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문고전 순례 (4) 메논
플라톤의 <메논>을 읽고 난 뒤 나는 15년, 20년 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1막
아내와 나는 딸 아이가 나중에 어떤 직업을 가지면 좋을까를 두고 가끔 이야기를 나눈다. 커서 이런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둔 것도 아니며 벌써부터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편도 아니고 다만 우리 각자가 현생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아이에게 가볍게 투영하는 정도다. 화학을 전공한 아내는 일상에서는 법을 통한 정의 실현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아이가 법조인의 길을 걸으면 좋겠다고 하고, 경영학을 전공한 나는 물리학, 천문학과 같은 순수과학에 관심이 많아서 아이가 나중에 미국 NASA에 가서 우주를 탐구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예전 나이 셈법으로 올 해 아홉 살이 된 아이는 뭔가를 읽거나, 쓰거나, 그리거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고 본인은 동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중에 수의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아이가 제 직업을 갖기까지 아직 긴 시간이 남아있다. 아이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 되든 그 길에서 자신의 인생을 잘 가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반대의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왜 나는 무엇만큼은 되고 싶지 않다고,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정확히 20년 전인 2004년 봄 고려대 경영대학에 신입생으로 입학했을 무렵과 그로부터 몇 년 더 전이었던 시절을 떠올려본다. 고등학교 1학년을 지나 2학년에 올라가며 나는 문과와 이과 중 어느 쪽으로 갈 것인지 결정해야 했는데 적록색약이라는 이유만으로 이과에 가면 안되겠다는 판단을 자체적으로 내렸던 것 같다. 모두 어렸을 때 숫자로 구성된 색맹검사표를 한 번쯤은 접해봤을텐데, 나는 이 색맹검사표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이 나름 콤플렉스 중 하나였다. 적색과 녹색을 남들보다 잘 분별하지 못하는 편이긴 하지만 공원에서 노점상이 파는 분홍색 민트색 솜사탕 색을 제대로 구분 못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상 생활 속의 적색, 녹색은 제법 잘 구분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적록색약이라면 이과로 진학했을 때 경험해야 할 다양한 이과적인 상황 - 시약을 고르고, 사람의 배를 갈라 내장을 확인하고 - 에서 문제가 될것이라고 쉽게 생각했던 거다. 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은 표면적인 핑계에 가까웠고, 근본적으로는 중학교 때의 개구리 해부 경험이 이과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 반응을 남겨 놓았던 것에 가까웠다.
중학교 2학년 때 개구리 해부 실험을 다 같이 했는데 메스로 개구리 배를 잘도 헤집던 반장 여자아이와는 달리 나는 덜덜거리며 개구리 몸에 제대로 손을 대지 못했다. 반장 여자아이는 너무나 쉽게 개구리 해부를 해버려서 선생님으로부터 오히려 장난치지 말라고 혼나기까지 했다. 문제는 개구리 해부로 끝나지 않았다.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과학 담당이셨고 나는 과학부장이었는데 해부가 끝난 후 개구리 사체를 모아 버리는 일까지 도맡아야 했다. 한 반에 50명 가까운 동급생, 50 마리 가까운 개구리 사체. 개구리 사체와 내장을 큰 비닐봉지에 담아 쓰레기 수거함까지 운동장을 가로질러가던 나는 역겨운 마음 뿐이었다. 중2의 나는, 비릿한 냄새의 죽음이 곧 과학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이과라고 믿었던 것 같다. 나는 적록색약이야, 라는 이유를 핑계삼아 스스로를 이과에 갈 수 없는 사람으로 셀프 낙인을 찍었는데 정확한 속마음은 이과에 가고싶지 않았던거다. 이과에 가면 의대에 갈것 같고, 의대에 가서 내장과 피를 또 보고 싶지 않았던 거다. 이과의 삶이 꼭 의대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을텐데.
1학년에 이어 2학년에 문과에 진학하고 나서도 다행히 성적이 제법 잘 나오는 편이었고, 당시 수능 성적 기준으로 문과에서는 법학과 경영학이 가장 커트라인이 높은 학과였다. 두 학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직관적으로 나는 법을 피하고 싶었다. 18살의 내게 법은 사법고시를 의미했고 현실과는 거리가 먼 고루한 텍스트였다. 법은 현실과 괴리된 탁상공론, 과거에 정박된 시간이었다. 반면 경영학은 움직이는 것이었다. 나만의 기업을 만들어 장사를 해보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지만 기업을 발전시키고 계속 존속하도록 운영하는 것은 끊임없이 유동적인 움직임에 가깝다고 느꼈다. 그래서 경영학과에 지망했고 우여곡절 끝에 - 수능은 평범하게 봤지만 재수를 해야하나 고민하던 때 운이 좋게 수시모집과정 2차에 합격하게 되어 -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신입생 생활이 시작된지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지금도 잘 잊혀지지 않는 묘한 점심식사를 하게 된다. 성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름이 성공이었기 때문에 석세스 형이라고 불렀던 모 선배가 있는데, 석세스 선배는 같은 반 후배들을 돌아가며 밥을 사주었고 그날은 내가 속한 그룹이 석세스 선배에게 밥을 얻어먹는 날이었다. 우리는 정문 앞에 있는 모 백반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밑반찬으로 계란말이가 나왔고 모두 한 점씩 집어가 먹던 중 석세스 선배가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희는 왜 경영학과에 왔어?” 아니면 “너희는 경영학이 뭐라고 생각해?” 이 두 질문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다들 뭐라 뭐라 이야기했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경영학은 뭔가 바탕이 되는 학문 같아요.”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바탕이라는 건, 고등학생 때 경영학을 움직임으로 이해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어디에서나 사람은 조직을 구성하고 사회를 이루기 때문에 그 조직과 사회가 잘 운영될 수 있기 위한 기본적인, 공통적인 이론을 배우는 것에 관심이 있다는 것. 조직과 사회가 달라지더라도 이를 운영하는 원리는 비슷할 수 밖에 없기 대문에 경영학은 바탕이 될 수 있다는 것. 내가 말한 바탕은 그런 의미였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석세스 선배는 숟가락을 흔들며 “뭔가 잘못 생각하는 것 같은데? 경영학은 기초가 아니라 응용의 학문이야.” 라는 말을 남겼다. 선배는 내가 바탕이라고 이야기한 것을 기초라는 단어로 이해했던 듯 싶다.
맞다. 경영은 물리학과 같은 순수학문이라기 보다는 응용의 학문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진다. 경영학이란 회계, 재무, 마케팅, 전략, 인사, 조직 등 다양한 영역이 기업의 수익 창출과 지속적인 발전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통합하고 응용하는 학문이라는 생각. 크게 틀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경영학이 어디에나 공통 언어와 같이 표준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바탕의 학문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아직 본격적으로 경영학을 배우기 전이었지만 직관적으로 직관적으로 경영학이 단지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응용의 학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맞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경영학이 비록 물리학이나 경제학처럼 한 분야의 진리에 가까이 그리고 깊이 내려가지는 못하겠지만 넓게 어디에서나 쓰이는 바탕으로의 학문인지를 한 번 알아보고 싶었던 거다.
2막
경영학을 공부하고, 중간에 KATUSA로 병역을 이행하고, 싱가포르로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상을 받은 것은 없지만 이런저런 공모전에 참여하다가 졸업이 가까워질무렵 자연스럽게 컨설팅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대학 졸업을 준비하던 2009년 무렵 경영학과 학생들의 진로는 대개 세 가지 경로로 나뉘어졌다. 일찍부터 공인회계사 시험을 몇 년 준비해서 회계사가 되는 경로, 투자은행(IB)이나 컨설팅펌 또는 글로벌 마케팅 기업과 같이 입사과정에서 영문 resume가 필요한 직업의 문을 두드리는 경로, 마지막으로 일반 금융 공기업이나 일반 대기업에 취직하는 경로였다. 나는 일찌감치 첫 번째 경로는 내가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시험형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뿐더러 기나긴 수험 생활을 지나 또 몇 년에 걸쳐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두 번째 경로, 영문 resume로 나의 존재를 증명하고 어필해야 하는 직업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도 컨설턴트가 되는 것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글로벌 컨설팅펌에 선배들이 검은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취업설명회에 와서 자신의 커리어를 이야기하는 것도 인상적이었고, 다양한 산업을 짧은 시간 내에 경험할 수 있고, 또 몇 년 컨설턴트 경력을 쌓은 후에 MBA를 다녀와서 몸값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좋았지만 내가 컨설턴트가 매력적이라고 느낀 것은 그들이 일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나는 경영학이 많은 것의 바탕이 되는 학문이라는 생각처럼, 컨설턴트도 일하는 것에 있어 바탕이 되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직관에 의하면 컨설턴트는 기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론을 갖고 다양한 산업과 기업의 문제를 체계화하여 해결하는 직업에 가까웠다. 기업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컨설턴트에 프로젝트를 의뢰한다.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는 것일 수도 있고, 운영 프로세스 효율화 일 수도 있고, 혹은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과 같은 프로젝트를 맡길 수도 있다. 컨설턴트는 회사 직원에 비해 해당 산업과 관련한 전문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초기에는 산업의 특성과 기업의 독특한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소비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프로젝트 중반 이후부터는 컨설턴트로서 갖고 있는 기초적인 방법론, 경험, 지식, 직관에 의해 해당 기업의 문제를 구조화하고 정리하고 요약하고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논리의 기술>로 유명한 바바라 민토의 가르침을 인용해보자면 문제부터 결론까지 모든 요소가 What과 Why로 빈틈없이 상호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컨설턴트의 역할, 또는 컨설턴트적인 사고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해당 산업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었는가? 이 부분은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을 극단적으로 밀고 가보면, 유능한 컨설턴트라면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그 기업에 대해 전혀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선험적으로 생각한 가설은 이런 것인데 이 가설에 부합하는 근거가 있을까? 있으면 그 다음 질문과 가설로. 없다면 다시 한 스텝 돌아가서 새로운 가설을 만들어내는 것을 무수히 반복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직접 엄청난 전문성을 가질 필요는 없고, 전문성을 가진 사람을 붙잡고 계속 물어보고 확인하면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런 산파와 같은 역할이야말로 컨설턴트의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했다. 이 모든 생각은 경영학은 바탕이 되는 학문이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었고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나는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깊이보다는 넓이에 가깝게 이해하고 있었는데 …… 그래서 어떤 글로벌 컨설팅펌에 합격했을 때 나는 직관적으로 다시 입사거절 메일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SK 출신이신 아버지 영향을 받아 SK와이번즈 야구팀과 김성근 감독을 좋아했기 때문에, 김성근 감독의 명언을 입사지원서나 면접 답변에 여러 번 인용하곤 했다. 글로벌 컨설팅펌 서류 합격 이후에 몇 번의 테스트를 거쳐 최종 면접을 갔을 때 나를 제외한 면접자들은 모두 컨설턴트가 되기 위해 몇 년 준비한 베테랑처럼 보였다. 컨설턴트의 자질, 컨설팅 업계의 트렌드, 앞으로의 커리어 설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답이 전문적으로 술술 나왔다. 나는 고작 김성근 감독의 일구이무(一球二無) 격언을 이야기하며 열심히 하겠다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나는데, 4명의 최종 면접자 중에 나를 포함해서 2명이 최종 합격했다.
두 명 선발하는 컨설턴트 포지션에 합격한 이후, 서울 역삼역 근처 모 일식집에서 점심식사 겸 합격자 사전 미팅을 가졌다. 그 자리에 나온 파트너 컨설턴트는 식사를 마치자 우리에게 미리 준비해 온 Financial engineering 원서를 주면서 회사에 오면 처음으로 들어갈 프로젝트가 이런 분야이니 미리 공부해 오라고 했다. 1,000 페이지가 넘어 보였다. 생각해보니 식사 전 파트너 컨설턴트가 건네준 자신의 명함에는 금융공학 박사라는 타이틀이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집에 돌아와 그 두꺼운 원서를 뒤적거리며, 이건 내가 컨설팅펌에 대해 직관적으로 여겼던 것과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떤 프로젝트를 이해하기 위해 그것도 스물 다섯 살의 사회생활 초년생이 적응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 정도의 초기 input이 필요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그 두꺼운 Financial engineering 원서는 넓은 바탕의 세계라기 보다는 좁고 깊고 답답하게 갇혀있는 세계를 연상하게 했다. 나는 고등학생 때 이과가 아니라 문과를 선택할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사소한 증거를 두고 직관적으로 미래를 결정했다. 부모님에게도 말씀드리지 않고 그 날 밤 정중하게 입사 거절 메일을 보냈고 그 순간을 마지막으로 컨설턴트로서의 가능성은 문을 닫게 되었다. 경영학과 학생들이 흔히 나아가는 세 가지 진로 중 마지막 경로만이 남았다.
석유를 정제해서 제품을 생산하는 에너지 기업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15년 동안 한 분야의 전문성을 키우는 부서보다는 보다 넓게 사안을 이해하고 요소를 구조화하는 일이 주가 되는 부서를 전전하였다. 에너지 산업의 정책을 국가와 기업이 함께 고민하고 개발하는 일,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유가의 흐름을 이해하고 전망하는 일, 회사의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점검하는 일,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ESG경영을 체계적으로 도입하는 일 …… 여러 부서를 전전하는 가운데 나는 어느 조직에서나 보고서를 많이 작성하는 역할을 맡았다. 보고서를 쓰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일이었다. 전문성을 지닌 다른 부서 - 마케팅이나 운영이나 물류나 공장과 같은 - 에서 유통되는 정보를 종합하여 필요 없는 정보는 제거하고 필요 있는 정보 중에서 서로 합리적으로 이야기가 통하는 것들을 모아 하나의 논리 구조를 만들어 낸다. 쉽게 말하면 말하는 화자와 듣는 청자 모두 납득할 수 있는 그럴듯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은 허구의 소설을 창작하는 것과는 달랐다. 사실을 모아 꿈을 파는 일에 가까웠다.
나는 스스로를 기업에 소속된 컨설턴트라고 생각하며 보고서를 만들곤 했다. 옛 기억을 더듬어보니 입사 2년차에는 지금과 달리 내가 일하는 좌석이 지정되어 있었는데 내 책상 앞에 ‘컨설턴트처럼 일하기’ 라고 적어놓았던 기억이 난다. 컨설팅펌에 가려다 그만둔 것에 대한 후회 때문이 아니라, 내가 생각한 컨설턴트의 역할을 회사 내에서 구현해보고 싶다는 뜻이었다. 보고서를 만들며 어떤 면에서는 정보 자체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회사 성과측정을 담당하는 옆 부서에서는 분기 영업이익이 5,270억인지 5,280억인지, 숫자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지만 나에게는 대략 5,200억대라는 가설에만 부합하면 그만인 것이었다. 나에게는 정보 그 자체보다는 정보의 의미, 스토리의 한 요소로서의 정보의 중요성이 훨씬 더 중요했다. 이 정보는 다른 어떤 정보와 서로 결합될 수 있는지, 두 정보가 결합했을 때 예상되는 가설이 매력적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했고 무엇보다 그 사고 과정이 즐거웠다.
그런 사고와 논리 흐름에 익숙해지다보니 어느 부서에 가도 비슷한 방식으로 일을 대하며 나름대로 퍼포먼스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어차피 기업 내에 정보는 무수히 많다. 내가 다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직관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어떤 정보의 취사선택을 통해 탁월한 결론에 도달하느냐 …… 나는 그런 것을 15년 동안 좋아해왔다. 나는 내가 속한 산업도 꽤 매력적이라고 느꼈고, 내가 소속되었던 부서의 다양한 업무도 좋아했지만, 나는 무엇보다 내가 일하는 방식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구조, 전체, 통합, 바탕, 연결, 논리. 나는 이런 단어들을 각별히 아꼈다.
스스로를 컨설턴트라고 생각하며 일했던 15년의 대다수 기간동안 프로젝트 일선에서 직접 정보를 취득하고 보고서를 만드는 역할을 해왔는데 MBA에 합격하고 난 이후 반 년 동안은 조금은 다른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다. 2023년 6월부터 MBA 지원 준비를 시작해서 이듬해 2월에는 10개가 넘는 학교 인터뷰를 모두 마치고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의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7월에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까지 반 년 정도는 특별히 어떤 일을 전담하지 않고 필요할 때 도움을 주면 되어서 다소 자유로운 상황이었다. KATUSA 시절 때 제대를 한 달 정도 앞두고 묵시적으로 병영 일과에서 제외되어서 사회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클리어 기간과 같은 기분이랄까 …… 그 반 년 동안 나는 실제 프로젝트를 이끄는 컨설턴트가 아니라,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후배들의 고민을 함께 고민하는 역할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나는 늘 팀의 막내로 실무적인 보고서를 만들곤 했는데, 어느덧 정신차려 보니 팀장 다음으로 나이나 연차로 보았을 때 내가 가장 선배가 되어 있었다. 후배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는지, 이 다음 스텝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막막하다면 어디가 병목지점인지 함께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또 다른 의미의 컨설팅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정말 즐거웠다. 나는 후배들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 구체적인 사실, 정보, 현상은 그들이 훨씬 상세하게 알았고 나는 그들이 그 정보를 기초로 작성한 보고서만을 가지고 여러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그래프를 통해 언급하고 싶은 정보가 무엇인지, 원인이 세 가지라고 밝혔는데 그 세가지가 서로 동등한 위상을 갖고 있는 것인지, 논리구조가 결론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아니면 다시 원래의 출발점으로 중언부언하며 돌아가려 하는지, 어떤 결론을 제시할 때 하나 더 큰 스케일에서 조망한다면 무엇을 더 이야기해야 하는지, 그래서 결론적으로 네가 하고 싶은 주장이 뭐야? 이런 것들을 보고서를 사이에 두고 나는 질문했고 그들은 대답했고 함께 대화했다. 그건 내가 15년 전 꿈꾸었던 컨설턴트의 박제된 모습이기도 했다.
나는 극단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해도 좋다. 너와 대화하며 엉켜있는 실을 하나씩 풀고 뒤섞인 레고를 하나씩 조립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내가 묻고 네가 답할 때 너의 대답 속에 실린 정보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 정보를 통해 다음 어두운 동굴로 어떻게 좀 더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을지, 그 다음 과정에 대해 계속 고민할 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뭔가를 알아가는, 앎의 진실된 한 측면이라고 생각했다.
3막
플라톤이 저술한 <메논>을 읽으면서 나는 컨설턴트를 꿈꾸었던 15년 전의 모습을 떠올리고, 경영학이 어쩌면 바탕이 되는 학문에 가깝지 않겠냐고 이야기했던 20년 전의 나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메논>에는 소크라테스, 메논, 아뉘토스, 그리스 노예 이렇게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하며 서로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젊은 메논은 노인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탁월함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탁월함은 누군가에게 가르치거나 또는 가르쳐 질 수 있는 대상인지?”를 물어보며 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젊은 메논은 자신만만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침착하며 서두르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먼저 탁월함의 정의를 두고 메논과 대화를 시작하는데, 메논은 남자의 탁월함은 국가 정사를 돌보는 것, 여자의 탁월함은 남편에게 순종하고 가정을 보살피는 것, 노인, 노예에게도 각각의 지위에 부합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탁월함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결국 지금까지 메논이 생각했던 탁월함의 정의는 실제로는 일반화된 정의가 아니라 탁월함의 편파적인 부분적 예시에 불과했음을 일깨운다.
메논도 모르며, 소크라테스도 모르는 이 탁월함의 정의를 찾기 위해 그들은 더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결국 탁월함에 대해 가장 상위 개념의 정의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음을 인정하게 된다. 나아가 이들은 탁월함이란 저절로 타고난 본성도 아니며, 앎으로 대변되는 지식의 영역도 아니며, 참된 확신 즉 선한 직관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플라톤은 서양 이성의 시초답게 그런 선한 직관은 신으로부터, 신을 믿으며 얻어진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탁월함의 정의를 찾아가는 대화 속에서 유명한 플라톤의 이데아의 초기 개념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스 노예와의 대화를 통해 기하학 문제 - 8제곱피트의 면적을 갖는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의 계산 - 가 제시되는 점도 흥미로웠다.
<메논> 책 말미에는 이 책을 번역한 정암학당의 이상인 선생의 해설이 실려있는데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이 부분이었다. “플라톤의 <메논>은 …… 탁월함의 본질에 관한 메논의 확신들을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가설에서 출발하여 탁월함의 교육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논증적 추론을 통해 방법적으로 검증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주도하는 문답들을 그 결과의 측면이 아닌 비판적 검토의 검증 과정의 측면에서 읽을 때 대화편의 진가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고 ……” 중요한 건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탁월함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해답을 제시하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를 앞에 두고 어떤 대화를 거쳐 결론에 이르려 하는지 그 과정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대화에 참가하는 소크라테스는 탁월함의 본질에 관해 그 어떤 전문적인, 체계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도 중요하다. 우리는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해서 선한 확신을 지닌 직관을 통해 가설을 수립하고 묻고 답함을 통해 조금씩 하나의 결론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내가 지난 20년 동안 품어왔던 경영학에 대한, 컨설턴트에 대한 생각과 겹쳐지는 측면이 너무나 많았다. 소크라테스와 메논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지난 봄 후배들과 보고서를 두고 함께 고민했던 순간을 연상시켰다.
<메논>은 플라톤의 수 십 권 저서 가운데 중간 과도기에 해당하는 작품이며 탁월함에 대한 플라톤의 결론이 정확하게 실려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더구나 그가 책에서 어렵사리 내린 결론, 즉 탁월함은 타고난 본성도 아니며, 앎으로 대변되는 지식의 영역도 아니며, 결국 참된 확신 즉 선한 직관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라는 결론은 INFJ로 직관에 기대어 살아가는 나에게는 희망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측면도 분명 있다. 플라톤은 신을 믿음으로 인해 참된 확신, 선한 직관을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나처럼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 - 사유가 종교적인 것과는 별개로 - 은 지식과 경험을 조합하여 직관에 녹여내고 있기 때문이다. 앎에만 의존하는 것도 매우 위험하지만 앎이 배제된 직관 역시 위험한 법이다. 앎이 배제된 직관은 확률 게임에 가까워질 뿐이다. 우리의 앎은 시간과 경험에 어느 정도는 비례하여 증가하게 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 수록 나는 조금 더 정확한 직관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맞는 말이 될까? 아니다, 조금 정확하게 표현해야겠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나는 많은 앎을 가질 수 있게 되지만 알게 된 만큼 어느 정도는 앎을 덜어내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조금은 참된 직관을 가질 수 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안 만큼 덜어내는 것, 지금까지 걸어왔던 방향에 등을 돌려 반대를 바라보는 것, 때로는 아예 모른다고 손을 들어버리는 것.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점점 느끼게 된다.
MBA를 마치고 직장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과연 MBA를 시작하기 전 즐겼던 6개월의 대화를, 소크라테스와 메논의 대화를 다시 경험할 수 있을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후배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사고의 흐름을 보다 논리적으로 만들기 위해 자유롭게 묻고 답했던 시간을 앞으로도 또 가질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기업을 포함한 다수의 조직은 쉽고 빠르게 결론을 내고 싶어 한다. 우리의 제한된 여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은 가차없이 우리에게 찾아오기 때문에 빠르게 결론을 내지 않으면 영원히 일에 시달리며 살아갈 수 밖에 없고, 일을 오래 잡아둔다고 더 좋은 결과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경우 결론은 이미 정해져있고 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근거를 찾아야 하는 경우도 많다. 결론을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도, 우리는 이런 근거를 찾게 되었고 고민한 결과 이러한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고 염치없게 이야기하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
이해는 간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변화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무수한 태스크를 제한된 시간 내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쳐내야 할 것은 쳐내고 앞으로 전진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 이게 맞는 것이냐고, 이런 측면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눈치 없이 발목이나 잡는 사람으로 치부되는 세상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을 마주했을 때 속이 타지 않는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그러나, 그러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마감시한 내에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급함 없이 더 나은 논리를 고민하기 위해 묻고 답했던 2023년 봄이 정말로 즐거웠다는 점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의 대화 속에 소크라테스와 메논은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나는 이렇게 생각해. 묻고 답하는 그 과정은 평등했다. 그 시간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