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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Jun 12. 2021

산업혁명이 살린 위스키, 망가트린 코냑

위스키가 코냑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전 세계 증류주 시장의 절대강자라고 한다면 위스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스카치 위스키부터, 아일랜드의 아이리쉬 위스키, 미국의 아메리칸 위스키, 캐나다의 캐네디언 위스키, 그리고 일본 위스키까지 다양한 나라에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증류주 시장을 잡고 있는 위스키

여기에 위스키 전 세계 소비량 1위 국가인 인도 및 최근에 새롭게 등장한 대만 위스키까지 위스키의 영역은 넓어지고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위스키 시장의 전 세계적인 규모는 2019년 기준 617억 달러, 우리 돈 약 70조 원. 고급 증류주 입장에서는 최고의 시장인 것은 확실하다. 그 뒤를 잇는 것이 바로 브랜(Brandy). 시장의 규모로 본다면 218억 달러로 우리 돈 24조 원 정도 된다. 프랑스 코냑 지방이 가장 유명한 원산지라서 아예 이 지역의 브랜디는 코냑으로 불리게 되었다. 위스키와 브랜디(코냑 등)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원료. 맥아를 곡물을 중심으로 발효 및 증류하는 위스키와 달리, 브랜디는 과실, 특히 포도를 많이 사용한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위스키의 원료는 맥주이고, 브랜디의 원료는 와인인 것이다.


한때 위스키는 별볼일 없는 증류주

현재는 위스키가 브랜디(코냑)에 비해 약 3배 정도로 시장이 크지만 19세기 초만 해도 브랜디가 더 컸다. 그리고 이 시장을 키운 것은 한자 동맹 등으로 자본주의 발전에 특출한 역할을 한 네덜란드 상인. 일반적인 장기 저장 및 관리가 어려운 와인 대신 획기적인 제품을 취급하려고 했는데, 때마침 발견된 것이 증류주인 브랜디였다. 이때 수입한 제품의 명이 브랜드 바인(brandewijin)으로 영어식으로 표현하자면 burned wine, 즉 구운 술이었고, 이것이 나중에 브랜디가 되었다. 알코올 도수가 20도가 넘어 상하지 않는 이 술은 날개돋친 듯 영국으로 팔려 나갔다.


유럽의 담금주 코디얼

또 영국의 가정에서는 우리나라의 청, 또는 담금주와 유사한 코디얼(Cordial)이란 음료를 자주 만들었는데, 당시의 코디얼은 브랜디에 당분 및 허브를 넣어 마시는 것이었다. 또 영국은 이제 막 증류한 코냑 원액을 수입, 영국에서 숙성해 판매도 했는데, 이러한 코냑을 얼리 랜디드 코냑(early landed cognac)이라고도 불렸다. 증류는 프랑스에서 숙성은 영국에서, 판매는 네덜란드가 하는 독특한 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위스키는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스코틀랜드 및 아일랜드에서 밀주 문화를 통해 만들던, 아직은 고급 문화를 입지 않은 상황이었다.


북미에서 건너온 필록셀라. 포도를 말려죽이는 와인 및 브렌디 산업의 대재앙이었다.
브렌디의 위기, 위스키 산업을 성장시켜

그렇다면, 어떻게 브랜디보다 위스키의 시장 확장성이 클 수 있었을까? 실은 이것은 와인 및 브렌디의 아픈 역사에서 유래하게 된다. 바로 1864년, 포도나무에 아주 심각한 병충해가 생겨버렸다. 북미에서 들여온 포도나무의 묘목에 필록셀라라는 해충이 붙어왔기 때문. 결국 이  해충은 프랑스 포도의 씨를 마르게 했고, 포도밭의 3/4를 파괴했다. 결국 와인이나 브렌디를 만들 원재료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 보니 증류주 자체를 만들지 못했고, 늘 저장성이 좋은 보리 등으로 위스키를 만들던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위스키 산업에 청신호가 켜졌다. 늘 이류로써 등장한 위스키가 이제 일류로써 도약할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또 이때 맥주 효모의 배양 및 균질적인 맥주 제조 등 관련 산업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는데, 이 역시 와인의 불행과 맞닿는 부분이 있다.


20세기에 들면서 필록셀라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어가지만, 이미 위스키가 헤게모니를 잡은 상태였다. 여기에 제 2차 세계대전, 미국에서 건너온 미군들에게 제공되는 것은 스카치 위스키. 생사고락의 상황에서 마셨던 위스키는 그들의 소울 술이 되었고, 미국에서 폭팔적인 인기를 구가하게 된다.


위스키는 제조자에게도 유리했다. 위스키의 원료 관리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보리의 경우 창고에 쌓아 놓고 사용할 수 있지만, 포도는 1,2주일 안에 바로 처리하지 않으면 상품성이 바로 떨어진다. 이 뜻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술을 만들 수 있는 위스키와 달리, 브랜디는 늘 한정적인 시기에 술을 만들어야 하는 리스크가 있다. 또 와인은 포도 하나로만 만들지만, 위스키는 보리뿐만이 아닌 밀, 쌀, 감자 등 다양한 곡물을 사용할 수 있다. 브렌디에는 대체재가 적었고, 위스키에는 충분했다는 것. 그리고 날씨 역시 보리를 재배하기 편한 지역이 더 많았다.

산업혁명만 없었어도.....

참고로 필록셀라는 병충해는 서식지가 북미였다. 하지만 대항해시대만 하더라도 이 병충해가 유럽으로 들어올 일은 없었다. 범선으로는 왕래하는데 2달이 걸렸고 그 사이에 다 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혁명을 통해 증기선이 발달이 되고, 이제 1,2주면 유럽과 북미를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와인 및 브렌디 산업에  대재앙이 생기게 된 이유는 산업혁명의 가져온 비극이었다. 뭐든지 빨라지는 것이 좋아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브렌디에게 불행인 것이 위스키에는 행운이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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