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왜?’를 통해 찾아야 하는, 내 마음의 위치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할 때.
수락해야 할지 거부해야 할지를 판단해야 할 때.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판단해야 할 때.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판단해야 할 때.
절충할 수 없는 양극단의 상황에 대해,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 판단해야 할 때가 있다.
시간을 오래 쓰지 않고 판단할 때도 있지만, 마음에 심한 갈등이 일어날 때도 있다.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때이다. 어느 쪽으로 등을 돌리더라도,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싸늘함이 매우 차가울 것 같을 때이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에 관한 최종 판단은, 마음의 기준에 따르게 된다.
평소 마음에 우선으로 두는 기준에 따라,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쪽으로 판단을 해도 마음이 불편하다면, 덜 불편한 쪽으로 가게 된다. 판단을 미루거나 회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만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운전을 하면서 길을 갈 때, 모르는 길은 확신이 없어 주저주저하지만, 잘못된 길이라도 확신이 있으면 거침없이 가는 것과 같다. 어떤 선택이나 판단을 해야 할 때, 무엇을 잡을지 고민하기보다, 내 가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고 어디를 향하기를 바라는지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이 읽었거나 내용에 일부는 들어봤을 만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있다.
‘정의(正義)’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예시가 나오는데, 어떤 판단을 해도 석연치 않다. 어떤 가치 기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옳고 그름이 갈린다. 하지만 옳고 그름의 갈림을, 운동 경기에 등장하는 심판처럼, 누군가가 명확하게 심판할 수 없는 문제가 많다. 사회에 어떤 이슈가 붉어지면, 그것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다.
어떤 책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책의 서문에 언급한, 경제학자의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의 다양한 문제의 밑바닥을 살펴보면 공통적인 문제로 귀결되는데, 그것이 바로 ‘경제’라고 한다.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봤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책을 읽거나 그 이야기를 들은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수 있겠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경제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으니,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경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어떤 판단을 할 때, 기준이 서지 않는다면, 묻고 또 물어서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한다.
그 이유에 대해 밑바닥까지 질문하면서 내려가면, 바닥에 깔린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어떤 규정이 합당한 지 부당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규정이 만들어진 이유와 배경에 대해 ‘왜?’라는 물음으로 파고 내려가야 한다. 그러면, 지금 규정이 있어야 할지 없어져야 할지 판단할 수 있다. 어떤 기준으로 해석을 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다.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묻고 또 물어서 그 이유를 찾는다면, 나의 가치 기준을 어디에 둬야 할지 알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