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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Jun 27. 2021

술들의 전쟁.싱글몰트위스키VS블렌디드위스키

파란만장했던 위스키의 역사두 번째이야기

위스키의 운명을 가른 판결


한국인에게 위스키 하면 어떤 브랜드가 떠오를까? 아마도 시바스 리갈, 조니 워커, 발렌타인, 로열 살루트 등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90년대 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해외에 나가면 꼭 사 오던 제품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위스키 들의 특징이 있는데, 바로 블렌디드 위스키(Blended Whisky)라는 것이다. 여기서 블렌디드란 섞였다는 뜻.


다양한 위스키 원액을 섞어서 만들었다는 의미로 밀, 옥수수, 감자 등 다양한 곡물을 원료로 한 그레인 위스키(Grain Whisky)와 맥아로 만든 몰트 위스키(Malt Whisky)를 배합하여 맛을 낸 제품이다.


그리고 이 블렌디드 위스키는 세계 위스키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불린다. 소비자 입장에서 블렌디드 위스키와 대척점에 있는 것이 싱글 몰트 위스키(Single Malt Whisky). 다양한 곡물의 위스키 원액으로 블렌딩하는 블렌디드 위스키와 달리, 싱글 몰트는 한 곳의 증류소(싱글)에서 오직 몰트(맥아) 하나로만 만들기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존재하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블렌디드 위스키는 300년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오직 몰트로 한 곳의 증류소에서 만드는 싱글 몰트 위스키였다. 싱글 몰트 위스키가 당연하다 보니 싱글 몰트 위스키라는 표현도 없었다. 이러한 위스키 시장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세금 때문. 1725년. 영국의 조지 드러먼드(George Drummond)라는 하원 의원이 위스키의 주요 원료인 맥아에 세금을 본격적으로 붙이기 시작했다. 이에 스코틀랜드 위스키 제조자들은 파업을 진행하거나 군대를 몰아내고 건물을 파괴하는 등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몰트가 아닌 다른 곡물, 밀, 옥수수, 감자 등을 사용, 밀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공식적인 비(非) 싱글몰트 위스키, 즉 그레인 위스키의 시작이다. 여기에 1823년 주세법을 개정, 1824년에 공인 인증 증류소 제1호 더 글렌리벳(The Glenlivet) 이 등장하며, 스코틀랜드의 밀주 시대는 막을 내린다. 이 100년간을 일리싯 데이(Illicit Days)라고 부른다.


19세기의 밀조주 시대의 이미지를 살려 재현한 더 글렌리벳의 일리싯 스틸. 일리싯 스틸은 말 그대로 불법 증류주라는 의미다.


위스키를 오크통에 숙성한 계기도 결국 밀주 문화

위스키를 오크통에 숙성하게 된 계기도 이 밀주 문화에서 왔다고 한다. 밀조주 시대에 인적이 드문 산속에 들어가 석탄이 없으니 땅속의 피트(이탄)를 사용해 불을 때며, 근처에서 구할 수 있었던 오크통에 밀조된 위스키를 넣고 세금 징수인에게 걸리지 않게끔 숨겨놨었다. 이것이 투명했던 위스키를 호박색으로 바꿔주고, 맛과 향도 부드러워졌다는 것이다.


위스키를 몰래 만드는 모습. 왼쪽이 증류기이며, 세무조사관이 오는지 바깥을 살펴보는 모습이다.


이후 아일랜드 출신의 전 세금 징수관 이니아스 코페이(Aeneas Coffey)가 특허를 출현한 연속식 증류기(Patent still)를 통해 위스키는 대량생산 시스템을 갖추게 되고, 맥아뿐만이 아닌 옥수수, 밀 등을 과감히 사용한 저렴한 그레인 위스키가 시장을 타격하기 시작했다. 맛과 향이 풍부한 싱글몰트 위스키에 비해 저렴한 가격의 그레인 위스키는 잉글랜드와 가까운 지역인 로랜드 지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시장을 넓히고 있었다. 이때 고가의 몰트 위스키와 저가의 그레인 위스키의 생산자들이 서로 대립하게 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각각의 장점을 살려보자는 의미로 태어난 블렌디드 위스키

이때, 이 둘의 장점만 살려보자라고 하여 만든 것이 바로 블렌디드 위스키. 저렴한 그레인 위스키와 맛과 향이 풍부한 몰트 위스키를 배합함으로써, 가격 경쟁력도 더욱 갖추고, 맛과 향도 무난해지는 이 블렌디드 위스키가 등장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 둘을 조합하는 블랜더라는 전문 직업도 등장한다.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가 협업을 하게 된 샘이다. 마치 적과의 동침과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1860년도를 기반으로 유럽 본토에서는 포도나무 병충해인 필록세라가 유행, 포도를 재료로 하는 브랜디 등이 생산이 더디게 되었다. 덕분에 경쟁 제품인 위스키에게 더욱 찬스를 제공하고, 유명한 위스키들이 속속들이 생겨난다. 대표적인 위스키가 조니 워커(Johnnie Walker)다.  표면상으로는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는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로 하청을 받은 몰트 위스키 입장에서는 스트레스가 쌓일 뿐이었다.


계속된 다툼 속에서 몰트 위스키가 제대로 칼을 뽑아 들었다. 1905년 몰트 100%로 만들어지지 않은 '블렌디드 및 그레인 위스키는 위스키가 아니다'라고 주장을 하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 제1심에서는 원고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몰트 위스키 측이 이기는 듯했다. 하지만, 그레인 및 블렌디드 위스키 생산자 들은 바로 항소를 진행한다. 그들이 주장한 것은 바로 '위스키의 정의'. 위스키가 뭔지 정의부터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37번의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1909년에 결론이 나게 된다. 바로 블렌디드, 그레인 위스키를 인정한다는 것. 원료를 맥아가 아닌 다른 곡물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몰트를 당화제로 사용하여 만든다면, 위스키로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즉, 감자(원료)+맥아(당화제), 밀(원료)+맥아(당화제) 등 원료는 곡물 그 어떤 것을 써도 위스키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생산성이 좋은 그레인 위스키 및 블렌디드 위스키 등이 전 세계를 주름잡을 수 있게 되었고, 비효율적으로 보였던 몰트 위스키는 주축 시장에서 멀어져 간다.


싱글 몰트 위스키의 반격

하지만, 조금씩 싱글 몰트 위스키도 반격에 나선다. 1930년대 스코틀랜드의 유명 싱글 몰트 위스키인 더 글렌리벳(The Glenlivet)은 기존의 블렌디드 위스키와 차별화를 두기 위해 명칭을 달리한다. 바로 언블렌디드 위스키(Unblended Whisky)라는 것. 또 이때에 더 글렌리벳 위스키는 미국에 수출하는 제품에는 숙성 연도를 표기하기로 한다. 미국의 소비자가 차별화된 제품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1930년 대 더 글렌리벳의 언블렌디드 위스키. 지금의 용어로는 싱글 몰트 위스키가 된다. 이때부터 스카치 위스키에 숙성연도가 표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트레이트 몰트 위스키

1960년도에는 싱글 몰트 위스키라는 단어 대신에 스트레이트 몰트 위스키(Straight Malt Whisky)란 단어가 나오게 된다. 역시 시작은 미국 시장이었다. 또 유통업자와의 라벨에는 싱글 몰트 위스키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글렌피딕 위스키의 저돌적인 광고 문구. '당신이 글렌피딕 위스키를 한 잔 마시게 된다면,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로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When you drink Glenfiddich you may never stand for a blended Scotch again.)"라고 알리기도 한다.



1960년대 글렌피딕 위스키 광고 포스터



1960년 대 선보인 글렌피딕 위스키. 스트레이트 몰트란 표현이 지금 보면 이색적이다.

글렌피딕에서 싱글 몰트 위스키라는 말도 이때 처음 나오게 된다. 기존에 다양한 곡물을 사용, 원료의 맛을 느끼지 못했던 블렌디드 위스키와 달리 오직 몰트만 사용했으며, 동시에 하나의 증류소에서 만든 싱글 몰트 위스키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또 영국에서는 하이랜드 몰트 위스키라고 팔리기도 한다.


싱글 몰트 위스키라는 단어가 정착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다. 더 글렌리벳 위스키가 언블렌디드 올 몰트라는 표시를 그만두고, 싱글 몰트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싱글 몰트를 표방하고 있던 글렌피딕 및 세계 최대의 위스키 기업인 디아지오(diageo) 산하의 브랜드도 결국 싱글 몰트라는 용어로 통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싱글 몰트라는 단어는 위스키 업계의 고급 제품을 지향하는 럭셔리 이미지로 더욱 각인되며, 싱글 몰트 위스키 시장의 부활이 시작된다.


돌고 돌아오는데 100년의 시간이

최근에는 블렌디드 위스키는 존재감을 계속 낮추고 있고, 싱글 몰트 시장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위스키 시장에서 가성비보다는 가치에 집중하는 소비가 늘어났고, 이는 싱글 몰트 시장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온다는 말이 있다. 돌고 돌아오는데 100여 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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