드는 것을 세었다. 단 12개. 개수 대비 30%의 만족도가 나왔다. 12개 품목을 소비 금액으로 환산하면 전체 구매액의 24.1퍼센트였다. 40개의 물건 중 28개, 107만 4090원이 안 써도 될 돈이었다. 횟수도 금액도 과잉 소비였다.
계획 없이 사들인 옷과 액세서리는 명확한 지표로 돌아왔다. 이 결과를 가지고 목표를 세웠다. 다음 해에는 40개에서 반으로 줄여 '20개 이하로 사기'로. 70%가 만족하지 못한 소비였으니 50% 줄이기는 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는 담대했지만 쉽진 않았다. 20개가 언뜻 많아 보여도 한 달에 2개만 사도 24개, 목표치를 넘어버린다.
그렇지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순 없었다. 무언가를 살 때 죄책감 없이 사 온 인생에서 처음으로 상한 개수를 정하니 탁 하고 자물쇠가 걸린 느낌이었다.
1년 후 결과는 어땠을까?
19개! 잘 산 소비의 비율을 따져보니 63.1%. 작년 30%에서 두 배 이상 늘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뿌듯함이 차 올랐다. 작년에는 후회한 소비의 비율이 70%였는데 올해는 만족한 소비의 비율이 이에 근접했다.
옷을 구매한 달과 구매하지 않은 달도 점검했다. 아무 옷도 사지 않은 달이 작년 두 달에서 여섯 달로 3배 늘었다. 1년 중 6개월은 옷 쇼핑을 하나도 하지 않고 살 수 있구나. 기록이 보여주었다.
이 성공을 동력 삼아 다음 해에도 또 반으로 줄이는 도전을 했다. 연간 10개, 소비 만족도는 90% 이상으로 잡았다. 한 달에 하나도 사지 않는 도전, 성취감을 다시 느끼고 싶어 부단히 노력했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연간 옷 구매 개수
40개 -> 19개 -> 9개
* 전체 구매 만족도
30% -> 63% -> 89%
* 소비하지 않은 기간
2개월 -> 6개월 -> 8개월
자신감이 붙었다. 구매의 유혹을 이겨내고 절제했을 때 은은히 퍼지는 자존감이 따라왔다. 옷장을 찬찬히 둘러보며 옷의 구성을 면밀히 살피게 되었고 구매욕도 옅어졌다. 다음 해에는 구입한 모든 제품에 만족했다. 후회하는 옷이 없어졌고 지출 비용은 1/4로 줄어들었다.
가장 많이 사는 품목을 정해 축소 소비에 도전해 본 경험은 좋은 스타트였다. 모든 물건에 적용했다면 목표가 버거워서 몇 달 못 가고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무리한 목표 설정은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도, 요요 현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자신이 도전하고 싶은 품목부터 줄여가 보자. 내게는 옷이 도전이었지만 저마다 1순위가 다를 것이다. 우선 한 품목부터 소비를 분석해 보고 줄여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