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함께

by 청리성 김작가
죽고자 마음먹을 때, 같이 살 수 있는 길


용서하기 어렵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에 대해 넘어갈 때,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봐서, 봐주는 거야!”


당사자인, 그 사람을 봐서는 용서나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그와 관계된 누군가를 봐서, 용서하고 이해한다는 의미다. 여기서 말하는 ‘누군가’는 그냥 아는 사이가 아니라, 자신에게 큰 의미가 있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다. 아니면 큰 잘못을 저질렀던 사람이다. 은혜를 입었든 잘못을 저질렀든, 마음의 빚이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청은 거절할 수 있어도 이 사람의 청은 거절하기 어렵다.


마음의 빚은, 희한하게,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줄지 않는다.

갚아도 갚아도 완전히 털어내기 어렵다. 아마 고마운 마음이 쉽게 가시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도움을 주거나 용서해 준 사람은, 그냥 혹은 한번 일지 몰라도, 받은 사람은 그 여운이 오랫동안 남는다. 누군가에게, 이런 여운을 남겨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본다.

마음은 그러고 싶지 않지만, 그래야 할 때가 있다.

그러고 싶은 본능을 제압하는 것은, 의무일 수도 있고 책임일 수도 있다. 아니면 양심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적 갈등이 일어날 땐 무언가 선택해야 한다. 공자가 말씀하신 것처럼,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도에 거슬리지 않으려면 어느 경지에 올라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내적 갈등에 빠지고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선택을 해야 하겠지만, 결국 선택은 두 가지로 갈린다.

나를 위한 것인가 타인을 위한 것인가. 나의 이익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인지, 그것을 포기하고, 타인의 이익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마음의 갈등이 생기는 이유다. 사람은 누구나, 아니 대부분 자신의 이익에 마음이 먼저 쏠리게 되어 있다. 그것을, 나쁘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하지만 함께 살아가야 하니, 본능에만 끌려 결정할 수 없는 법이다.


사극이든 현대물이든, 전쟁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가 있다.

“살고자 도망치는 사람은 죽을 것이고, 죽고자 싸우는 사람은 살 것이다!”

도망치지 말고 열심히 싸우라고 독려하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이에 대한 해석을 다양하게 할 수 있지만, 이런 해석은 어떨까 생각해봤다.


함께 싸워야 하는 전쟁터에서, 자신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사람은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동료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를 도와주기 위해 나서지 않는다. 어떠한 상황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도망친다고 온전히 살아나갈 확률은 낮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 사람은, 자신만 살겠다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함께 싸우는 동료의 목숨을 지켜주겠다는 마음도 있다. 서로의 목숨을 지켜주는 관계가 된다. 누군가 부상을 당하면, 어떻게든 함께 가기 위해 갖은 방법을 찾는다. 그렇게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존재가 되어간다. 그 마음이 곧, 함께 살 수 있는 길로 보인다.


죽고자 한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서 함께 하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이 있을 때, 내가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내가 용서를 해줄 수도 있고 내가 용서를 받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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