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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SAILING Oct 09. 2024

이런 안개 처음이야

눈을 감으나 뜨나

과식과 과음 다음날 아침엔 어김없이 소화불량과 숙취가 찾아오지만, 오늘은 움직이지 않고 니아 베이에서 편히 쉬기로 한 날이니 걱정이 없었다.


여기서 조금만 서쪽으로 항해하면 이제 곧 후앙 데 푸카 해협의 끝 케이프 플래터리Cape Flattery에 도착하게 된다. 거기서 '큰 좌회전'을 하면 태평양에 진입하게 된다. 오프쇼어로 나가는 배들은 나가는 배들은 보통 니아 베이에서 좋은 날씨가 여러 날 길게 이어지기를 기다리며 오래 머무른다.


우리는 다음 '정거장'까지만 짧은 항해를 할 것이므로 하루 이틀만 날씨가 좋아도 충분했다. 오래 머물 필요는 없었지만, 태평양에 나가기 전에 여기서 배를 점검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점은 오프쇼어로 나가는 배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태평양 대비


우선 포트 앤젤레스까지 돌아가 받아온 VHF 라디오를 설치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 라디오는 자동 식별 시스템AIS도 갖추고 있어, 이 장비가 설치된 배들끼리는 서로 보고 인식할 수 있고, 너무 가까워지면 알람을 울려주기도 한다. 시야 확보가 안 되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한 줄기 등불이 되어 줄 것이었다. 마스트에 설치된 VHF 안테나와 연결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선주의 걱정과 달리, 단자만 연결해도 라디오는 잘 작동했다.


고장 난 줄 알고 교체했던 뱃머리 항해등도 알고 보니 배선 문제였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니아 베이 올 때는 불이 켜졌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왜 느닷없이 작동을 재개했는지 이유를 모르니 알 수 없는 이유로 또다시 연결이 끊길 위험도 여전히 존재했다.


공구 마트에서 산 화물용 벨트를 이리저리 매 보며 최적의 잭라인 연결 방법도 찾아보았다. 데크 위에서 이동할 때 발에 걸릴 위험이 없도록, 가능하면 배 중심선에 가깝도록, 충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으면서도 너무 가깝지 않은 간격으로 고정하면서. 화물용 벨트가 요트 전용 잭라인 대체품으로 적당한지 의심스러워 한 개만 구입한 것이 이제 와 후회가 되었다. 다행히 대양에서 불어오는 바람 방향은 대체로 일정하고, 우리는 보통 북서풍을 뒤에서 받아 남하할 것이다. 요트가 기울었을 때 데크로 나가는 사람은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서만 이동해야 안전하므로, 하나뿐인 잭라인은 우현에 설치했다.


마을에도 방문해야 하니 배꼬리 데빗에 올려놓은 고무보트도 내려 바람을 넣어야 했다. 그러나 돌풍을 동반한 강풍이 불어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 아침에 마을을 덮고 있던 안개가 이제 이곳까지 하얗게 덮고 있었다. 아메리카 원주민 마을이 궁금해 빨리 구경하고 싶긴 하나, 5마력짜리 작은 선외기를 단 고무보트로 이 바람에 이 안개를 뚫고 갈 자신은 없었다. 


결국 출항을 하루 늦추기로 결정했다. 원래 계획은 오늘 마을 구경을 하고 호라이즌스 호를 준비한 다음 내일 출항하는 것이었으나, 평소의 우리 속도를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좀 무리한 일정이긴 했다. 우리 열혈 세일러 친구들의 알루미늄 배는 여전히 고무보트를 내리지 않고 있었다. 즉, 외부와의 접촉이 원천봉쇄된 상태. 며칠 동안 닻 내리고 배에서 두문불출하며 바람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반면, 우리는 니아 베이까지 와서 구경도 하지 않고 떠나는 건 좀 억울한 바캉스 세일러들.


다만, 하루 종일 시야를 온통 회색으로 뿌옇게 만드는 안개는 사람을 좀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제 9월, 포트 앤젤레스에서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 여름이 끝나 버렸다. 날씨 때문인지 다가오는 겨울에 쫓기는 듯한 느낌에 좀 심란해 밤 9시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안갯속 원주민 마을


다음날 아침, 현창 밖을 보니 그냥 밝은 회색이었다. 데크에 나가 보니 호라이즌스 호가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고작 12미터 앞 뱃머리의 물과 하늘 구분도 안 되는 안개도 있는 거구나 놀라웠다. 우리는 방파제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닻을 내렸는데, 늘 시야에 있던 방파제도 지우개로 지운 듯 사라져 버렸다. 마치 우리 배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4차원의 세계에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계획대로 오늘 아침 출항하려고 했어도 안개가 이 정도면 어차피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행히 바람은 없어서 고무보트로 상륙해 마을 탐험을 하기에는 좋다. 오랫동안 샤워를 못했으므로 샤워 준비물도 챙겼다.


처음 가 보는 곳인데 시야가 전혀 없으므로, 위성 지도로 고무보트를 묶을 한적한 선착장을 미리 찾아 핸드폰 플로터에 저장하고 출발했다. 우리를 지켜줄 뿌앙이는 꽉꽉 공기를 충전해 가방에 넣고, 생수병에 담은 선외기 연료와 비상용 노 한 쌍도 잊지 않고 고무보트에 실었다. 현실적으로 노 저어 돌아오기엔 먼 거리였지만.


아무리 선외기 5마력 느린 고무보트라도 앞이 전혀 보이지 않자 불안했다. 책에서 읽은 대로 사전 예방 차원에서 뿌앙이를 길게 한번 울렸는데, 이게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금방 깨달았다. 곧 희미한 실루엣의 파워요트가 시야에 들어왔는데, 데크 위에서 누군가 허둥지둥 움직이는 게 보였다. 배가 더 가까워지자, 그 사람이 잠옷 차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혼란스러운 듯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마침내 우리 고무보트를 발견한 듯했다. 이른 아침 시간, 바로 근처에서 뿌아앙 소리가 울렸으니, 근처에 배가 지나가는 줄 알고 화들짝 놀라 뛰어나왔을 만했다.

짙은 안갯속에서 어렴풋한 실루엣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가까이 가자 선착장 끝의 목조 건축물이 훼손된 채 기울어 있어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저렇게 기울다가는 곧 무너질 것 같은데 왜 저렇게 방치되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우리가 고무보트를 대기로 한 곳은 그 옆에 있는 긴 나무 선착장. 그 끝에는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해상 주유소가 있었지만, 배를 대는 곳이 아닌지 배 묶는 곳도 없었다. 그 아랫부분은 홍합이 가득 덮고 있어, 마치 자연이 인조물을 삼키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겨우 계류줄을 맬 만한 쇠붙이를 찾아 배를 묶고 상륙하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안갯속의 신비로운 원주민 마을을 이제 곧 만날 생각에 들떠 나무 선착장을 걷기 시작했다. 멀리서 피리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서늘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읭? 선착장의 끝은 황량한 아스팔트 도로. 당장 오른쪽으로 가고 싶은지 왼쪽으로 가고 싶은지도 결정하기 어려운 썰렁한 풍경이었다. 물론 부뚜막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원뿔형 인디언 텐트촌을 상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건... 실망스러웠다.


구멍가게가 보이길래 들어갔다. 바로 옆의 주유소의 직원도, 구멍가게 계산원도 아메리카 원주민인 게 신기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미디어에서는 백인이나 아프리카계 이민자에 비해 항상 소수민족으로 나오곤 했는데 이곳은 온전히 이 사람들의 세계인 듯했다. 선착장에 고무보트를 댔는데 안개 때문에 다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으니 몇 시간 계류해도 되냐고 물었다가 단번에 거절당했다. 따뜻할 거라고 혼자 상상했던 인심도 예상 밖이었다. 하지만 외지인으로 인해 이 사람들이 겪었던 비극적인 역사와 트라우마를 떠올리면 이해가 안 가는 일도 아니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다시 고무보트로 돌아가 안개를 뚫고 마리나까지 이동했다. 다행히 드나드는 배 없이 한산했다. 한 십 년은 출항하지 않은 듯한 배들이 모여 있는 구역에 고무보트를 묶었다.



니아 베이의 강태공들


마리나 사무실은 닫혀 있었지만 다행히 샤워실은 활짝 열려 있었다. 포트 앤젤레스 마리나에서는 1 쿼터(300 원 정도)를 넣으면 2분 30초 물이 나왔는데 여기는 무려 5분이나 나왔다! 나흘 만에 하는 따뜻한 샤워에 기분이 다 환해져서 바닷가 쪽으로 마리나를 향해 걷다 왼쪽에 'TERIYAKI' 간판과 문 닫은 가판대를 만났다. 포트 앤젤레스 한국 친구들로부터 니아 베이에 한국 사람이 하는 데리야끼 가게가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그 앞 잔디에서 몇 사람이 뭔가를 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 분은 한국인이 아닐 수 없는 외모를 가진 아저씨였다.


"안녕하세요!!"


나는 당신이 한국인임을 안다-를 그대로 발성에 담은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다가갔다. 알고 보니 이 사람들은 데리야끼 주인이 아니었고, 한국인도 아니고, 이곳에 낚시를 하러 온 시애틀 교민들이었다. 일행 중 한 명이 카약 낚시에서 막 돌아와 생선을 손질할 작업대를 찾던 중이었다. 낚시 가방에서 팔뚝만 한 검은 우럭이 끝없이 나오고 생선을 손질하는 솜씨들이 범상치 않았다.


"이거 '안녕하세요'만 아니었으면 초대까지는 안 하는데, 우리가 안녕하세요-에 약해요. 우리 캠프가 저 뒤에 있는데 같이 가서 회라도 드실래요?"


안개 자욱하고 으스스한 이 마을에 도착한 뒤로 줄곧 마음이 불안하고 긴장됐었다. 그런데 우리말을 쓰고 낯익은 얼굴을 한 동포들을 만나니 한순간에 마음이 놓였다. 거기다 점심 식사까지 초대받다니, 오늘 하루가 정말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캠핑장에 가니 캠프파이어와 테이블, 의자는 물론이고 가까이에 주차한 차의 열린 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완비되어 있었다. 갓 손질한 우럭, 아침에 잡았다는 한치, 공판장에서 사 왔다는 연어 회가 차려져 있었다.

미국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신선한 회라 무척 기대되고 설렜다. 거기에 집에서 직접 담근 진짜 김치를 보니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낯설고 기이하게만 느껴졌던 니아 베이의 한 구석에서, 마치 집에 돌아온 듯 한국 음식과 한국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게 될 줄이야. 한국인들이 올 일 없을 것 같은 외딴 마을에 낚시하러 온 사람들과 요트로 내려온 사람들이 만난 것도 참 신기한 인연이었다. 이 사람들은 오래된 낚시 친구들로, 매년 차를 타고 와 여기서 이렇게 모인다고 했다. 우리가 멕시코로 항해할 계획이라고 하자 모두 놀라워하며 혀를 찼다.


배 터지도록 먹고, 한국어로 실컷 수다를 떨고 20년 전 한국 가요를 들었다. 원주민 마을도 구경해야 했기에 잠시 나와 동네를 한 바퀴 돌았지만, 대충 지은 집들과 썰렁한 거리뿐이었다. 아까 만난 주유소 직원과 계산원이 아니었으면 현지 주민과 마주칠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쯤 되자 마카 박물관 방문은 자연스레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결국 캠프로 돌아가 저녁까지 배 터지게 먹고, 해 지기 전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모선으로 돌아왔다. 연기 피어오르는 인디언 캠프 대신 회와 김치가 넘치는 한국 친구들 캠프에서 해질 무렵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궂은비뿐 아니라 미국 북서부 해안의 강한 남풍이 내일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하루 더 니아 베이에 머물기로 했다. 당초 이틀 묵고 떠나려던 원대한 계획과 달리 4박이나 하게 됐지만, 마음 한편에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리적인 배 준비는 거의 마쳤고, 이제 고무보트만 바람 빼서 데크에 묶어놓으면 된다. 하지만 다음 목적지인 라 푸시나 그 너머의 그레이스 하버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신이 없다. 만약 라 푸시에서 바 크로싱에 실패한다면, 그 길로 바로 그레이스 하버로 향해야 할지도 모른다.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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