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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Aug 03. 2021

스카치 위스키, 3년 이상 숙성하게 된 진짜 이유

술 싫어하던 총리, 의도와 달리 위스키를 발전시키다.


한 시대를 풍미한 한국의 정통 스카치 위스키


80년대 대한민국 고도 성장기에 혜성처럼 등장한 위스키가 있다. 80, 90년 대 어른들이 편의점 파라솔에서 마시던 위스키. 속을 챙긴다고 우유와 함께 마신 썸싱 스페셜(Somethig Special), 패스포트(Passport) 등이라는 제품이다.


이 위스키들에 붙는 수식어가 있었다. 바로 정통 스카치 위스키라는 것. 그렇다면 과연 정통이 아닌 위스키는 뭐였을까? 그것은 바로 '유사 위스키', 또는 '대중 양주'라고 불린 소주에 위스키 원액을 일부 넣은 제품들이었다. 당시의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백화양조의 '베리나인 골드', 롯데의 '조우커', 진로의 '길벗' 등이 있었다. 이렇게 유사 위스키가 많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위스키 원액 비율이 20%가 넘어가면 318%라는 무시무시한 세금(주세+교육세+부가세 등)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8년 12월 9일 매일경제신문 광고. 출처 매일경제신문. 썸싱 스페셜은 당시로는 특급 위스키지만 지금으로는 숙성년도 10년도 안된 저가 위스키에 속한다.


그래서 주류회사들은 의도적으로 위스키 20% 미만으로 낮출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캡틴큐(원제 품명 캪틴큐)는 아예 위스키도 안 들어가니 유사 위스키 축에도 끼지 못했다. 위스키의 원조라고 불리는 '도라지 위스키' 역시 아예 위스키 원액도 없는 색소와 인공향으로 만든 가품 위스키였다. 한마디로 당시 한국의 위스키 시장은 위스키도 아닌 술이 위스키로 팔리는 상황이었다.


정통 스카치위스키는 뭐니?

이러한 상황에서 정통 스카치 위스키가 들어왔다고 하니 소비자들이 환호를 할 수밖에 없었다. 또 1990년 위스키 주세가 200%에서 150%로 낮아진 것도 큰 몫을 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통 스카치 위스키에도 기준이 있었다는 것. 스코틀랜드에서 만들어진 위스키여야 하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 현지에서 3년 이상 숙성을 해야만 해당 기준에 부합될 수 있었다. 덕분에 스카치 위스키는 오랜 세월의 맛을 가진 럭셔리 주류로 군림하며, 12년, 15년, 18년, 25년, 30년, 최근에는 60년 숙성까지 다양한 제품이 등장, 소비자들에게 옵션의 폭을 넓히고 있으며, 이러한 위스키 숙성년도의 표기는 위스키 표식의 시그니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스카치 위스키는 왜 3년 이상 숙성을 기준으로 잡았나?

그렇다면, 왜 스카치 위스키는 3년 숙성 이상을 기준으로 잡았을까? 여기에는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이 하나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술을 싫어했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라는 총리(당시 재무대신) 덕분이었다는 것.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는 영국을 복지국가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지만, 술만큼은 끔찍하게 싫어했던 인물이었다. 이미 었을 때부터 금주법에 찬성했던 그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 잠수함보다 위스키가 더 국민에게 해를 끼친다며, 모든 위스키는 제조 후 3년 간은 팔지 말라는 법률을 제정했다. 한마디로 3년 간은 묵혀두라는 것.


위스키는 노동자의 생산성을 나쁘게 한다

그의 명분은 간단했다. 술을 못 마시게 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주말에 술을 마시면 차주의 노동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었다. 금주를 통해 노동 생산성의 효율을 높이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고, 길게 보면 술이란 그 자체를 영원히 없애고 싶다는 그의 열망도 볼 수 있다.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2004년 BBC 조사에 따르면 윈스턴 처칠에 이어 영국 역대 수상 2위의 인기를 가지고 있다. 출처 영문판 위키피디아
위스키의 성장을 도운 반 위스키법

아이너리하게도 이러한 반 위스키법은 오히려 위스키 산업의 성장을 돕고 만다. 3년 동안 오크통 속에 묵혀있으면서, 모든 스카치 위스키의 품질이 상향평준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숙성을 통해 수분과 알코올이 회합을 하며 맛이 부드러워졌고, 알코올이 증발되면서 본연의 맛이 응축, 진하고 부드러운 숙성 위스키가 제대로 탄생하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올드 위스키라고 불리며 일부 숙성하는 제품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자금 회전을 위해 몇 개월 또는 증류 후 바로 오크통에 넣어져 판매되기 십상이었다. 당연히 맛은 거칠었고, 향미는 부족했다. 그래서 다양한 허브를 넣어 마시곤 했다. 하지만 3년 저장이라는 이 법률 하나로 스코틀랜드의 모든 위스키는 여타 유럽의 보드카 등 여타 증류주 등과 다른 특급 프리미엄 라인을 구축할 수 있는 인프라가 생긴 것이었다.

고난의 세월이 지나 영국 최고의 효자 상품으로

물론 당시의 위스키 증류소는 고난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3년간 팔 수 없음은 물론, 1차 세계대전, 그리고 미국의 금주법 시행 등으로 판매처 조차 사라지고 있었다. 이러한 힘든 나날을 보낸 스카치 위스키에게 찬스가 하나 찾아온다. 바로 제 2차 세계대전. 유럽 전장을 찾은 수많은 미군에게 3년 이상 숙성한 고급 스카치 위스키를 맛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기존과 다른 부드러움과 터치감에 미군들은 환호했고, 전쟁에서 승리 후, 미국 내 스카치 위스키의 판매량은 최고치를 기록해 나간다. 살아남는 것 자체가 성공의 길로 이어진 것이며, 위스키를 없애기 위한 반 위스키법이 오히려 증흥시킨 흥미로운 사례였다. 와인을 증류한 프랑스의 코냑 등도 V.O(Very Old) V.S.O.P(Very Superior Old Pale) X.O(Extra Old) 등 숙성 표시를 하고 있지만 정식으로 모든 코냑에 적용된 것은 1983년이다. 의도는 다르지만, 정부가 법으로 제정한 것은 위스키가 거의 70년이 빠른 셈이다.


결국 스카치 위스키는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덕(?)에 최고급 증류주로 세계 시장에서 인정을 받으며, 전 세계 200여 국에 수출, 약 6조 원의 수출 규모를 가진 영국 최고의 문화 상품이 되었다.


이쯤 되면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는 위스키를 좋아하지 않았나'라는 3류 음모론(?)도 생각해 본다. 재무부 장관 출신이었던 만큼 숫자에 밝았고, 통찰력이 어마어마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까지도 승리로 이끈 인물이기 문이다. 즉, 위스키의 미래를 보고 스스로 엑스맨을 자청했다는 것. 상상만으로도 술의 세계관이 넓어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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