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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해리 Dec 26. 2022

연약한 사내와 그렇지 못한 겨울 코트

아무 옷이나 입으면 안 됩니다

1.

그러고 보니 셜록은 겨울에만 등장했다. 아니면, 내가 겨울에 등장한 셜록만 기억하든지 말이다. 21세기 셜록의 매력은 하나하나 언급하기도 입 아프지만, 결국 하나만 언급해야 한다면 셜록이 존을 처음 만나 예의 그 ‘투투원비 베이커 스트릿’을 쫀쫀하게 읊었을 때다. 다만 여기에 전제 조건이 있다. 앞서 존의 일거수일투족을 훑고는 그의 이력부터 가족에 관해 좌르르 늘어놓으면서 코트를 휘리릭 두르고 요연하게 꺼지지 않았더라면 이 명장면은 휘발되었을 것이다. 

코트를 입지 않은 셜록은 상상도 하기 싫다. 둔한 롱패딩을 입고 영안실에 입장한 셜록을 상상해보라. 그건 몸에 딱 붙는 티셔츠를 입고 패션에 관심이 없는 것이 자랑임을 여기는 이과 출신에 나이 어린 스타트업 대표의 고루함과 다를 바 없다. 숏패딩이어도 다를 바 없다. 숏패딩이라면 한없이 가벼우며 ‘스트리트’와 후줄근함을 구별하지 못하고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세상만사를 다 해결하려는 ‘엠지’ 세대를 연상시키니 신중함과 직감을 고루 갖춰야할 탐정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무스탕은 너무 멋을 부린 것 같고 사람이 실하지 않은 듯하여 탈락. 존처럼 무슨 자켓 같은 것을 입을 수는 있겠지만, 셜록은 기골이 꽤 장대한 편이라 딴딴한 그처럼 철저하게 소화할 수 없다. 결국 정답은 코트다. 어떤 잔인하고 교활한 사건이 닥쳐도 셜록이 꼿꼿할 수 있는 건 다 구겨지지 않아 굽히지 않는 코트 덕택이다. 셜록의 코트는 길고 무게감이 있어 땅으로 묵직하고 곧게 뻗는다. 그게 참 무거워 보이지만 그만큼 훤칠한 셜록에겐 끄떡없어 보이니 다행이기도 하다. 탐정에겐 느긋하게 걸어갈 시간이 없으니 셜록이 뛸 때마다 코트가 휘날리는데 뒷자락의 주름 덕분에 드라마틱함이 배가되면서도 사명감이 보이는 듯하다. 저 무거운 코트가 나부끼게 뛸 정도면 이 사건에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한다는 걸까? 빼어난 수트를 입고 정부에서 일하는 마이크로프트는 어디선가 느긋하게 걸어 나오고, 직장 생활과 경찰 생활을 겸하며 셜록을 싫어하는 경찰들은 절대 뛰지 않고 셜록보다 한 발 늦는다. 이는 코트를 입고 사방팔방 쏘다니는 셜록의 전문인 현장성과 비교된다. 역시 탐정에게 코트만 한 옷이 없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코트는 완전무결한 옷은 아니다. 보온성과 간편성 면에서 코트는 다른 옷에 비해 부족하다. 그 부족한 코트가 셜록을 만나 무장된다. 셜록이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을 때나 깃을 세우고 걸을 때 셜록은 연약해 보인다. 셜록은 실로 연약하다, 보이는 것처럼. 집 밖에서는 코트, 집 안에서는 가운을 두르는 셜록과 왓슨의 만남은 셜록의 룸메이트를 구함에서 비롯되었다. 같이 살긴 힘들어도 혼자 살지 않으려는, 영락없는 인간이고 사람이다. 자칭 ‘고지능(high-functioning)’의 ‘소시오패스(sociopath)’는 사실 사람으로부터 멀어지진 않는다. 티격태격하거나 냉소를 뽐내거나 부딪치거나 해도 사람들 사이에 있고, 무엇보다 존을 장난으로 놀려도 진심으로 조롱하지 않는다. 마이크로프트가 허드슨 부인에게 버릇없이 굴자 그를 나무라고, 파티에 예쁘게 입고 온 몰리를 또 꿰뚫다가 의도치 않게 상처 입힘에 마음이 쓰인 듯 볼에 키스를 남긴다. 고지능으로 소시오패스가 된 셜록은 이렇게 타인에게 여리다. 탐정이 과연 단순히 사건만 해결할까? 사건이 해결되었는데 아이린 애들러를 왜 살려주러 갔을까? 사건 해결에만 치중했다면 왜 모리아티에게 사람들이 죽었다며 화를 냈을까? 셜록은 타인을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 그저 서툴 뿐. 셜록은 뻣뻣하지만 기어이 폭 감기는 코트를 닮았다. 차가운 겉으로 저 혼자만 따뜻한 패딩이나 멋이 우선인 무스탕과 다르다. 런던의 추위와 뛸 때 부닥치는 바람에 부들부들 떨지라도 셜록이 코트를 고집하는 이유는 아마 코트의 표면은 누가 만져도 부들부들하기 때문일 것이다. 코트는 나만 따뜻한 옷이 아니다. 

역시 나는 셜록으로 잠겼다. (‘I AM SHERLOCKED.’)

2.

뜨거울 때 만났을 적에는 당신은 너무도 훌훌하여 내가 붙잡아도 곧잘 날아갔다. 눌러 붙을 것처럼 굴 때는 언제고 어찌 미련 하나 없이 떠날 수 있는지, 당신의 빈 자리는 몹시 헛헛하더라. 뜨거움이 물러난 공백에 찬 바람이 비로소 불 때 당신은 그 늠름했던 풍채를 움츠리고 비로소 나타났다. 태양 앞에서도 이글거릴 정도로 강인했던 당신은 겨울이 되니 모진 풍파에 위축되어 있었다. 당신은 하도 뜨거워 추위를 타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당신은 다시 뜨거워지길 포기한 것이다. 

겨울이 맹수인 당신을 길들이기라도 한 걸까 혹은 당신 속이 다 거덜난 걸까. 무스탕을 입고 손을 ‘호’ 불 때, 집이 냉골이어도 보일러는 틀지 않는 당신이 참 딱했다. 당신은 여전히 술로 속을 데우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겨울인데, 하물며 속에 술을 들이붓더라도 아무렴 뜨끈해질까. 그러고 보면 당신은 다들 모자를 쓰고 패딩을 입을 때 목도리를 두를지라도 코트를 고집했다. 왜 당신은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는 걸까, 그렇게 추우면서. 

웅크려 졸고 있다 퍼뜩 깨어 엉뚱한 역에 허둥지둥 내릴 때 당신은 코트 차림이었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호호’ 불어 먹으며 웬 ‘알바’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넌지시 꺼낼 때도 당신은 코트 차림이었다. 몇년 만에 전화해 놓고는 당신은 어떻게 그리 담백할까. 

“나 구씨” 

그렇게 살며시 터놓은 당신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고, 그때 나는 당신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음을 바짝 느꼈다. 코트는 그 어느 겉옷보다 얇고, 그 어느 겉옷과 달리 붕 뜨지 않고 몸에 착 붙는 경향이 있다. 즉 코트는 꼭 제 주인과 한몸이 되는 듯한 느낌이 있고, 당신은 코트와 닮았다. 각이 잡혀 있어도 그 자체가 이미 연약하여 자연히 웅크러지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아니, 피하지 않는 코트 말이다. 

좀 따뜻하게 입지, 굳이 코트를 입고 움츠리고 있을까.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당신이 길 건너에서 내 이름을 크게 불렀을 때 이 추위에서 날 기다린 것처럼 보였다. 귀는 빨개져 가지고 어깨를 오그라뜨리고, 무엇보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코트는 오므라져 있었다. 강인하지 않은 코트를 입은 채 뛰어올 때 나부끼는 코트의 틈으로 찬바람이라도 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래서 혹 감기라도 들까 내심 염려했지만 당신은 다른 겉옷들과 다르게 둔중하지 않은 코트를 입고 가뿐히 뛰어왔다. 이제 알겠더라, 당신이 코트를 입은 까닭은 얼른 달려와 움츠려 나를 안아주기 위함이었다고. 아무것도 묻지도 강요하지도 요구하지도 않겠다. 그러니, 무진장 보고 싶었으니 달려와 날 안아 달라. 나도 당신처럼 코트를 입었다. 

역시 나는 구찌보다 구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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