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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Jul 10. 2021

스카치 위스키의 라이벌, 아이리쉬 위스키의 몰락과 부활

스카치 위스키VS 아이리쉬 위스키

위스키의 종주국이라면  어떤 나라가 떠오를까? 아마도 상당수의 사람은 스코틀랜드라고 말할 것이다. 바로 스카치 위스키(Scotch Whisky)다.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 위스키의 최고가 위스키를 섭렵하고 있으며, 하일랜드, 아일레이, 캠벨타운, 스페이사이드, 롤런드 등 다양한 지역에서 그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색으로 개성 있는 위스키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 위스키의 종주국, 스코틀랜드가 아닌 아일랜드

하지만,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이야기는 달랐다. 스코틀랜드가 위스키의 종주국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종주국이라고 한다면 바로 아일랜드. 아이리쉬 위스키(Irish Whiskey)의 주인공이다. 아일랜드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6세기에 중동지방을 방문한 아일랜드의 수도승이 향수를 만들기 위해 증류 기술을 가지고 왔다는 것. 십자군 전쟁에서 맹활약을 한 사자왕 리처드의 아버지인 헨리 2세가 아일랜드를 점령했을 때, 관련 보고서에 이곳에서는 보리로 만든 증류주를 마시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 등이다. 다만 정확하게 확인된 것이 아니라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북아일랜드의 올드 부쉬밀 위스키 증류소. 물론 지금은 영국령이다. 출처 https://bushmills.com/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다.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아일랜드가 가장 많은 위스키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전 세계 위스키 생산량 60%를 차지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위스키 증류소도 약 2000여 개까지 있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당시 기록을 보면 아일랜드 어디에 가나 펍이 있었고, 음식과 함께 위스키를 즐겼으며, 설탕과 민트 등을 넣어 마셨다고 나와있다. 아이리쉬 위스키는 미국, 인도, 호주 등으로 수출하며 고급술로서 명성까지 얻게 된다. 특히 19세기에 아일랜드의 감자 기근으로 수많은 아일랜드인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자연스럽게 고향의 술인 아이리쉬 위스키를 찾게 되기도 했다. 


아이리쉬 위스키의 흥망성쇠

하지만, 당시 아일랜드 위스키는 몰트로 만든 순수한 위스키에 가까웠다. 여기에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블렌디드 위스키, 그레인위스키가 등장하면서 아일랜드의 몰트 위스키는 점차 존재감을 잃어갔다. 고급과 수제의 느낌을 담은 아이리쉬 위스키의 위기였다(관련 글)

https://brunch.co.kr/@soolstory/331


또 하나, 스카치 위스키가 잉글랜드와의 병합으로 든든한 소비처를 확보했다면, 아일랜드는 이야기가 좀 달랐다.  처절한 독립운동을 이어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1922년 꿈에 그리던 아일랜드 자유국이 성립되었던 것. 다만 단번에 매출처가 사라지게 된다. 당시 최대 수출처인 미국이 금주법(1919~1933)을 시행하고 있었고, 영국과도 관계가 애매해진 것이다. 


대표 아이리쉬 위스키인 제임슨


미국에서 팔린 가짜 아이리쉬 위스키

아이러니한 것은 그래도 미국에서 아이리쉬 위스키는 있었다는 것. 마피아 등이 몰래 만든 조악한 위스키를 가지고 아이리쉬 위스키 라벨을 붙여 가품으로 판매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미국 내의 아이리쉬 위스키는 더욱 이미지가 나빠졌고, 이것은 금주법이 풀린 이후에도 회복을 하지 못했다. 


미국 시장, 스카치 위스키에 빼앗기다

여기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아일랜드는 바로 중립을 표방한다. 영국 및 미국의 연합군 측이 아닌, 독일의 편도 아닌 어느 쪽에도 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유럽 전장에 온 미군에게 제공되는 술은 아이리쉬 위스키가 아닌 스카치 위스키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삶과 죽음이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미군에게는 잊으래야 잊을 수 없었던 추억이 술이 되고, 그렇게 스카치 위스키는 미국 시장을 넓히게 된다. 이제까지 100년을 쌓아놓은 미국 시장을 스코틀랜드에 빼앗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존재감을 아예 잃게 되었다. 그나마 남은 증류소의 폐쇄, 합병이 계속 이어지게 된 것이다. 



아이리쉬 위스키의 부활의 신호

하지만, 아주 우연한 계기에 찬스가 찾아왔다. 아일랜드의 샤논 공항의 바텐더인 조 셰리던이 고안한 칵테일이 공항 이용자에게 호평을 받은 것이다. 바로 아이리쉬 커피다. 이 아이리쉬 커피는 아이리쉬 위스키를 베이스로 커피와 설탕, 생크림이 들어간 따뜻한 칵테일. 춥고 비가 많은 아일랜드의 날씨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칵테일이었다. 미국의 신문기자가 공항에서 맛 본 이 칵테일은 귀국 후, 미국에서 만들게 되었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아이리쉬 커피. 출처 장생건강원 Bar


그렇게 아이리쉬 위스키는 서서히 존재감을 다시 어필하게 된다. 그리고 1980년, 아이리쉬 위스키 위스키 법을 제정, 아이리쉬 위스키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지난 영광의 모습을 되돌리려고 하고 있다. 결국 스카치 위스키가 지금의 시장의 헤게모니를 잡은 것은 겨우 100년 정도라는 것. 향후 100년 후의 모습은 또 어떻게 변할지, 궁금한 대목이다. 




 PS: 참고로 스카치 위스키의 위스키 스펠링은 'Whisky', 아이리쉬 위스키는 'Whiskey'를 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아일랜드인이 많이 이주를 간 미국에서도 'Whiskey'를 많이 사용하죠. 다만 제조사에 따라서 'Whisky'를 쓰기도 한답니다. 현재 미국 인구 중 가장 많은 민족은 독일계, 그리고 두번째가 아일랜드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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