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감당

by 청리성 김작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무게감을 견딜 각오

“나만 아니면 돼!”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직원들이 농담처럼 가볍게 했지만, 진심으로 했던 표현이다.

까탈스러운 거래처 담당자를 배정할 때, “나만 아니면 돼!” 문제가 발생해서 책임 추궁을 할 때, “나만 아니면 돼!” 많은 업무를 처리할 일이 있어 야근할 때, “나만 아니면 돼!”

공동체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거나 어려운 상황이 생겼을 때, 그 불똥이 자신에게 튀지만 않으면 상관없다는 의미다.

참 씁쓸한 얘기로 들리지만, 직원들끼리, 모두가 공감하면서 암호처럼 사용했다.

그렇다고 서로 악의적인 마음을 갖거나 불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만큼 모두가 많은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제비뽑기에 뽑히듯 불상사(?)를 입은 사람에게 농담처럼 던졌던 말이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함께 도움을 주고 함께 고민을 나눴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표현은 말 그대로 자신에게 피해만 오지 않으면 누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유쾌하게 서로를 위로하는 방식이었다.


“나만 아니면 돼!”

어느 순간부터, 이 표현이 말 그대로 사용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든다. 함께 하는 동료는 어떻게 되든, 자신에게 이로울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생각이 전염병처럼 퍼지는 것 같다. 커다란 공을 함께 짊어지면서 버티고 있는데, 다른 공이 조금 더 편할 것 같아 빠진다고 하면, 남아 있는 사람들이 그 사람만큼의 짐을 나눠서 져야 한다. 당연히 더 힘들어진다. 그걸 뻔히 알면서 빠지겠다고 하는 것은,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무게도 있는데,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취급해버린다.


자신의 꿈을 위한 선택이라면, 그리고 지금보다 나은, 선택이라면 응원해 줘야 한다.

회사의 부당한 처우나 사람으로 인한 괴로움으로 인한 것이면, 당연히 그렇게 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일단 지금의 힘든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면, 함께하고 있는 사람을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한다. 자신의 짐을 떠안아야 하는 다른 사람을 생각해 봐야 한다. 7명이 앉을 수 있는 지하철 의자에 8번째 앉는 사람으로, 다른 7명이 불편해하는 것처럼, 자신이 8번째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다른 7명 중 한 명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차선의 선택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잘못된 판단이다.

차선을 최선으로 착각한다. 지금만 벗어나면, 모든 상황이 자기 생각대로 돌아갈 거라 착각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지금까지 지켜본, 차선의 선택을 한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 조금은 먼저 걸어온 사람으로서, 여러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려고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그림도 보려 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 풍경일 뿐이고, 아무리 좋은 음악도 들으려 하지 않으면 소음일 뿐이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면, 그 대가도 자신이 고스란히 져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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