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성숙한 한국사회를 위하여
"조국사태("사태"라는 말은 조국을 향한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앙시앙레짐" 수호를 위하여 "사태"를 조장한 법비들과 지식인 특권계층들을 지적하는데 적합한 표현이다.)를 보는 2가지 시각이 있을 수 있다. 둘 다 옳지만 관점은 조금 다르다. 1)조국은 억울한 피해자이고, 반대편에는 악랄한 '가해자'가 있다. 이 사실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당연하다. 하지만 조금 지엽적이다) 2)"조국사태"는 "에밀졸라"를 일약 깨어있는 지식인의 대표명사로 부각시킨 10여년에 걸친 진보/지식인의 자기성찰의 계기가 된 프랑스의 드레퓌스사건(1894~1906)과 비슷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물론 나는 2)번의 시각이다. 프랑스의 드레퓌스사건에서 드레퓌스는 고난의 당사자이지만 정작 주인공은 가해자로 작용한 프랑스 지식인과 사회의식이었듯이, "조국사태"는 일그러진 지식인들과 이 사회의 분열된 의식의 자화상을 비추는 거울이고 "조국사태"가 언급되고 다루어지는 과정은 지식인의 자기성찰과정이고 이 사회의 비뚤어진 의식이 치유되는 과정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조국사태"와 "드레퓌스사건"은 갈등의 내용 뿐만 아니라 사건속에서 조국과 드레퓌스의 위상도 다소 다르다. 그러한 자이점과 의미를 다루는 것은 이글의 범위를 벗어난다.
중요한 점은 "드레퓌스사건"이나 "조국사태"는 이면에 거대한 의식의 빙산과 한국인 모두가 동승한 "포세이돈 조국사태"호가 충돌한 필연적인 "사고"라는 사실이다. 사고의 회복은 시간이 필요하다. 일차적인 치료의 시간이 필요하고 재활의 시간이 필요하다. "드레퓌스사건"은 10여년에 걸쳐 그 치유와 재활, 갈등과 카타르시스, 해소의 시간을 거쳐 현대 프랑스호를 구축하는 역사의 자양분으로 소화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조국사태도 올해로 발발 7년차차를 지나고 있다. 우리의 "조국사태"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 한국의 지식인들과 사회의식을 건강하게 재활하게 하는데 이바지할 것이고, 한국사회는 보다 성숙한 구조로 거듭날 것이다. "포세이돈 조국사태"호에 동승하여 함께 어드벤처하는 우리 모두는 종내 구조될 것이라는 결론도 우리는 미리 알고 있다. 서두를 것도 없고 피할 것도 없다. 다만 지나친 감정과잉이나 과격한 행동으로 자신을 상하지 않도록 각자 조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