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지 않은 현재를,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볼 때 깨닫게 되는 것
주변에서 해주는 말이나 벌어지는 상황이, 메시지일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 계획이나 바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불만을 품거나 짜증을 부리기보다, ‘무슨 이유가 있겠지?’하고 받아들인다. 모두 그렇다고 할 순 없지만, 많은 경우에, 정말 이유가 있었다. 미리 계획되어있었던 것처럼.
한 번은, 미사 해설 시간을 바꿔 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내 담당 시간은 16:00였는데, 한 자매님이 사정이 있으시다고, 20:00와 바꿔줄 수 있냐고 문자가 왔다. 그날도 출장을 다녀오는 날이라, 원래대로 16:00에 하는 게 좋았다. 출장 다녀와서 바로 하면 시간 공백도 없고, 쉴 수 있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불편함과 피곤함을 감수해서라도 바꿔드려야 할지, 여러 이유를 대서 어렵다고 해야 할지 고민했다. ‘무슨 이유가 있겠지?’ 그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흔쾌히 바꿔드리겠다고 답변을 드렸다.
미사 해설 시간을 바꾼 날, 출장에서 돌아왔는데, 아내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체온이 37도가 넘어간다며, 걱정하면서 불안해했다. 유치원에서 음악 강사를 하는 아내는, 아이들에게 피해를 줄까, 염려된다고 했다. 불안한 마음은 미사 참례를 하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이런저런 말로 설득했지만 불안하다며 걱정만 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성당에 가야 할 때쯤, 아내는 마음의 안정을 조금 찾았다.
열이 살짝 떨어졌다는 사실도 있고,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았다. 그렇게 함께 미사 참례를 했다. 만약 원래대로 16:00 미사 해설이었다면, 아내는 미사 참례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잠깐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때 미사 해설이 바뀌게 된 이유를 알았다. 큰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사건이라 생각한다.
회사에서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가끔 한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내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때가 올 거야. 그래서 얘기해 주는 거야.” 후배에게 필요한 말이라 생각해서 말해주는데, 잘 듣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때 이렇게 말한다. 지금 말이 들리지 않거나 듣고 싶지 않은 이유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절박한 상황도 아니고, 그렇게 필요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말을 흘려버린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렇다고 말해주지 않는 것은, 선배로서 역할을 하지 않는 것 같아 일단 말은 해준다. 언젠가는 떠오를 때가 있을 테니까. 실제로 그런 후배가 있었다. 함께 일할 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표정이 좋지 않았던 후배였다. 잔소리로 들려, 듣기 싫었던 거다. 시간이 지나고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그 후배 이렇게 얘기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요즘은, 말씀하신 게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후배들에게 이야기한다. 듣지 않더라도 말이다.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는 상황은 많이 벌어진다.
지금이 전부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현재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현재가 소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지금의 상황이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특히 좋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말이다. 나에게 벌이지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더 좋아지기 위함이다. 그 사실을 믿어야 한다.