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
규칙적인 식사가 체중조절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몸의 ‘항상성’ 때문이다. 항상성은, 몸이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을 말한다. 다양한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서, 생명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한다. 불규칙한 식사를 하게 되면, 몸에서 이를 감지하고 칼로리 소비를 최소화한다. 언제 칼로리가 들어올지 모르니 꽉 붙들고 있다. 돈이 불규칙하게 들어오면, 최소한의 소비만 하면서, 통장에 일정한 금액을 유지하려는 것과 같다.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을 대비한다. 반면 규칙적인 식사를 하면, 칼로리가 제때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칼로리를 마음껏(?) 소비한다.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것은, 생리적인 현상 말고도 많이 있다.
보험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보장(保障)’을 통해, 예상되거나 예상할 수 없는 다양한 위험에 대비한다. 어쩌면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가, 안정을 유지하려는 것일 수 있다.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경제적 안정을 유지하려는 것이고, 운동하는 것은 신체적 안정을 위해서다.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모든 것이,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런 다양한 안정의 종착지는 심리적 안정 즉, 마음의 평화다.
‘보장’ 받을 수 있다면, 어떤 행위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있다면, 책이나 볼펜 등, 내 것을 빌려줄 수 있다. 한두 번 원활하게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다음부터는 빌려주기가 꺼려진다.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주고받는다는 표현도 그렇다. 받을 수 있다는 마음이 있으니, 줄 수 있다. 내가 배를 주면, 상대는 사과를 주겠거니 하면서 내밀게 된다. 받을 생각이 전혀 없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반복되면 주기가 꺼려진다. 사람 관계는, 일방통행으로는 유지되기 어렵다. 그래서 받은 만큼은 아니더라도, 받았다면, 무엇으로라도 되돌려주겠다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고받는 것에 대한, 놀라운 사실이 있다.
내가 ‘A’에게 줬다고, 반드시 ‘A’에게 돌려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B’나 ‘C’에게 돌려받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생각해 본 적이 없을 뿐,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다. 이런 예를 들 수 있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러 갔는데, 건너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있는 회사 후배들을 발견한다. 밥을 먹고 나가는 후배들에게, 밥값을 계산해 줄 테니 그냥 나가라고 말한다. 웬 떡이냐는 표정으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말을 바꿀까 봐 그랬는지, 쏜살같이 식당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나가려는데, 회사 선배들이 옆 테이블에 앉는다. 먼저 가보겠다고 인사하고 일어서는데, 주문을 받는 종업원에게 말한다. “여기 밥값도 같이 계산할 거니, 따로 받지 마세요.” 그러면서 씩 웃어 보인다. 얼마 전 후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웬 떡이냐는 마음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식당을 빠져나온다.
내가 하는 대로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면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고, 누군가를 판단하면 다른 누군가에게 판단을 받는다. 누군가에게 선행을 베풀면,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다. 뚜렷하게 보장된 것은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보장 시스템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 같다. 그래야 자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면, 저 사람에게 자비를 얻을 수 있다. 꼭 내가 베푼 사람에게 받는 것은 아니다. 선행이든 악행이든, 내가 한 만큼 돌려받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